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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거룩하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성령님과 동행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실제로 살아내는 부활의 삶!

제3계명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말라

 

여호와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해 주신 이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열 가지 말씀 중에서 아마도 가장 가벼운 마음으로 스치듯 지나치게 되는 말씀이 바로 3계명이 아닐까. 십계명을 마주하는 크리스천들에게 3계명은 그저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안되는구나’ 라고 생각하며 지나간다. 마치 2계명에서 4계명으로 건너가기 위한 다리 정도로 말이다. 사실 세 번째 계명은 크리스천으로서 살아가는 태도와 행동에 있어서 첫 번째, 두 번째 계명에 못지않게 매우 중요하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 힘썼다. 함부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기 위해서 아예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고유명사는 ‘야훼(여호와)’인데, 성경에 ‘야훼(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 ‘나의 주님’을 뜻하는 ‘아도나이’로 대신해 읽기 시작했는데, 후에는 이것이 풍습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고유 이름인 ‘야훼(여호와)’가 나오면 아예 부르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풍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서 학문적인 글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쓸 때 ‘Yahweh’라고 모음을 넣어서 쓰지 않고, 자음만을 써서 ‘YHWH’로 여호와를 표현한다. 모세오경을 사본으로 기록했던 사람들은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손을 씻었고, 혹시라도 그의 이름을 잘못 적거나 틀리게 되면 수정을 하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 쓰는 신중함을 가지기도 했다. 

  도대체 여호와라는 이름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신중하고, 조심히, 소중하게 다루는 것일까? 그리고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하는 뜻은 무엇일까? 본 지면에서는 이 두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을 중점적으로 찾아보려고 한다. 먼저 여호와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해 주신 이름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최초로 계시해 주신 사건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떨기나무 위에 불꽃으로 나타나셔서 말씀하신 때였다(출애굽기 3~4장).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해 내라는 사명을 주시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시면서,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라고 말하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친히 자기의 이름을 스스로 계시하신 이유는 한 가지이다. 우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를 대체하기 위한 다른 도구나 수단의 이름은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 유일하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스스로 사람들에게 계시하심으로서 증명하셨다. 대표적인 사례가 출애굽에서 보이신 열 가지 재앙이다(출애굽기7~12장).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재앙은 어쩌다 열 가지가 된 것이 아니었다. 애굽 사람들이 구원의 대상으로 믿고 왕으로 모셨던 열 가지 종류의 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무의미하고 무력하다는 것을 하나님 스스로 나타나셔서 보여주신 사건이었다. 여호와라는 이름 외에 구원을 이룰 수도, 섬길 다른 왕은 없다. 영원한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하시는 유일한 이름이기에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구원받은 백성들의 상징과도 같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3계명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은 금지하셨다. 

  예수님과 성령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죄인인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또 조심할 뿐이었다. 그러나 죄인 된 우리는 살면서 아무리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해도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십시오(마태복음 6장 9절)”라고 하라고 일러 주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십계명을 처음 주셨을 때와 같이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증언하는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는 소극적인 신앙을 넘어 거룩하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성령님과 함께 동행하며 예수님의 삶을 재현해 내는 부활의 삶으로 나아가자. 

김보민 목사(함께걷는교회)

*다음호에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