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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생활 속 신앙이야기

커피 한 잔의 힘

  “교역자 모임, 오늘 9시 30분 출발. 
   ***카페에서 합니다.”
  ‘불현듯 회의라, 그것도 카페에서?’
  우리 교역자들은 눈이 동그래진다. 이례적 일이다. 더군다나 교회 차량이 아닌 목사님의 자가용으로 간다. 
  ‘머선 일이지요?’ ‘글세요. 머지?’

"머선 일이지요?" 북울산교회 옥재부 목사님과 교역자들의 행복한 회의, 인증!

  우리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뭔가 잘못된 일이 있나 싶어 살짝 긴장이 감돈다. 일부러 카페에까지 데려다 놓고 다그치시는 것은 분명 아니실 것인데. 평소에도 우릴 다그치시거나 나무라신 적이 없으셨으니까. 그런데도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당황스럽긴 하다.
  ***카페 근처에 도착했는데 핸들을 돌리신다. “마우나로 올라갑시다.” 올라가는 길에 먼 산을 올려다보며 눈이 왔느니 안 왔느니 시시콜콜 이야기하다가 마우나 리조트 근방에 닿는다. 
  아직 카페 문을 열려면 십여 분 기다려야 한다. 목사님은 모두 따라오라며 앞서 야산 초입으로 향하신다. 얼어붙은 땅, 그 위에 쌓인 눈에 발자국을 찍으며 입산하려는 순간 ‘입산 금지’표지판에 우린 도토리 놓친 다람쥐처럼 돌아선다. 
  5**카페는 이제야 문을 연다. 커피와 빵은 아직 준비 중이다. 엉거주춤 자리를 잡는다. 허리가 기역자로 굽은 늙은 소나무가 보이는 창가에 둘씩 마주 보고 앉는다. 커피가 준비될 때까지 카페 풍경을 둘러보고 익숙하지 않은 회의 분위기의 전조를 각자 익히느라 멀뚱멀뚱한 눈빛들이다. 커피가 준비됐다는 알람이 울리자 서로 가져오겠다고 일어서지만 목사님이 잽싸게 나가신다. 차량에 커피에 완벽한 서비스를 맞추어주시려는 듯싶다. 커피 네 잔, 따끈한 빵까지.  
  “자, 지난 주 보고와 이번 주 일들에 관해 이야기 해보세요.”
  분위기라곤 모르시는 목사님. 커피가 나오자마자 이야기를 해보라니, 큭, 웃음이 터진다. 이제 얼마 후면 은퇴하실 우리 목사님. 실은 우리가 틈만 나면 목사님께 카페, 레스토랑, 예술문화공연 등등의 맛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일하다 보면 시간이 모자라고, 새벽기도를 하느라 잠이 그리운 이들이어서 목사님을 제대로 모셔본 적이 없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우리가 아니어도 누군가를 만나러 밖으로 다니실 목사님이 이렇게 멋이라곤 없으셔서 어쩌나 싶다. 
  그나저나 무슨 이야기부터 꺼낼까? 일단 각자 담당 기관 이야기를 서두로 지난 주 전도 팀이 모여 불티 날리게 의논했던 전도 이야기, 그리고 목장 이야기,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터져 나온다. 그런데 평소 교회 회의실에서 나눴던 대화(토론토의)보다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아이디어는 레벨 업 된다. 그런 데다가 진행 속도까지 초스피드다. 
  공간만 살짝 바꿨을 뿐인데 표정이 달라지고 목소리가 달라진다. 게다가 커피에다 빵까지 쏘시는 목사님. 하지만 커피 한 모금도 빵 한 조각도 남기는 건 금물. 우리 목사님은 음식 남기는 걸 못 보신다. 오늘은 커피 한 잔으로 두 사람이 마시지 않아도 되니 이만해도 다행. 
  “목사님, 다음 주 회의도 밖으로 나가서 하면 어떻겠습니까?”
  대답이 없으시다. 보나 마나 안 된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목사님도 너무 좋아하시는 모습이 역력하셨으니까. 커피 드실 때 눈이 내내 반달눈이 되신 걸 우리는 다 봤다. 
  커피 한 잔 곁들이면서 했던 회의 시간이 케이티엑스 열차처럼 지나갔다. 점심시간이다. 이왕 나온 김에 특별히 점심까지 쏘시겠단다. 
  ‘오! 부디 오늘 같은 날만 있어다오. 오, 해피데잉!’
  특별한 날을 만드는 김에 다들 고기를 먹으러 가잔다. 그래봤자 오리 불고기 한 판에 국물 조금. 네 사람이 둘러앉아 오리 한 마리, 오리탕 한 냄비를 시킨다. 고기양은 적다. 밥이라도 실컷 먹어야겠다 싶어 볶음밥 4개를 주문하는데 “으허! 밥 3개만 해도 충분하지.”라신다. “그렇습니다. 조금 모자란 듯 먹어야 건강에도 좋습니다.” 밥 1개는 포기한다. 그럴 줄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모자라는 것 같은데 숟가락 놓는 순간 배가 빵빵 불러온다. 역시 배가 고프고 부르고는 위장 크기에 달린 게 아니라 뇌의 의식에 달렸다. 
  돌아오는 길 차에서 목사님이 말씀하신다. 
  “종종 이렇게 회의하면 좋겠지요?” 
  “당연합니다 목사님. 그런데 갑자기 이러시면 좀...”
  당장 다음 주가 기다려진다. 그나저나 회의한 내용들 정리하고 일을 만들고 움직이려면 평소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갈 것 같다. 커피 한 잔의 에너지가 이렇게 일을 복제해 낼 줄이야. 목사님이 계속 이렇게 진행하실까 봐 살짝 걱정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어쨌든 목사님의 공간이동, 순간이동이 우리를 봄볕에 돋는 움처럼 만드셨다.       

설성제 전도사(북울산교회,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