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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이서원 시인의 <詩視한 이야기>

“썸(SOME)”

  젊은이들 사이에 쓰는 단어 중 하나가 썸(SOME)이다. 여기서 파생되어 온 단어가 썸남, 썸녀다. 서로 호감은 있으나 쉽게 고백을 못하는 단계의 썸을 지나 썸을 타는 단계까지 나아감은 이제 사랑하는 관계로까지 발전한 것을 의미한다.   

큰애가 어느덧 스무 살의 중후반을 넘어서자 여자 친구 하나 없는 게 못내 걸렸다. 쉽게 사귀고 헤어지는 게 요즘의 세대라지만, 내심 사회성 결여인지 아니면 여자 친구는 아예 관심이 없는 건지 도무지 알 길이 묘연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사진 하나를 보내왔다. 코로나 시국이라 마스크를 꾹 눌러쓴 채 찍은 사진은 분명 아들이었다. 얼굴을 반쯤 맞대어 있는 옆 사람도 분명 여자 같았다. 소위 교회 오빠인 아들에게도 드디어 바라던 친구가 생겼구나 싶어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물었지만, 답은 일절 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수년, 두 사람은 여전히 다정하게 잘 지내고 있는 듯하다. 전화기에는 여자 친구 사진이 배경 화면으로 되어 있고, 자취방에 가면 벽이 온통 둘의 사진이 도배되어 있다. 사랑은 위대하고 경이롭다는 참 진리가 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던가 보다.

그렇다. 사랑하면 모든 게 아름답게 보이는 법, 나이 들었다고 해서 어찌 내게도 저런 사랑이 없지 않았겠나. 서른 중반쯤이었다. 꿈만 같은 사랑이 다시 찾아왔다. 밤새워 일을 한 후 퇴근하면 피곤해서 곧바로 곯아떨어지기 마련이었지만, 그를 만나고부터 잠이 다 무엇이랴. 오전 내내, 아니 때론 하루 종일 그와 지냈다. 그래도 피곤한 줄 몰랐다. 보면 볼수록 좋았고, 알면 알수록 오묘했다. 앞으로 우리의 운명이 어찌 될까, 염려보다 설렘이 더 많았다. 블랙홀 같은 깊이로 빨려 들어가면서 날마다 신나고 행복했다. 왜 이제야 내 앞에 다시 나타났을까, 운명의 만남이 갈수록 점점 더 깊어졌다.

어느 날 드디어 아내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자신과 두 자식을 두고 어찌 이럴 수 있느냐는 듯 득달을 했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오손도손 우리끼리 잘 살자고 꼬드겼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다는 나의 단호함에 아내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때론 큰 소리로, 더러는 평소에 없던 애교로 바짝 다가왔다. 그럴수록 반작용인지 그와 더 가까이 지냈다. 봄이면 연두색 짙은 숲으로 들어가 종달새처럼 사랑을 속삭이기도 했다. 또 가을이면 내 평생에 이 계절을 처음 맞이하는 양, 팔짱을 끼고 보란 듯이 다정하게 숲길을 걸었다. 남의 눈치 볼 게 뭐가 있나. 내 좋으면 그만이지. 더욱 나를 변호하며 옹호했다.      

꼭 3년 반이 흘러 신년 첫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내 이름이 실렸다. 이제 온 천하에 공인된 사이가 되고 보니 한 집에 두 살림 꼴이 공식 선포되기에 이르렀다. 아내도 아이도 이쯤에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얼마나 애타게 매달리며 사모했던가. 행여나 멀어질까, 나를 두고 떠날까. 노심초사, 애면글면 붙들며 매달리기를 잘 했구나 싶었다. 나의 마음을 받아주자 이제야 온 천하를 얻은 듯이 기뻤다.

왜 난들 모르겠나 바위 앞에 섰다는 걸
그래도 한 번쯤은 안아보고 싶었던 거지
네 눈에 나의 눈부처 빛나는 게 좋았거든
마주 보고 있다는 건 가슴 뛰며 설레잖아
눈부신 햇것처럼, 빠져드는 잉걸불처럼
그렇게 재 될 때까지 타오르고 싶었거든

- 썸(SOME)

 

 고백했다. 다시는 헤어지지 말기를, 처음엔 그가 바위처럼 꿈쩍 않은 채 단단하고 높고 두려웠다. 틈도 없고 마음도 일절 주지 않았다. 풋풋한 열일곱 살에 그를 처음 만났지만, 고백은커녕 먼저 나를 아는 척도 해주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내가 먼저 두려워서 다가가지 못했다는 게 옳다. 어찌 평생 한눈 안 팔고, 안아주고 보듬어 줄까.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어언 마흔에서야 내 진심을 알고 마음을 열어준 그다. 모두가 안된다고, 부질없는 헛수고라며 충고했다. 그런 마음 왜 모르겠나. 그러나 나도 지극하고 고결한 사랑으로 쟁취하고 싶었다. 남들처럼 꼭 호강시켜 주고 싶었다. 마주 보고 있다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그의 눈에 내 모습이 비치고, 곁에서 평생을 타오르다가 재가 된다 해도 후회하지 않겠다고 했다. 

  많은 이들이 방황하며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그냥저냥 살다 가는 게 인생이라면 난 고개를 단호히 저을 테다. 불꽃 같은 사랑, 그리하여 하등 아까울 게 없는 늦은 한량의 끼를 발휘하는데 무엇이 대수랴. 모두가 이해하지 못했다. 뭐가 좋으냐며 핀잔을 주었다. 심지어 고리타분하고, 한물간 어물전의 생선 취급을 했다. 하기야, 어찌 저들이 나의 마음을 알까. 눈에 콩깍지가 끼었으니 무슨 말을 한들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둘이 평생을 가기로 한 이상, 내 마음 섣불리 변하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다. 이게 내 마지막 열정이며 사랑이기를 바랄 뿐, 어떤 시련이 와도 돌아서지 않는 최후의 운명이며 욕망이다. 

시조여! 문학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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