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계/교계일반

"광복절의 역사적 의미와 한국교회"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은  우리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이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시126:1) 1945년  8월25일 남산에 태극기를 올리고 있다.(사진 위키백과)

  “쓰라는 대로 쓸 수밖에 없었고, 모든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해방이 그토록 빨리 오리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미당 서정주가 1992년「시와 시학」봄호에서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해명하면서 했던 말이다. 서정주의 이러한 생각은 당시 숨 쉬는 것 말고는 전부 일제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던 상황에서 독립운동을 하건 하지 않건 국내에서는 보편적인 인식이었다. 그러했기 때문에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을 때 일본에 부역했던 사람들은 “해방이 그토록 빨리 올 줄은 몰랐다”며, “해방이 올 줄 알았으면 그랬을까?”라고 한탄했던 것이다.

1945년 9월9일 서울의 옛 일본 정부 청사에서 미군들이 일장기를 내리고 있다.(사진 위키백과)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과 함께 광복은 도둑처럼 찾아왔다. 우리 민족은 일본의 항복 선언과 함께 지난(至難)한 굴욕의 세월을 살아왔던 일제의 식민지는 종언을 고하게 되면서 꿈에도 소원이었던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8.15 광복절은 36년 동안 나라 잃은 설움에서 벗어나서 우리의 영토와 주권을 회복한 날이다. 올해는 광복 79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물론 광복이 왔다고 해서 우리의 주권, 정부가 바로 세워지지는 못했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반도가 분단되면서 남북이 갈라지게 되었고, 우리 내부의 이념 갈등으로 분단이 더 고착화 되었다. 79년 전 광복은 우리 민족에게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이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분단이라는 불행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당시 우리 민족은 광복을 맞이하였지만 이념에 따라 편이 갈라지면서 우리 사회 내부는 물리적인 분단 못지않게 마음의 분단이 그어지고 있었다. 특히 1947년 미군정이 “당신이 가장 선호하는 신생 국가의 국호는?”이라는 설문조사에서 70%가 넘는 국민들이 ‘조선인민공화국’이라고 응답을 해서 사회주의를 선호하는 결과가 나왔을 정도로 당시 사람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을 가지기도 했다. 양반계층과 자본가들이 부를 독점하는 체제를 허물고 모두가 잘 살게 만드는 계급 철폐와 평등실현 등의 구호는 지식인, 엘리트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을 갖게 했다. 이들은 사회주의 북한을 선택해서 월북하거나 자유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렇지만 북한의 공산주의는 스탈린주의와 같은 김일성 독재자의 우상화와 모든 구성원을 노예의 삶으로 살게 하는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로 전락했다. 그리고 지금의 북한은 3대 세습과 핵개발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어 있고, 만성적인 경제난을 겪으면서 주민들이 늘 식량 구입을 고민하는 생활고에 찌든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수립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향한 축복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한반도 남쪽을 지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삼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연결되면서 해양세력권과의 교류가 빈번해졌다. 79년이 흐른 지금, 그 선택의 결과가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선망 받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대한민국의 경제성장과 번영을 이룰 수 있었던 저변에는 한국교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당시 미국 선교사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던 한국교회는 일본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공간이었다. 일제 강점기에서 다른 종교나 단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한국교회는 다른 종교나 단체들이 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을 담당하였다. 먼저, 한국교회는 독립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민족주의자들은 교회라는 공간에서 독립을 추구할 수 있었고, 교인들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시간마다 때마다 기도했다. 둘째, 일제강점기부터 공산주의를 반대하였던 한국교회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반공(反共)의 공간이었다. 특히 광복 직후 공산주의의 폐해와 북한체제의 전체주의적 성격을 간파한 지식인, 종교인들이 대거 월남하여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하면서 반공주의의 선봉이 되었다. 그리하여 사회적으로 극심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있을 때에도 한국교회는 성경에 바탕을 둔 자유민주주의의 보루 역할을 흔들림 없이 감당했던 것이다. 그 결과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민족의 저력이 기독교와 만나 성장과 번영의 시너지를 이뤄

  따라서 광복 79주년을 맞이하여 가난과 사상적 혼돈으로 위기에 빠져 있던 대한민국을 지키고 오늘에 이를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이룩한 활동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 역사의 면면을 보면 암울했던 시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새로운 시대를 열은 민족의 DNA가 있다. 그와 같은 민족의 저력에 기독교가 합쳐졌을 때 성장과 번영의 시너지를 거둘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다원화된 오늘날 지역과 계층, 사상 등 수많은 갈등으로 국가적 위기에 직면해 있는 현시점에서 반기독교적인 정서를 극복하고, 다시 거룩한 사회적 위상을 회복하여 흔들리는 국가의 중심을 잡아주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오주철 목사(언양영신교회, 계명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