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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계속해서 뜨겁게 찬양하라

(그림_국민일보)

 

  찬송에는 힘이 있다. 

  사탄은 성도로 하여금 찬송을 멈추게 한다. 

  악한 영이 우리 안에 다가와서 찬양을 감상하며 

  듣는 것으로 전락시켰다.

  찬송은 곡조있는 기도이다. 

  불러야 한다. 

  반복해서 부르고 암송해서 불러야 한다.

 

  근래에는 작은 교회도 거의 다 스크린을 활용한다. 그러다 보니 찬양을 암기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심지어는 찬양인도자들도 가사를 암기 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힘을 다하여 함께 찬양하는 것으로도 사단의 권세를 결박할 수 있다.

  유다 여호사밧때 모압 암몬 연합군이 공격해 왔을 때 찬양대를 조직하여 감사찬양을 불렀다. 그때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그들을 물리치시고 유다에게 승리를 안겨다 주었다.(대하20장)

  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찬송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찬송부르는데 힘이 없고 부르다 무너지고..4절까지 부르지도 못한다. 깨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계속 찬양하고 함께 찬송하라.

 

  큰 풍파 일어나는 것 세상줄 끊음일세 주께서 오라 하시면 내 본향 찾아가리(찬485장 4절)

 

  찬양만 해도 고난에 대한 해석이 나온다. 불러라! 불러야 산다. 찬양에는 영성이 있다.하나님의 존전앞에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그게 찬양이 이끄는 영성이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이유도 찬송하게 함이다. 삼위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이 동일하다.

  성부 -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6)
  성자 -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2)
  성령 - “이는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1:14)

  신안군의 전설적인 사역자가 있었다. 문준경전도사이다. 그분의 전도로 귀한 사역자가 된 사람들이 꽤 많다. CCC 대표 김준곤목사, 정태기목사 등이 대표적인 분이시다. 문준경전도사는 아픈 사람을 만나면 찬송을 불러줬다. 찬양을 들을 때 그들이 살아났다. 회복된 것이다.

  “양치는 언덕”, “길은 여기에” 라는 작품을 남겻던 미우라 아야꼬 라는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가 있다. 이 사람은 심한 중병에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했었다. 그때 작은 교회에서 병원을 방문해서 찬양을 불러줬다. 그 찬양을 듣고 회심하였고 그 찬양을 불러준 청년과 결혼하여 귀한 섬김의 사역을 하게 된 것이다. 그때 불러주었던 대표적인 찬송이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다.

  찬송을 회복해야 한다.

  듣는 것으로 멈추지 말고, 소리내어 큰 소리로 아름답게 반복적으로 역사가 일어날때까지 불러라.

  새하늘과 새땅에서 천사들이나 성도들이 하는 일은 찬송하며 예배하는 일이다. 지금 훈련해야 새하늘에서도 가능하다. (계5:12)

  찬양하는데는 정도(正道)가 없다.

첫 번째는 어색할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부르면 찬송이 나를 이끌어간다. 어느순간에 나는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인다. 그때 기적이 일어난다.

새노래, 여호와께 올린 찬송을 우리 입에 두셨으니(시40:3) 찬양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불러라! 새노래를.... 찬양을 시작할 때에 역사가 나타난다. 찬양은 환경을 뛰어넘고, 돌파력이 생긴다. 빌립보 옥문을 열게 한 것도 찬양이다. 지금도 이 역사는 계속 된다.

  원망과 불평은 불행과 우울증과 고통으로 묶어 놓지만 감사와 찬양은 자유와 해방을 가져온다. 빌헬름 웰러는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행복하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감사하니까 행복해지는 것이다. 천국 같은 환경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감사하니까 비로소 천국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찬양은 우리를 그 천국으로 인도해 간다. 하나님은 우리가 찬양할 때 우리 안에 거하신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시22:3)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가정과 교회가 가장 강력하다. 백향목궁에 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찬양 중에 거하신다. 찬송을 부르되, 반복해서 부르고 뜨겁게 부르고 역사가 나타나기까지 불러서 어두워져 가는 시대에 강한 주의 용사로 쓰임받기를 바랍니다. 아멘

울산오후교회 최성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