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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논설위원(이 달의 말씀)

그리스도 앞에서 떨고 있습니까?

 “이성의 시대”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종교적 천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괴테가 문학적 천재이고, 모차르트가 음악적 천재이듯이, 나사렛 예수는 종교적 천재라는 것이지요. 
  “이성의 시대”로 상징되는 모더니즘이 끝나고, 바야흐로 “영성의 시대”에 접어든 요즘,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적 구루’라고 생각하길 좋아합니다. 붓다처럼, 선사들처럼, 우리를 깨달음으로 인도해주는 영적 스승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나사렛 예수는 ‘종교적 천재’도 ‘영적 구루’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오, “주님”이십니다. 물론, 종교적 천재로서의 면모도 있으시고, 영적 구로로서의 면모도 있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알고,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또한 ‘주님’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심판하실 분이시며, 또한 우리를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우리는 심판하실 분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우리를 구원하실 분 앞에서 기쁨에 떨어야 합니다. 떨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앞에서 떨지 않는 목사를 조심해야 하고, 그리스도 앞에서 떨지 않는 중직자는 피해야 합니다. 건강한 공동체는 그리스도 앞에서 떨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누구이십니까? 나사렛 예수가 진정 ‘하나님’이시오, ‘그리스도’시오, ‘주님’이심을 믿는 사람은 그리스도 앞에서 떨게 될 것입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외국에 갔는데 거리에 포고문이 나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왕비가 대단히 값비싼 장식물을 분실했다. 30일 이내에 그것을 찾아오는 자에게는 큰 상을 내리겠지만, 만일 30일이 지난 후에 그것을 가지고 있는 자가 발견되면 사형에 처하리라.’ 
  그런데 마침 그 나라에 처음 방문한 여행객이 우연히 그 장식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31일 째 되는 날, 그것을 가지고 왕궁에 가서 왕비 앞에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왕비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30일 전에 포고령을 내렸을 때 여기에 있었나요?” “예.”
  “30일이 지난 뒤에 이것을 가지고 오면 어떤 벌을 받는지 알고 있나요?” “예.” 
  “그러면 왜 30일이 지나도록 이것을 가지고 있었나요? 만일 당신이 이것을 어제까지만 가져왔더라도 큰 상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당신은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요?”     
  “만일 30일 전에 이것을 돌려드렸다면 사람들은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거나 당신에게 존경을 표하기 위해서 가져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내가 오늘까지 기다렸다가 이 장식물을 가져온 것은, 나는 결코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흔히 세상은 BC(기원전)와 AD(기원후)의 시대로 역사를 양분하는 시대는 끝났고, BC(Before Covid) 코로나 이전과 AC(After Covid) 코로나 이후 시대로 시대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만큼 코로나로 인하여 소위 ‘뉴노멀’, 새로운 기준이 생겼기 때문이요, 새로운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도 새로운 시대에 발맞추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시도도 좋고, 뉴노멀도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버려서도 안되고, 잃어버려서도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코로나 이전이나 코로나 이후나 ‘하나님’이시오, ‘그리스도’시오, ‘주님’이십니다.
  코로나 이후 성도들의 주일예배 출석이 회복이 안되는 것보다, 여러 모임들이 침체가 되는 것 보다 더 두려운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앞에서 ‘떨림’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이 ‘떨림’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회복될 것입니다. 아니 반드시 하나님이 우리를 이 시대의 ‘남은 자’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앞에서 떨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