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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 영접의 힘 』

“르네상스 시대에 인문학을 논하는 철학자들”_사진  AI

  유럽이든 아시아든 흥미롭게도 철학은 거의 도시에서 시작되고 발전해 왔다. 철학은 사색이 필요한 학문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배낭을 메고 산속에서 길을 찾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철학의 주제는 “인간이 무엇인가”이다. 쉽게 말하면 “나는 누구인가”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자기가 어디서 왔다가,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방황한다. 사람들은 이런 고민을 가지고 저마다 도시의 광장에서 나와 네가 만나서 토론하고 가르치고 배우고 하면서 인문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생물들은 가장 이질적인 것을 가장 매력적으로 받아들인다. 다른 것을 배척하면서도 모방하고 닮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철학은 도시에서 점점 발전해 갔다.

  울산은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형성된 공업도시이다. 그러다 보니 정이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은퇴하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철학이 발전했다면 울산이야말로 철학을 꽃피우기에 적합한 도시인 셈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다양한 직업군이 없다는 것이다. 즉, 나와 다른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이 주요 직업군을 이룬다. 동일한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은 유사한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직업군이 다양화 되고 세분화 될 수 있다면 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것이고, 더 다양한 생각들이 조화를 이룰 것이다. 그러면 울산은 더 흥미 있는 도시가 될 것이다. 그러면 나와 다른 너로 인하여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수용성이다.

  수용성이란 일종의 “영접”이다. 사람은 자기가 힘쓰고 애써서 뭔가를 이루어가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우리는 나와 다른 것을 수용하면서 내가 커지는 것이다. 한 사람을 영접하면 그 사람이 가진 모든 지식, 인적 네트워크, 은사.. 그 모든 것이 내 것이 되는 것이다.

  영접 잘하는 사람이 교양 있는 사람이다. 대학1, 2학년 때 배우는 학문이 교양학문이다. 3학년 되어서야 나의 전공을 배우기 시작한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만이 자기 전공을 배울 자격이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어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만 영접이 중요하겠는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예수님안에 있는 생명, 영생, 죄사함,치유....이루 말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받는다. 심지어 하나님의 자녀까지 된다.

  어리석은 사람들의 특징은 예의가 없다. 뒤에서 사람을 판단하고 수군거리고 이간시키기도 한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가 비난하면 그 한 사람하고만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내게서 다 사라진다. 그러므로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은 항상 예의가 바르다. 인사성도 한없이 밝다. 

  기독교 신앙은 죽도록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영접하는 것이 은혜요 능력이다. 가난도 부요함도 아픔도 기쁨도…. 이것을 받아들일 때 열매가 맺힌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2~13)

 

  타인의 지식을 받아들여 철학은 발전해 가지만 결국 “나는 누구인가”에 진정히 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여전히 방황한다.  인문학의 한계는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에 답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지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도시의 절망이다.

  예수를 영접해야만 참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다. 영어로는  

  “I am who I am” 이시다. 

 나는 나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비로소 “I am who I am” 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면서 탐욕스럽게 질투하지 않으면서도 나는 진정히 방황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

  비로소 주님 안에서 평강을 누린다. 아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최성만 목사(울산의빛 편집국장, 오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