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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생활 속 신앙이야기

부활의 단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2024년 3월 31일은 특별한 날이다. 이날은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날이 새로운 것은 입술 부르트는 불면의 그리움들로 기다렸던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기쁨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셨기 때문이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마26:6)

 

  우리에게 이날은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 되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이 부활절을 맞이할 때마다 큰 감격으로 다가온다. 이 감격을 맞이하는 우리는 주님의 사랑 앞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눈앞의 현실에 울지 말고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말씀으로 돌아가서 첫사랑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길이 되어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사단과 죄가 우리 인간에게 주는 최악의 것은 죽음이지만 인간 기쁨의 최고의 것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사건일 일 것이다. 성경에서 창세기 5장에는 12명의 이름들이 등장한다. 25절에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5장에는 “죽으니라 … 죽으니라…”가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은 낳고 죽는, 있다가 없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인간 지혜의 최후의 자각은 솔로몬왕의 전도서 1장의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된 허무 의식이다. 그런데 이 헛됨을 깨뜨린 사건이 부활 사건이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미쳐 버릴 만큼 큰 기쁜 소식 외에 허무로 무너져가는 이들에게  전할 말이 어디 있을까? 

  인류가 소유한 기록물 가운데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소식 그리고 수많은 증인들을 확보하고 있는 4 복음서만큼 성스러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이 복음서 중에 요한복음의 거의 절반의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일주일간의 기록이다. 부활의 증인들 사건들은 사도행전의 수백 명의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 증인들이었다.

  인류증언사(人類證言史) 가운데 이보다 선명하고 분명한 다수의 순교자를 낸 것은 없었다고 본다. 공모, 사기 사건이라면 무슨 대가(代價)를 바랐을까. 금생과 내세(來世), 영육간(靈肉間)에 백에 하나라도 유익이 없는 일을 위하여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기의 순교를 해야 할 실리적 도덕적 동기가 설명이 안 된다. 

  안식일이 주일로, 할례가 세례로 회당이 교회로, 바뀌진 사회학적 이유도 부활의 역사성 이외에 근거를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예수 부활의 실존적 의미로 접근하여 보면 예수님이 죽었다가 살아나신 것이 역사적 절대사실(絶代事實)이라면 그가 하나님인 것이 절대사실이며 그의 피가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의롭다 함을 얻게 된 것이 절대 사실이며 그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 되는 일과 영생 얻는다는 사실을 절대 보장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몸의 부활과 재림의 약속은 절대 진리 절대 약속이다.

부활의 봄날! 부활의 증인되길 소망합니다.

  다시 말하면 새 생명, 풍성한 생명을 주신다는 절대 보장이며 나를 보호하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넘치도록 주시며 내 기도를 들어 주시고 생명을 주시고 사랑을 주시고 평안과 기쁨을 주시며 이 모든 것을 더하여 몸의 부활과 재림 약속의 절대 보장이시며 그의 말씀은 절대진리 임을 절대 보장하신 것이다. 이 부활하는 봄날에 예수 부활하셨다. 무덤에서 승리하셨다는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성두현 장로(오산목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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