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행복은
모압이 아닌,베들레헴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빈 배를 만선으로 바꾸십니다.
모든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가길 원합니다. 저마다 행복에 목이 마릅니다. 그래서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다니지만,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행복을 외적인 조건으로 보는 경향이 많습니다.
영화 ‘아마겟돈’은 지구로 날아오는 소해성에 의한 지구 멸망의 위기를 다룬 것입니다. 그 소해성으로 가서 구멍을 뚫어 핵폭탄을 장착시켜 폭파하는 내용입니다. 임무를 위해 이곳에 가는 자들은 전부 목숨을 걸고 갑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부에 조건을 이야기합니다. 교통 딱지를 면제해 달라. 내가 아는 두 명의 여자에게 시민권을 주라. 스베가스의 시저스 팰리스에서 한 달을 자게 해 달라. 진짜 케네디 살인범을 가르쳐 달라. 백악관의 링컨이 잔 침실에서 한 달간 자게 해 달라. 또 평생 세금을 면제해 달라는 것 등등을 요구합니다.
이것이 무슨 행복의 조건입니까? 위의 조건이 충족되면 행복할 줄 압니다. 다 충족되어 행복이 아닙니다. 건강만 하면 행복할까요?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부자면 다 행복할까요? 그렇다면 베드로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하워드 휴즈라는 사람은 억만장자이며 외모도 준수했지만, 결벽증 때문에 죽기 10년 전부터 유리병 안에서 혼자 살다가 죽었습니다. 하워즈 휴즈의 마지막 유언은 “아무것도 아니다”입니다. 행복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내 안에서 솟아나는 것입니다.
시편 1편은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첫째로, 행복은 악인의 꾀 - 말을 잘 구별해야 합니다. (1절) 들어야 할 말과 듣지 말아야 하는 말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말이 들린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들을 들으면 인생은 황폐하고 불행한 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행복과 회복과 승리로 가는 것입니다. 들은 대로 인생은 갑니다. 잘 듣는 것이 행복의 길을 결정합니다.
둘째로, 행복은 죄인들의 길 - 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1절). 어느 길이든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길에는 행복의 길과 불행의 길이 있습니다. 길이 아닌 것을 뚫고, 길이 아닌 곳으로 가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른길은 힘들어도 계속 가면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그래서 길을 갈 때는 항상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 물어봐야 합니다.
‘나는 길이요’라고 하신 예수님이 길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말씀만큼 좋은 길은 없습니다. 말씀이 우리의 길을 닦아 줍니다. 길을 찾으면 행복이 옵니다.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입니다. 길을 계속 가다 보면 목적지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 방황을 멈추고 예수 안에서 행복의 길로 달려가시길 바랍니다.
셋째로, 행복은 오만한 자의 자리, 자리싸움입니다.(1절) 신앙은 자리싸움입니다. 어느 자리에 가느냐에 따라서 신앙은 달라집니다. 악인의 자리에 있는 것은 행복이 마르는 자리요, 멸망의 자리입니다. 왜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마르지 않습니까? 물가에 심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늘 예배의 물가, 기도의 물가, 순종의 물가에 심어져 있어야 행복한 사람입니다.
넷째로, 행복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겸손함입니다.(2절)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말합니다. 교만해서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교만해서 행복한 사람은 없습니다. 겸손해야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기 때문에 행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 겸손해야 합니까? 행복의 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겸손한 사람의 특징은 즐거워합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쉽게 웃는 이유는 순수하고 겸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아무리 웃겨도 웃지 않습니다. 별일 아닌데 쉽게 웃는 사람이 순전하고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즐거워합니다. 율법을 즐거워하고 묵상합니다. 묵상의 meditation’은 ‘medicine(medicina*라틴어)’에서 왔습니다. 감기약을 먹으면 감기에서 치료를 받듯이 말씀을 묵상하면 말씀이 나의 영혼을 고치고, 치료하고, 회복시킵니다. 그래서 삶이 형통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행복한 사람의 결론이 시편 1편 3절에 나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절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행동하리로다”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는 복이 임하고, 시절을 따라 열매를 맺고, 가뭄에도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형통해지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행복의 길을 찾아 나선 여인이 있습니다. 바로 나오미입니다. 그녀는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남편의 말을 듣고 행복의 땅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의 땅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남편과 자녀가 다 죽고 패가망신하는 불행의 삶을 경험합니다. 그 후 불행의 땅 모압에서 행복의 땅 베들레헴의 풍년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나오미는 다시 행복의 땅 베들레헴으로 며느리들을 남겨 두고 돌아오려 합니다. 이때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가겠다고 다짐합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룻 1:16-18)
며느리 룻은 모압의 여인이지만 행복이 넘치는 하나님의 땅 베들레헴에서 행복의 파랑새인 보아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의 할머니가 되고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모압 같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은 베들레헴에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치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질문의 해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해답이요, 희망이요, 행복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아픔을 치료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빈손을 풍성함으로, 빈 배를 만선으로 채우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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