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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이서원 시인의 <詩視한 이야기>

"유년으로 흐르는 추억"

  창말 동산에 올라서면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는 듯 너럭바위에 잠시 몸을 기댔다. 푸른 소나무 몇 그루가 시원한 바람을 불러 왔다. 이고 왔던 보따리랑 광주리를 내리고 똬리처럼 굽은 황톳길을 바라보았다. 멀리 어래산이 보이고 그 아래로 아침에 떠나왔던 마을과 뾰족한 교회 종탑도 보였다. 십여 리를 걸어온 탓으로 어머님의 이마엔 송글송글 땀도 배였으리라. 몇 분도 채 쉬지 못하고 이제 안강 장은 멀지 않았다는 안도의 표정으로 내려놓았던 짐을 다시 머리에 이고 길을 나섰다.

  5일 장은 벌써 인산인해다. 그 좁은 틈을 비집고 고추전을 지나 과일전 길가에다 광주리를 풀었다. 붉은 홍시가 그야말로 아침 햇볕을 받아 더 빛났다. 나도 그 곁에 병아리처럼 쪼그리고 앉았다.

 몇 사람들이 우리 앞에서 흥정도 하곤 하였지만 그것도 잠시 뿐, 이내 추운 늦가을 바람 속으로 총총히 사라져 버렸다. 점심시간도 넘겼다. 몇 개라도 팔아야 그 돈으로 우리 형제들 털신과 장갑도 마련할 텐데 어머니의 눈빛은 간절하다 못해 애잔했다.  

 시골 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홍시를 판다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는지도 몰랐다. 시골 집 돌담 둘레엔 네 그루의 감나무가 있었고, 감꽃 필 무렵부터 우리들을 유혹하는 잔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봄날 저녁에 곱게 쓸어둔 마당으로 떨어진 감꽃은 볏짚에 꿰어져 마르면 간식이 되어 주었다. 여름엔 푸른 감을 주워 조그만 단지에 담고 물을 넣어서 삭혀 먹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뿐인가. 곶감을 만들고 나온 껍질을 말려서 또 얼마나 많이 먹었던가.

 그러나 그것들은 호사스런 일이었다. 늦가을에 달린 홍시를 따는 몫은 우리들에게 주어졌어도 먹는 건 쉽게 허락될 수 없었다. 가난했던 집안 형편 탓이었으리라. 형제들은 학교를 파하고 집에 오면 긴 대나무 끝에 감주머니를 매달고 홍시를 따야만 했다. 가지 끝에 달린 그 붉고도 고운 홍시 하나가 왜 그리도 마음 아프게 했을까.

흔들리는 가지 끝에 몇 번이고 헛손질 후 감나무를 들이받아야 겨우 얻어졌던 그 홍시.

 손님은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고 부산했던 시골 장은 벌써 파장을 서두르고 있었다. 남은 홍시를 탑처럼 쌓아놓고 나는 울면서 보채기도 하였다. 아침에 떠나온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쩌면 더 춥고 멀게만 느껴지기도 하였겠다. 어머닌 아무 말씀도 없이 몇 개의 남은 홍시라도 더 팔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짧아도 긴 겨울 해 뒷산에 놀이 지면 
치맛자락 붙들면서 집에 가자 보챘었지
못 다 판 터진 홍시가 눈물인 줄 모르고
 
개망초 꽃 지듯이 허물어진 담장 아래
세월도 잎새인 양 먼 산 보듯 앉았는가
남겨둔 까치밥 두엇 가지 끝에 환한 날  

홍시 한 접 머리 이고 어림잡아 시오리길
안강 장날 좌판 위에 가지런히 쌓아 놓으면
어머니 시린 두 손도 홍시처럼 붉었다

오가는 사람들의 눈빛들을 좇아가며
“이거 좀 잡사보소, 잠 달고 맛있니더”
눌러쓴 무명 수건이 까닭 없이 서러웠다 
  
                       <추억> 전문

 

삽화(공희정_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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