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독문화/이종인 목사와 이 달의 책

맘몬에서 해방된 삶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 중에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오지 않은 것은 없다. 우리의 생명부터 생명 유지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선물이다. 세상은 노력으로 살아간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은혜와 선물로 산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타락 이래로 인생은 하나님 대신 다른 것에 포로 되어 살아가고,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의지하는 배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가장 주목할 대상은 바로 ‘돈’이다. 돈은 교환수단이지만, 도구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사람의 주인으로 행세하고 있다. 쟈크 엘룰의『하나님이냐 돈이냐』에서 맘몬에 대해 세밀하게 분석하고, 돈의 권세에서 벗어나 맘몬에서 해방된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돈의 문제는 체제를 통해 해결할 수 없다

  총 5부로 구성된 책이다. 1부 「문제해결의 실마리」에서는 역사 가운데 이루어져왔던 ‘돈의 분배’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본주의와 협동조합주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등은 돈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각기 다른 방식을 주장한다. 세상은 돈의 문제를 체제를 통해 해결하려고 애써왔다. 하지만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모두 거짓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다. 마르크스는 돈과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인간의 소외(疎外)를 정확하게 지적했다. 소유 때문에 존재가 상실되는 현상은 자본주의의 열매다. 그렇다고 사회주의가 분배의 해결책이 되는가하면 그렇지 않다. 

“돈의 미혹이 가득한 땅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른 방식으로 살아가라”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서 나온 악의 열매이며, 조금 더 정의로운 양태를 띠지만 훨씬 더 억압적 구조로 되어 있다. 그렇다며 경제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에 있는가? 자크 엘룰은 ‘기독교다운 경제체제’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독교 딱지를 붙이는 이가 있다는 지독한 위선자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지상낙원으로 만들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단지 돈의 미혹이 가득한 땅에서 세상의 방식에 따른 해법에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른 방식으로 살 것을 요구한다.

돈은 인생 최고의 목적이 될 가치가 없으며
목적을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남아야 해

  성도들 가운데 일부는 부자가 되는 것을 축복으로 여긴다. 성공하고 사업으로 돈을 많이 확보하여 부자로 사는 것이 과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일까? 2부 「구약에서의 부」에서 이 부분을 잘 설명하고 있다. 성경에서 부의 축복을 받은 믿음의 사람으로 꼽는 대표적 인물들이 있다. 의로운 사람들 아브라함, 욥 그리고 솔로몬이다. 구약에서 부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표징, 성례의 역할을 했다. 주어진 선물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 대한 예표이자 성례였다. 선물로 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은 영원한 왕국을 상속할 것에 대한 표(表)요 인(印)이었던 것이다. 돈이나 부자 되는 것 자체가 결코 목적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승리의 전리품으로 막대한 재물을 취하여 나온 것이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의 집과 토지들은 이스라엘이 짓거나 경작한 것들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거저주신 선물이었다. 구약에서 부는 하나님의 거저주시는 은혜의 표징이었다. 부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것이다. 부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성을 부인하면, 결코 윤리가 불가능하게 된다. 도리어 사탄의 권세 아래 자신을 두는 일이다. 돈은 인생최고의 목적이 될 가치가 없으며 목적을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 남아야만 한다. 성경은 부를 목적으로 노동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우리의 일과 노동의 목적은 하나님나라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줄기차게 부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왜일까? 부는 영적인 문제이며, 윤리적 문제를 넘어서는 예배의 문제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부유함은 타락의 기회를 무섭게 제공한다. 사람은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재물에 더 신뢰를 두는 경향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일단 돈을 거머쥐고 부유해지고 나면, 자신의 사랑과 소망, 안전을 재물의 힘에 의지하려 한다. “내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쓰기에 넉넉한 좋은 물건들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너는 안심하고 먹고 마시고 즐기라.” 더불어 물질의 풍요는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게 만든다.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돈을 의지하는 일이 그것이다.

성도는 은혜의 세계, 용서와 탕감,
거저주는 증여의 세계를 살아야 한다

  저자는 3장 「하나님이냐 돈이냐」에서 맘몬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배하라고 촉구한다. 하나님과 맘몬 사이의 병립관계는 수사학적 어법이 아니라 현실이고 실존의 문제라고 말한다. 어느 것이든 둘 중 하나와 인간과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로 세워진다. 돈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혼의 왜곡이며 저주받은 타락의 상태인지를 설명한다. 돈에 대한 사랑은 믿음을 잃게 만든다. 결국 돈은 하나님과 사이를 갈라놓는 악의 뿌리가 된다. 둘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나누어질 수 없고, 두 주인을 섬길 수도 없다. 사랑은 철저히 우리가 사랑하는 것만을 따라가게 함으로 두 가지를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돈과 관련하여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맘몬을 숭배하지 않고 주님을 예배하는 삶은 어떤 삶인가? 엘룰는 재물과 관련하여 우리가 두 세계 속에 살아간다고 말한다. 하나는 매매의 세계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은혜의 세계다. 하나님도 돈도 사람과의 관계와 인간행동을 규정한다. 성도는 은혜의 세계, 용서와 탕감, 거저 주는 증여의 세계를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저축에 대한 부분을 매섭게 비판하고 있다. 저축을 통해 미래보장과 안정을 꿈꾸는 거짓안전을 신뢰치 말라고 이야기한다. 부를 쌓는 일이 결국에는 인생의 안전을 하나님이 아닌 돈에다 두게 하는 위험 때문 일 것이다. 저자의 의도는 십분 이해가 되나, 온전히 동의 못할 부분이기도 하다.
  엘룰은 ‘돈의 세속화’를 강조한다. 달리 말하면, 돈에서 영성을 제거하라는 요구다. 돈의 비신성화(非神聖化)이다. 돈을 단순히 통화와 교환의 수단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돈을 세속화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은 돈의 법칙인 매매의 방식과 반대로 가는 행위이다. 선물과 증여의 정신이다. 선물이란, 돈의 우상을 파괴하는 일이다. 향유를 깨뜨려 부은 마리아, 하나님께 향하는 연보 또한 돈을 세속화하는 행위다. 저자는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준 주님을 쫓아 증여의 삶, 은혜에 따른 선물의 삶, 나누는 인생으로 안내하고 있다. 

자녀들에게는 돈의 유혹에 단련시키는 교육을!

4장 「돈에 대한 교육」 또한 인상적인 내용이다. 자녀들에게 돈의 유혹에 단련시키는 교육을 말하는데, 성경적인 경제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녀들은 부모들이 돈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서 돈의 중요성을 배운다. 돈을 속되고 천박한 것으로 여겨 돈에 대한 교육을 무시하면, 아이들은 돈 문제에 있어 무방비의 상태에서 세상으로 돈 문제를 배우게 만든다. 돈에 관한한 현실적인 문제를 피하지 않고 돈의 위험성에 대해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 사람들이 돈을 얻기 위애 어느 정도까지 희생할 수 있는 지를 가르치되, 돈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돈을 신뢰하지 않도록 교육해야 한다. 
  저자는 돈에 대한 자녀교육의 내용을 세 가지고 말하고 있다. 첫째, 돈에 애정을 바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돈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다. 돈의 무서움과 위력에 대해서 진지하게 말해야 한다. 둘째, 돈의 필요를 알려주어야 한다. 돈이 선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고, 도리어 우리의 본성으로 인해 돈을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주지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돈의 세속화하는 방법을 충분하게 강조하라고 말한다. 돈의 권세에서 해방시키는 교육을 하라고 촉구한다. 

영적인 가난함을 가진 부자
아브라함, 욥, 솔로몬

마지막 5장 「부자와 가난한자」에서는 성경이 부자에 대해 가지는 지독히 적대적인 점을 논한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실상 부자에 대한 저주가 메아리치기 때문이다. 부자의 행위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부자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에서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브라함, 욥, 솔로몬은 여느 다른 부자들과 전혀 다른 영적인 가난함을 가지고 있었다. 당신이 아브라함과 동급이 아니라면, 부자 되기를 갈망하지 말라고 말한다. 가난은 돈이 없는 것이나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가장 가난하게 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물론 물질적으로 가난하다고 탐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할 수도 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 탐욕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아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맘몬에서 구원받아 해방된 삶,
하나님을 예배하는 은혜의 삶!

  우리는 누구든지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따라 살아간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돈을 따르는 일은 저주받음을 의미한다. 돈에 대한 집착은 우리로서 감당하기 힘든 권세로부터 오는 유혹이다. 돈은 윤리적 문제 이전에 영적인 문제이다. 돈을 사랑하고 따르면서 주를 믿고 따를 수 없다.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는 노릇이다. 결국 누구를 사랑하느냐의 문제다. 부자청년의 예에서 보듯 돈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심대하게 약한 자이다. 
  주님은 맘몬에 대한 심판으로 우리를 맘몬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신다. 매매와 거래의 법칙이 아닌 은혜와 사랑의 원칙 아래 살아가게 하신다. 우리는 수도원으로 도피하듯 돈과 매매의 세계를 떠나 이원화된 삶을 살아가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소명에 합당하지 않고, 정당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매매와 거래의 세계 한 복판에서 은혜와 환대, 선물로 사는 삶. 돈이 아니라 하나님께 충성하는 성도의 삶을 씨름해야 한다. 엘룰은 맘몬에서 구원받아 해방된 삶, 하나님을 예배하는 은혜의 삶으로 사는 싸움으로 초대하고 있다.

 

이종인 목사(울산언약교회 담임, 울산대학교 철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