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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논설위원(이 달의 말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우리나라는 임진왜란 때 두 사람의 사절을 일본에 보내어서 풍신수길(토요토미 히데요시)이 우리나라를 침략할 의사가 있는지 알아보게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 갔다 온 두 사절의 의견이 정반대였습니다. 하나는 풍신수길이 정말 우리나라를 쳐들어올 것이라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풍신수길은 인물이 왜소하고 보잘것없어서 절대로 우리나라를 침략할 인물이 되지 못한다고 보고를 한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나라 조정은 혼란을 겪었습니다. 

  결국 서로 머리 터지도록 싸우느라고 일본의 공격에 대해 준비를 해놓지 못한 상태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많은 백성들이 죽었습니다. 이때 율곡은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는데 사실은 십만양병설도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을 막으려면 오십만 명에서 백만 명의 군대를 준비했어야 했습니다.

  인생에는 분수령이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대처하느냐,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진리를 잘 보여주는 것이 민수기 13장의 가데스 바네아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을 떠난 지 대략 11일 만에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 후 일단 각 지파에서 한 명씩 12명의 정탐꾼을 선발하여 40일간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파견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에 대하여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포도 한 송이로 충분한 설명이 되었습니다. 그 땅이 얼마나 비옥했던지 포도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어서 어깨에 메고 돌아왔습니다. 우리나라 고창에서 포도나무 한 그루에 4,500송이가 달려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하였는데 이를 생각해 보면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가나안 땅은 비옥한 땅, 축복의 땅이 분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열 명의 정탐꾼들은 그 땅의 강성한 거주민과 크고 견고한 성읍만을 보면서 자신들을 메뚜기로 비하하며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습니다. 만약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자 하면 반드시 패할 것이고 처와 자식들은 노예가 될 것이라고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이에 선동된 백성들은 갈렙과 여호수아를 돌로 쳐 죽이고 모세와 아론을 끌어 내린 후 자신들의 지휘관을 새롭게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40일의 정탐일 하루를 일 년으로 계산하여 40년동안 광야에서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고 모든 출애굽 1세대들은 광야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인생에는 분수령이 있습니다. 그 분수령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게 됩니다. 인생의 분수령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죄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성령 모독죄입니다. ‘모독하다’는 단어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스스로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한 말인 ‘참람하다’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참람한 자 즉, 성령을 모독하는 자들은 메시야로서의 예수를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그를 모욕하고 비판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죄 살인, 간음, 배신 등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성령 모독죄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가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가데스 바네아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무엇을 준비하셨습니까? 창세기 11장에서 인간이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탑을 쌓아 자신들의 능력만으로 살아가며 자신들의 이름을 높임 받으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 없는 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인간의 죄요 교만이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리서치를 보면 국민소득 1만 불이 되었을 때 교회의 성장이 꺾였습니다. 국민소득 3만 불이 되었을때 비종교인구가 종교인구보다 앞서게 되었습니다. 즉 더이상 종교가 없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종교생활만이 아니라 서구에서는 이미 나타난 현상입니다. 인간의 죄성은 하나님 없는 세상을 만들고 스스로 높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벨탑 사건 때 인간의 교만을 심판하셨고 이에 언어를 치셨습니다. 이때까지 언어가 하나였는데 나뉘어졌고 언어가 소통되는 사람들끼리 흩어져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 그룹이 부족이 되고 민족과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셨고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흩어진 이들을 구원하시고자 갈대아 우르에 있던 아브람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땅, 후손 그리고 복의 근원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아브람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워 흩어진 민족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을 통해 70명이 애굽의 고센땅에 정착하게 되었고 애굽 400년 동안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출애굽 할 때 약 300만 명의 백성들로 성장하였습니다. 출애굽 후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며 복의 근원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제 단 하나만 남았습니다. 바로 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께서 주인이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제사장 나라가 되어 창세기 11장을 통해 흩어진 이들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요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구속사를 거부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일하신 것을 백지화 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한 발자국만 딛으면 들어갈 가나안 땅에 입성하지 못하고 다시 광야로 들어가 40년을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또, 출애굽 1세대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가데스 바네아 사건을 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미워하시는 불신앙이 무엇인지를 잊으면 안 됩니다. 단순한 원망과 불평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를 거부하고 섭리를 거스르면 안 됩니다. 

  인생에는 분수령이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을 살펴보면, 창세기 6장에서 세상을 재창조하기 위해 부름받았던 노아, 바벨탑 사건으로 흩어진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부름받았던 갈대아 우르의 아브람,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위해 부름받았던 미디안 광야의 떨기나무 아래 모세 그리고 신약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나를 따르라’ 부름받았던 제자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순간이 인생의 분수령이라 생각됩니다. 이때,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인생을 좌우하게 됩니다.

나의 형편과 처지를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의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게 되면 주님께서 사람 낚는 어부로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작은 헌신을 통해 오천 명을 먹여 살리는 인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분수령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순종함으로 예비된 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