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카페에 앉는다. 이른 아침부터 몇몇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보며 나누는 즐거운 대화가 그저 부럽다. 윤슬처럼 반짝이는 잔잔한 음악이 아름답다. 밀린 원고를 앞에 두고 한참이나 고민하며 머리를 도리질해도 풀리지 않는다. 쓰던 글을 잠시 덮고 통 큰 유리창으로 바다를 바라본다. 저 눈부신 푸른 출렁임과 포말이 숭고한 제 본연의 거룩한 사명인가 싶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주어진 일을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최선을 다하는 일, 그것만큼이나 진중한 것은 없다. 글을 쓰겠다며 꿈을 품은 지 꼭 40년이다. 아직도 변변한 글 한 편 내놓지 못한 채 날마다 허방 짚으며 가고 있는 모습이 부끄럽다. 길이 아닌가 싶어 그만두려고 해도 무슨 미련이 있는지 쉽사리 돌아서지 못한다.
지상에 발을 디딘 작은 호수의 잔잔한 물결처럼 침잠한 채 지내고 싶은 소망, 바다인들 왜 없었을까. 그러나 스스로 가두는 고립을 택하기보다 저 유려한 자유를 택한 의지가 그저 부러울 뿐이다. 문학은 고고한 고립이다. 어떤 것도 침범하지 못하게 누에고치 속의 애벌레가 되기를 거부하지 않는다.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더 펼치지 못해 몸부림치는 참으로 역설적인 존재다.
은거, 은닉, 은둔…. 숨는다는 건 존재감을 드러내기가 민망하기 때문이다. 내세울 것 없어 미안함이다. 그래서 더 글로 자신을 찾으려는 고단한 몸부림이기도 하겠다. 다시 바다를 본다. 푸르디푸른 동해다.
바야흐로 개의 전성시대다. 개맛있다. 개좋다. 개예쁘다. 개부럽다. 개이득 등 그야말로 개가 사회의 일원으로 활보하고 있다. 이전에는 ‘개’의 접두사적 의미는 보통 부정적으로 쓰였다. 개망나니, 개꿈, 개죽음, 개소리 그런데 개가 드디어 개과천선했는지 날개를 단 형국이다. 단어나 언어도 변하여 발전하기도 하고 퇴보하여 사라지기도 한다. 용케도 개는 주인에게 충성스럽게 잘 복종했던 탓일까.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감히 상상도 못 했으리라. 개를 안고 가는 건 기본이고, 개를 유모차에 태워 다니기도 한다. 심지어 아기처럼 누비처네에 업고 다니기도 한다.
갑자기 내 눈에도 파도가 개로 보인다. 순수 토종 복실이가 꼬리치며 매일 주인 앞에서 재롱을 부리고 있다. 등을 쓰다듬어 주며 함께 걷는 즐거움도 복된 일이라면 일 일터! 저 푸른 개는 한 번도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으며 큰 이빨로 주인을 물어 죽이지도 않는다. 제 주어진 일상을 묵묵히 인내하며 지낼 뿐이다.
때론 몰아치는 태풍으로 제 몸이 더는 버티지 못하여 출렁이고 요동치며 세상을 다 삼킬 듯이 날뛰지만 그건 제 의지가 아니다. 잠잠히 기다려 주고 쓰다듬어 주면 금방 토라진 아이가 엄마 젖가슴을 파고들 듯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저 수더분한 시골 아줌마의 수다처럼 재잘거리며 바다 위를 출렁이는 파도, 바라보기만 해도 찬란하고 현란하다.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고, 중력과 달의 주기(週期)를 거부하며 작은 호수의 팽팽한 몰입처럼 잠들듯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지만, 파도는 제 젖은 몸을 한시도 말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뜨거운 태양의 볕도, 고독한 밤의 달빛도 제 등에 무구하게 받아안는다.
시는 비유며 은유다. 많은 사람이 시가 어렵고 이해 못 해서 외면하지만, 아직도 시는 이 땅에 존재하며 수많은 시집이 매일 파도처럼 쏟아지고 있다. 독자가 없는 시는 무용지물이겠다 싶지만, 저들만의 잔치로 끝나더라도 그 몰입을 기꺼이 감내한다. 시는 일회성이다. 두 번 다시 써먹을 수 없는 오로지 단 한 번으로만 주어진 생명체다. 파도 또한 순환적 질서에 순응하며 어느 먼 해역에서 수고로이 달려와 끝내 해안에 부딪히며 스르르 소멸하는 물거품이다. 어쩌면 시와 파도는 서로 닮은 지우(知友)인가. 손가락으로 빠져나가는 짠 물의 입자, 나를 끌어당기며 해안의 오목한 발자국을 살며시 지운다.
쉼도 게으름도 요령도 없는 물컹한 고집의 투명체, 오로지 부딪히고 부서지고 깨지는 걸 제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포용의 대명사다. 하여, 물아일체의 흡반처럼 합일을 이루는 너는 천생 개다.
모든 산 자 중에 참여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전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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