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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행복한 세상 만들기

"선한 영향을 끼치며 주의 길을 가리라"

 

 

  오늘 아침에는 갑자기 예수님이 말씀하신 요한복음 12장 24절이 생각이 났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이 왜 언제, 어느 때에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 예수님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사람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때 동행했던 제자들과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번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우리의 왕’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자신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가 가까웠다는 의미이다. 그렇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해야 할 사역이 있다면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밀알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하기에 기꺼이 죽음의 길인 십자가를 선택하셨다.   

 

    그럼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살아가는 삶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몇 달 전 KPM(고신총회 세계선교회) 본부장과 선교사 4가정이 필자의 교회에 와서 선교 축제를 하였다. 그 때 KPM 본부장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예수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를 소개해 주었다.

  “목사들은 국내에서 목회하지만, 선교사들은 고국을 떠나 선교지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데에 쓰임 받는다. 고국을 떠나 사역하다 보면 향수병에 걸리고, 문화적 차이와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또 자녀 교육이나 선교사역의 열매가 잘 보이지 않아 힘들다 보니 우울증. 공황장애를 겪는 이들도 있다. 

  이런 환경으로 힘들어하는 한 선교사가 스트레스도 풀 겸, 코끼리 공연장에 갔다. 조련사가 훈련한 대로 코끼리는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고, 야구하는 것을 본 관광객들이 열광했다. 조련사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재미 삼아 누구든지 코끼리의 눈에서 눈물이 나게 하면 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저마다 돈 받을 욕심으로 코끼리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자 한 남자 관광객이 나가서 코끼리에게 자신의 처지를 말했다. 나는 한국 선교사인데 고국을 떠나 생활하다 보면 고향이 그립고, 형제·자매가 그리워 눈물을 흘릴 때가 있고, 또 이 나라 언어를 잘 사용하지 못해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또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해야 하는데 물질 때문에, 환경 때문에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증, 공황장애를 겪는다고 말해주자, 코끼리가 눈물을 줄줄 흘렸다. 결국 조련사는 내기에 졌고, 돈도 잃었다.

  그 후에 선교사는 또다시 코끼리 공연장에 갔는데 이번에는 누구든지 코끼리의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하고, 긴 코를 좌우로 흔들게 하면 돈을 주겠다고 했다. 관광객들이 나와 저마다 노력했으나 헛수고였다. 그러자 그 선교사가 이번에도 코끼리에게 다가가 말했다. “너 나 알지?” 그러자 코끼리가 선교사를 알아보고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선교사는 코끼리에게 말했다. “야 코끼리야! 너 이 일 그만하고 나와 같이 선교지에 함께 사역하러 가자”라고 하니 코끼리가 깜짝 놀라 긴 코를 좌우로 힘차게 흔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조련사가 졌다고 한다.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겠지만 주의 길을 따라가는 사역이 얼마나 힘든지를 에둘러 표현한 이야기다.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행복하다.

 

  오늘도 우리는 주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 길을 걸어간 수많은 분 중에 기억에 남는 분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거창한 곳, 내 고향 거창에는 6개의 고등학교가 있다. 그중에 거창고등학교 교정에는 한 손에 성경을 들고, 다른 한 손은 산을 가리키는 동상이 있다. 그 주인공은 거창고등학교의 전영창 교장 선생이다. 이 동상은 전 교장이 돌아가신 후에 제자들의 정성으로 건립되었다. 

  전영창 교장 선생은 1947년 브라운 소령의 도움을 받아 한국 최초의 유학생 여권을 들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와 웨스턴 신학교에서 유학하였다. 그는 미국 유학 시절 로버트 슐러 목사와 함께 공부했다. 1950년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에 6.25전쟁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한다는 소식을 듣고, 학장에게 찾아가 즉시 귀국하여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소신을 밝혔다고 한다. 그의 말에 감동을 받은 학장이 귀국 하루 전인 1951년 1월 8일 졸업시험을 치르지도 않았는데 그에게 졸업장을 주어 귀국하게 했다. 

  1951년 1월 군용기 편으로 수영 비행자에 돌아온 전영창은 부산에서 피란민을 위한 구호사업을 하였고, 그해 6월 텐트를 치고 시작한 임시병원에서 장기려 박사와 함께 부산 복음병원(현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을 설립하는데 앞장을 서다가, 그 후 경남 거창에 내려가서 무너져 가는 교사를 다시 수축하고 몇 명 안 되는 학생들에게 기독교 교육에 기초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빚이 있는 학교, 허물어져 가는 교사였지만 불타는 사명감으로 거창고등학교를 세워갔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자녀들도 이 학교에서 교사, 교장으로 사역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인재들을 배출시켰다. 거창고등학교 하면 “직업 선택 십 훈”이 생각난다. 첫째, 월급이 적은 곳을 택하라. 둘째,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째,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째,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째,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말라. 여섯째,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째,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은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째,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째,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하는 곳이라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열 번째,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거창고등학교의 “직업 선택 십 훈”은 많은 사람에게 지금도 신선한 도전을 주고 있다. 

  

  이런 자세로 살아가자

 

  주를 믿는 우리는 이 세상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한 젊은이가 영국의 신학자 퓰리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겠습니까” 퓰리처는 대답했다. “만일 그대가 영국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대를 들어 써 주실 것이다”라고 했다. 주경가 베이커는 “인생은 계단과 같다. 위로 올라가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밑으로 내려가면 자신을 알게 된다”라고 했다. 그리고 “바다가 모든 강 가운데 왕이 되는 것은 바다가 가장 아래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겸손하게 남을 낫게 여기고, 한 알의 밀알로 살아가는 자에게 나타나는 선한 열매이리라. 우리는 주님의 빛과 소금임을 기억하고 삶의 현장에 아름답고 존귀하게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한 알의 밀알로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