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떠나온 고향을 더욱 그리워하게 됩니다. 대도시에서 자란 사람보다는 작은 도시, 더구나 벼가 익어가고 빨간 감이 달린 모습을 보고 자란 시골 출신들에게는 향수가 더욱 진하게 다가옵니다. 고향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기억나게 하는 곳이고 형과 누나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며 함께 놀던 친구들을 생각나게 하는 곳입니다. 막상 찾아가 보면 낯익은 집은 없어지고, 다니던 길은 사라지고, 같이 놀던 친구들도 없지만 생각 가운데, 상상 가운데, 고향은 언제나 다시 돌아갈 곳으로 남아 있습니다. 태어난 곳, 자란 곳, 낯 익은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귀소본능은 분명 모든 인간에게 있습니다. 영원한 본향이 약속된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어찌 그리워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고향이라고 해서 모든 같은 고향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명령하신 곳을 향해 떠났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고, 장차 자기 몫으로 받을 땅을 향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했지만, 떠난 것입니다. 믿음으로 그는, 약속하신 땅에서 타국에 몸 붙여 사는 나그네처럼 거류하였으며, 같은 약속을 함께 물려받을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설계하시고 세우실 튼튼한 기초를 가진 도시를 바랐던 것입니다.”(새번역) 약속한 땅을 향해 떠났지만 그 땅에 도착하지 못하고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은 이 땅에서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
히브리서는 이렇게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하신 것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반겼으며, 땅에서는 길손과 나그네 신세임을 고백하였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네가 고향을 찾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들이 만일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더 좋은 곳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늘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도시를 마련해 두셨습니다.”(새번역)
이 땅의 길손이요 나그네 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과 전혀 다른 유형을 우리는 오디세우스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타케의 왕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여하는 그리스 연합군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는 자기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이마코스를 남겨두고는 전쟁터로 떠납니다. 10년이나 끌었던 전쟁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험난하고도 험난했습니다. 여신 아테나이의 도움으로 오디세우스는 자기 아내와 아들이 살고 있는 고향에 20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이아>에 자세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오디세우스를 아브라함과 대비시킵니다. 오디세우스는 동일자의 전형입니다. 자기가 살던 고향을 떠나 타향에 갔다가 기어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자기 자신에게서 출발해서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옴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낯선 것, 낯선 곳, 타자, 이방 사람을 결국에는 부정합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는 낯선 곳, 가보지 않은 땅, 경험하지 않은 현실을 향해 앞으로 나아갑니다. 동일자의 영역, 곧 자기 자신을 떠나 타자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삶을 아브라함은 보여줍니다. 그에게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사람들도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처럼 이 땅에서 길손이며 나그네입니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영원한 고향이 아닙니다. 기억 속에 남아 있지만 그곳은 돌아가야 할 곳은 아닙니다. 약속받은 본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타자를 배제하고 자기에게 익숙한 영역에서 머물러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그네를 환대하고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며 자기 자신보다는 타자를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준 약속을 믿고 이 땅을 길손으로,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본향이 있기에 이 땅에 연연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 땅에 살도록 보냄 받았기 때문에 억울한 사람, 소외 받는 사람,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 천대받는 사람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영원한 본향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땅을 사랑하듯이 사랑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땅으로 만들려고 애써 노력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향수에 젖는 가을이 다가오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떠나온 고향 생각에 잠겨 힘들어 하기보다는 하늘 고향을 그리워하며 이 땅을 당당하게, 그러나 겸손하게 이웃 사랑에 힘쓰면서 살아야겠습니다.
강영안 교수(한동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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