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뜨거운 볕이 키 큰 감나무를 타고 오르더니, 이제 창을 밀치고 들어와 집 안 흔들의자에 주인처럼 앉아 있다.
지붕 낮은 사랑채 대들보에 걸린 괘종시계가 댕! 댕! 댕! 열 시를 알린다. 내 어릴 적 어머니가 쌀 몇 되를 주고 사서 머리에 이고 십 리를 걸어온 소중한 것이다. 기척 없는 고요한 마당을 제가 온전히 지키고 있다는 양, 째깍째깍 아직도 틀림없이 잘 가는 게 의젓하다. 뒤꿈치를 들어도 닿지 않아 목침을 괴고 겨우겨우 태엽을 감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이후 시간은 제 바퀴의 테두리를 얼마나 풀며 돌아갔을까. 서로의 나이가 엇비슷하게 조금씩 기울어 가는 세월이지만, 아직도 제 반경을 조금도 어긋남이 없다.
녹슨 철 대문 옆 정자에 앉는다. 앞집 연붉은 능소화가 담장을 넘어와 눈치를 살피며 다소곳이 피어 있다. 모든 게 온화하고 여유롭다. 무덥다고 날씨 탓만 할 수는 없다. 계절이 이런 걸 어쩌겠나. 그저 감사하며 받아들이고 찬미하는 즐거움으로 더위를 건너간다.
올 풀린 스웨터의 보푸라기 같은 햇살
창가 흔들의자에 저 혼자 앉아 있다
괘종이 적막을 건너 먼 곳으로 이운다
약속이라도 한 것일까 뜯지 않은 소포처럼
고요가 어깨를 걸고 저들끼리 꿈적 않는다
말 없는 평화 한쪽이 시나브로 깊디깊다
「오전 열 시 모노드라마」
강아지도, 고양이도 지치긴 같다. 꿈쩍 않고 제 집 그늘에서 그저 물끄러미 하늘을 응시할 뿐이다. 철원댁 할매는 작년 이맘때 세상을 떠났다. 밤새 안녕이라더니, 전날 밤 어머니와 콩 껍질을 같이 벗기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었건만 잠결에 가셨다. 어머니는 그랬다. “죽음은 그냥 비워지는 것”이라고. 허공을 바라보며 하신 말씀이 귓전에 맴돈다. 빈집이 갈수록 늘어난다. 동네 한쪽 모퉁이가 물 먹은 종이처럼 뜯겨나간 듯 허전하다.
어슬렁거리다 외양간 뒤에 세워둔 자전거를 꺼낸다. 오래도록 먼지가 켜켜이 쌓인 채 버려진 듯 있었던 거다. 앞뒤 두 바퀴에 바람을 넣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기가 돈다. 안장에 올라타고 마당을 나선다. 부챗살 같은 햇살이 함께 감겨 돌아간다. 체인에 호박넝쿨 우거진 골목도 감긴다. 감나무밭을 비켜 마을 안쪽으로 핸들을 돌린다. 500년 넘은 회화나무가 포르스럼하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웃골댁, 우각댁, 샛골댁도 초록 잎맥보다 깊은 주름이 일체의 수사를 거부한 성자같이 자리에 오도카니 누워 있다.
이 모든 조화의 평화로움이 정물화처럼 웅숭깊다. 삶은 유한하고 조금도 곁을 내주지 않는 무구(無垢)의 냉정함에 에워싸여 공존하고 있으니 이게 순박함인가. 무너져 가는 돌담, 쓰러져 가는 집 앞을 지나 유모차를 밀며 저만치 자방골 댁이 무성영화의 한 컷처럼 오고 있다.
마을 한 바퀴를 돌아 집으로 온다. 그 사이 어머니는 빨랫줄에 빨래를 널어 두었다. 이쪽과 저쪽의 팽팽한 줄이 바지랑대에 걸려 해안가의 모래사장처럼 동두렷하다. 빨래가 말라가는 아침나절, 아침과 정오, 꼭 중간의 이 시간이 참 좋다. 거미줄에 걸린 꽃 이파리 하나가 여린 바람에 팔랑거린다. 뒤 뜰로 간다. 채소밭에 핀 보라색 도라지꽃 몽우리가 부풀 대로 부풀어 있다. 가만히 다가가 살며시 하나를 폭 터트린다. 미안한 죄목 하나가 내 가슴에 화인(火印)처럼 새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