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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역사의 종말에서 승리하신 그리스도와함께 현재를 해석해야...

참호 속에서 천리를 본다.
기도의 골방에서 말씀과 머물라

 

승리하신 그리스도

  오순절날 성령강림으로 교회가 탄생하였다. 그 교회의 머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골1:18) 성령의 역동적인 역사하심으로 교회는 날마다 자라갔다. 날마다 구원받는 이들이 더해가자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한 사단의 공격도 치밀하고 과감하게 나타났다.

  마귀의 계략은 교회 안팎으로 나타났다. 외부적으로는 기득권자들과 정치권력자들의 공격이 있었고, 내부적으로는 성도들의 거짓말과 분쟁 등으로 교회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가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성도들이 핍박을 피해 흩어지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 결과 복음이 사마리아로 넘어가고 안디옥까지 전파되었다. 사도행전1장8절의 말씀이 성취되고 있었다. 

  세속사와 구속사는 어떠한 기준으로 그 경계로 그을 수 있도록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 알듯 모를듯 서로 중첩되어 있는 부분이 아주 많이 있다. 그러므로 획일화 된 해석은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특히 고레스의 포로귀환정책이 그러하다.

  한국기독교회사를 연구하는 분들은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겨진 우리나라가 왜 38도선으로 그 경계가 그어졌는지를 설명하면서 “1938년 9월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열린 제27차 장로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38년도에 우상숭배를 장로회 총회차원에서 가결하였으므로 38도선이 그어졌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해석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전쟁중에 부산에서 목회자들이 모여서 벌인 회개운동으로 인해 하나님은 한반도의 남한 절반을 6.25사변 중에서도 지키고 보호하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주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세속역사를 구속사의 흐름과 하나님나라안에서 해석한 것으로 세속사와 구속사는 이처럼 복합적인 묘사와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다루실 때에 이웃나라들을 들어서 사용하실 때가 많이 있다. 사사기의 역사가 그것을 자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아가야 할 정치참여운동이나 시민운동은 수평적인 시각보다는 통시적이고 입체적인 안목이 중요하게 요구되어진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시드기야왕 때 유대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것을 말씀 하셨다. 심지어는 안끌려가려는 자들에게 오히려 화가 미칠 것임을 분명히 하셨다.(렘37:12-13) 거짓선자들이 말한 “샬롬 메시지”는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라 거짓말이었다. 이처럼 이해할 수 없었던 세속역사와 구속사의 충돌은 70년 포로생활이 끝나고서야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도성이 황무지가 된 것이다. 안식해야 할 땅이 백성들의 탐욕으로 쉬지 못하고 탄식한 것이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을 바벨론으로 옮겨심으로 비로소 그 땅이 안식을 누리게 된 것이다.(레26:33-34) 

  결국 세속사는 하나님의 역사안에서 구성되고 운영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장은 스데반의 순교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같이 이해하기 어렵고 대응조차 하지 못하여 무기력하게 여겨지지만 범사에 기한이 있고 때가 있으며 하나님은 때를 따라 모든 것을 아름답게(토브) 하심을 믿으며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전히 우리는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다. 이럴 때 세속 역사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손끝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섭리)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역사끝에서 현재를 해석해내야 한다. 역사의 종말에서 승리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위에서 현재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기도의 골방에서 말씀 붙들고 오래동안 머물러야 할 것이다. 과도하게 성경읽고 기도하여 쓰러지는 경우가 생겨나길 바란다. 성령없는 모택동도 “참호속에서 천리를 본다”고 했다. 골방에서 종말을 보는 자들에게 한국교회와 조국을 맡기신다.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 영원하리라 아멘

<편집국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