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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그래도의 하나님"

(창세기22:9~16)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을 내어 놓으라 하십니다. 그러나 진심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있습니다. 구약 속에 감추어진 갈보리의 메시지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려야 할 때 그 애타는 마음을 통해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놓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내 보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아들을 내놓으시며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을 돌려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파라독스(역설)이며, 이중적계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기에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질그릇과 같습니다. 자체로는 쓸모없지만 그 안에 무엇인가 담기면 새로운 그릇이 됩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주신 예수그리스도, 그이름, 그생명을 질그릇에 담으면 내가 예수의 사람, 생명의 사람, 능력의 사람이 됩니다. 신앙은 내 안에 무엇을 담는가에 대한 싸움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4:7)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그리스도, 그 보배를 우리의 심령에 가졌으니, 예수의 힘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담으면 “그래서”의 인생이 “그래도”의 인생으로 바뀝니다. 예수로 사는 인생이 되어도 여전히 고달프고, 고난과 핍박,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합니다. “그래도”우리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래도”의 인생이되면 부부관계, 공동체가 한팀이 되어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더 놓은 땅을 차지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십니다. “그래도” 먼지보다 많은 자손을 주시고, 하늘의 별보다 많은 승리를 주셨습니다. 

  다니엘과 세친구가 사자굴, 풀무불에 던져졌습니다. “그래도” 사자의 입을 막으시고, 불가운데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래도의 하나님!” 바로 예수의 능력입니다. 이 생명을 우리의 질그릇에 담으면 승리합니다. 

  여전히 우리는 무언가가 되려고 싸웁니다. 갈보리로 올라가려합니다. 이미 예수께서 모든 것을 지불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속량하셨습니다. 이제 “너희는 나의 생명과 능력을 네 질그릇에 담고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가라!”말씀하십니다.

  “그래도”의 인생, 예수를 담는 인생으로 역전의 삶을 살면 됩니다. 예수의 생명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인생이라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희생하고 섬기고 손해를 볼지라도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신앙으로 사는 것이며, 예수의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비교하고 경쟁하면 자기를 상실하고 쓰러지고 맙니다. 되는 싸움에서 담는 싸움으로, 예수로 사는 그래도의 인생으로, 비교하지 않아도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나로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 하시고, 살리시고 돌려보내시는 하나님의 역설입니다. 우리는 독자 아들이 아깝지만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이며, 메시지입니다. 

독자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