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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

제2계명 너를 위해 어떤 형상으로든 우상을 만들지 말라

 

우상의 형상에는 실존하는 살아있는 힘이나
영향력이 있다고 믿는 믿음이 존재해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두 번째 말씀은 요즘을 사는 현대인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불과 1980~90년대 초만 해도 마을마다 입구에 악한 기운으로부터 지켜주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나무로 괴상하게 만든 장승이 있었다. 마을마다 큰 나무 아래 산당을 만들고 대소사가 있을 때면 그 아래에서 평화와 안녕을 위해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현대에는 그런 우상들이 문화재처럼 일부 남아있을 뿐이니 우상을 숭배한다는 말에 공감대를 형성하기는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지금은 십계명에서 말한 우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보는대로 살아가는 사람, 
시각적 이미지를 경계하라

  우상의 형상 안에는 실제로 존재하는 살아있는 힘이나 영향력이 있다고 믿는 믿음이 존재한다. 그 믿음은 보통 생계와 깊은 연관이 있다. 농사가 주된 업이었던 고대에는 농사와 관련된 우상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다. 또 전쟁에서 패배하면 엄청난 기근과 고통이 따르기에 전쟁과 관련이 있는 우상도 많았다. 이처럼 우상화된 형상은 자신이 믿는 믿음의 증거물이었다. 

 

나를 대신해서 안정감과 평안함을 주는
믿음의 증거물은 우상이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의 증거물을 만드는 금지하는 차원에서 두 번째 계명을 주셨다. 이 형상을 만들지 못하도록 금하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로, 사람은 보는 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보는 것은 이미지를 시각적인 채널인 눈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서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바라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열매를 따먹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는 깨어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을 때만 하나님형상의 진면목이 발현된다. 이를 잘 아는 마귀는 고대부터 지금까지 시각적인 이미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미혹하고 마치 그것이 전부인 양 유혹해 왔다. 예수님께서 공생애가 시작되기 전에 광야에서 마귀가 사용했던 세 가지 시험에는 모두 시각적 이미지가 활용됐다. 40일을 굶어 배고픈 예수님에게 돌이 떡으로 보이도록, 세상의 모든 부귀와 권세를 보여주며 그에게 절하도록, 성전 꼭대기에서 아래를 바라보며 뛰어내리도록 말이다. 마귀가 이처럼 이미지화된 형상을 사용하는 것은 단순히 이미지로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보는 대로 살아가는 믿음의 원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다. 계시로서 나타나신 분이므로 형상에 매이거나 형상으로 제한할 수 없다. 인간이 형상을 만들려는 이유 중에는 믿음의 증거물이 가시화되면 안정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말로만 하거나 생각만 할 때는 막연하지만 그에 대한 증거물이 있으면 편안해진다. 형상을 만드는 행위 속에는 믿음의 대상이 내 손안에서 통제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포함되어있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불안한 존재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의지할 대상을 찾는다. 굳이 장승이나 산당을 만들지는 않더라도 마음에 불안함과 공허함을 달래줄 그 무엇인가를 찾아 나선다. 청소년에겐 아이돌이라 불리는 연예인이 될 수도 있고, 젊은 청년에게는 돈이나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중년들에게는 술이나 명예가 될 수도 있다. 어떤 모양이든지 나를 대신해서 안정감과 평안함을 주는 믿음의 증거물이 있다면 그 증거물이 우상인 셈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여기에 메이기 시작하면 그것들만 보게 되는 함정에 빠진다. 그들이 전부인 양 빠져든다. 마침내 모든 삶의 이유와 목적을 그 안에서 찾는다. 


온전한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말씀을 붙들자

  신앙은 본래 불완전하고 불안함의 연속이다. 다만 말씀을 통해 안정감을 찾아갈 뿐이다. 불안하고 불완전한 인간이 계시를 구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관계이다. 말씀은 보이지 않고 형상이 없지만 공기처럼 늘 우리와 함께 존재한다. 그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안에 머물러 있으면 공기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숨 쉬는 것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자연스럽듯이, 온전한 믿음을 가지면 말씀이 육신 되신 예수님과 동행할 수 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11:6)”


김보민 목사 함께걷는교회
*다음호에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