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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이서원 시인의 <詩視한 이야기>

“문사(文士)”

 

  문장을 짓는 일은 온 우주를 끌어당기는 듯한 힘과 끝없는 자기와의 지난한 싸움이 필요하다. 때로는 꿈에도 시를 좇고, 더러는 길을 가거나 운동을 하다가도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단어 하나에 몰두하는 집중력, 그런 집요한 파고듦이 없이는 결단코 작가의 대열에 끼어들 수 없다. 남들은 무모하다고 고개를 가로저어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게 어쩌면 글을 쓰는 일 아니겠나.        

  지난달 파리 올림픽 여자 마라톤이 모든 경기의 피날레였다. 42.195km라는 엄청난 거리를 달리는 건 아무나 도전할 수 없다. 그래서 올림픽의 꽃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일, 조금도 멈춤 없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듯하지만, 그들의 무한 경쟁은 복잡한 계산과 치열한 작전이 필요하다. 근대올림픽이 시작된 1896년 이래 여자 마라토너가 폐회식 때 시상대에 오른 일도 최초였다. 

  시판 하산(네덜란드)은 이번 올림픽에서 5,000m, 1만m에도 출전하여 동메달 두 개를 이미 목에 걸었으며, 마지막 마라톤까지 금메달을 수확한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육상선수다. 모든 환경을 극복하고 달린 마라토너, 이번 경기는 끝까지 누가 우승할지 알 수 없으리만치 결승점 앞까지 피 말리는 선두 다툼이 있었다. 줄곧 두어 발 뒤에 있었지만, 언제든 치고 나갈 기회를 엿보며 선두그룹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생각과 고통의 시간이 스치고 지나갔으리라. 앵발리드 결승점을 500미터 앞에 두고 마지막 스퍼트의 힘을 과시하여 전력 질주를 했고, 마침내 테이프를 맨 먼저 통과한 기록은 2시간 22분 55초! 경이적인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왕관을 차지했다. 2등과는 불과 3초 차이뿐이었다.

  그는 휴식도 없이 3종목에 출전하여 이 같은 일을 해냈다. 단거리 선수에서 마라토너로 전향한 지 겨우 1년, 이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도달하지 못했던 기록, 경계의 불가능을 극복해 내고야 말았다. 누구나 도전할 수는 있어도 아무나 이루어 낼 수는 없는 일이 결국은 일어나고야 말았다. 1993년 에티오피아에서 출생하여 난민 신분으로 2008년 네덜란드에 정착하여 국적을 얻었고, 최초로 네덜란드에 올림픽 여자 마라톤의 우승을 선물했다. 

  놓쳐버린 문장 하나 저만치 달아난 후  

  아무리 뜀박질해도 붙잡히지 않는다

  온종일 뒤꿈치만 좇다 숨이 턱턱 막히고

  이를까 손 뻗으면 다시 또 전력 질주

  끝끝내 차오른 뜻 품에 안지 못해도

  멈추면 죽을 것 같아 이 악문 채 또 뛰는

  - 「문사文士」 전문

  문학도 이와 같다. 수많은 작가가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며 온 마음을 다해 창작의 고통을 기꺼이 감내한다. 하나의 단어가 왔다 금방 찰나에 사라지면, 그 문장을 찾아 밤을 새우는 일을 호사스러운 축복으로 여긴다. “쉽지 않았다. 너무 더웠지만 오늘처럼 결승선까지 나 자신을 밀어붙인 적이 없었다”는 하산의 말은 나를 다그치는 문장이 되어 돌아왔다. 작은 일에 핑계를 대고, 일상에 바쁘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글 쓰는 일에 게을렀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청탁 원고의 마감일이 코 앞인데도 맛깔스러운 문장을 찾지 못해 덮어둔 글의 부스러기를 뒤졌던 하이에나 같은 나를 돌아보면 부끄럽다. 

  어느 깊숙한 동굴에 갇혀 튀어나오지 못한 바람 같은 단어들, 번쩍 하고 왔다가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사라진 단어들, 아침 산책길에 만난 풀잎 끝에 달린 영롱한 이슬 같은 단어들, 언어가 되지 못하고 유성처럼 사라진 단어들을 찾아 다시 우직하게 들메끈을 고쳐 다잡아야 하리라. 어쩌면 이 순간도 좌뇌에서 우뇌를 관통해 간 어느 낱말이 나를 바라보며 저 하늘 한쪽에서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멈추면 죽을 것 같아 이 악문 채 또 뛰는” 하산의 발걸음처럼 결 고운 언어의 지맥을 찾아 이를 악문 채 문사의 마라토너가 되는 일에 기꺼이 나 오늘 맨발의 보폭을 포개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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