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하는 질문에 스스로 ‘내 신분의 확인’이 되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만약 누군가가 ‘당신은 누구요?’라고 질문하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이름? 직업? 아니면 주민등록증이나 또 다른 신분증을 제시하겠습니까? 이런 것들은 ‘나’라는 인격체가 가지는 본질과는 별 상관이 없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학력이나 경력, 집안 배경이나 경제적 여건, 하는 일 등으로 우리의 본질적인 정체성을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나는 누굴까요? 오늘은 특별히 그리스도인 된 나의 신분은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려 합니다.
첫째, 나는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사람이다’는 사실입니다.
20절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바울은 두 종류의 사람인 ‘십자가의 사람들’과 ‘십자가의 원수들’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17절부터 보면 ‘십자가의 원수들’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반면 20절에 와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십자가의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십자가의 원수들의 삶이 부끄러움이고 멸망이라면, 그에 반해 ‘십자가의 사람들’은 오직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자라고 합니다. 십자가의 사람들은 바로 천국시민들이라는 뜻입니다.
천국시민권자의 삶이 무엇입니까? 천국시민권자는 ‘정체성’이 다릅니다. 100년 있다가 없어질 세상나라가 아니라 영원한 나라, 천국의 시민권자들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고 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옵니다’(시39:4-5)고 했습니다.
행성 중 가장 아름답다는 지구는 우리가 임시로 거주하는 장소입니다. 우리는 사는 동안 지구에 파송된 ‘천국의 대사’입니다. 한 나라의 대사는 어쩔 수 없이 그 나라의 말과 문화, 관습과 법도 배우지만 본국의 대사라는 것을 잊지 않는 법입니다. 만약 본국을 잊고 그 나라에 귀화해 버린다면 본국이나 본국의 왕에게 큰 배신자가 되고 맙니다. 배신자에게는 징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천국 시민권자는 ‘관심’이 다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3:2),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8)고 성경에 말씀하셨고, D.L. Moody는 ‘하늘에 마음이 가 있는 사람은 세상 것으로 좋은 것이 없다’라고 했으며, C.S. 루이스는 ‘영원하지 않은 것은 영원히 무용지물이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세상을 배설물처럼 버렸다. 왜냐하면 더욱 고상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얻었기 때문이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높은 벼슬하고 명예를 얻는 것이나 물질적인 풍요나 통속적인 성공이 천국 시민의 삶의 목표나 관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목표와 방향과 전략이 다른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천국시민권자는 ‘삶’이 다릅니다. 히브리서11:24~26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영원한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세상의 쾌락(pleasure)도, 세상의 보화(treasure)도 포기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천국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가 상충될 때에는 고난과 희생을 감수하며 용감하게 세상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천국시민권자는 ‘마음과 말’이 달라집니다. 로마서에 ‘영의 사람은 영의 일을 생각하는데 그 결과는 생명과 평강이요, 육의 사람은 육의 일을 생각하는데 파멸과 죽음이니라’. 요한일서에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의 말을 하느니라,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서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천국시민은 벌써 그 마음과 말이 달라 분명 그 마지막의 결과와 열매가 세상 것과는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천국시민권자는 ‘자신의 값진 것(보화)을 하늘에 쌓는 생활’을 합니다. 나그네가 여행지에 모든 재물을 소비한다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장차 돌아갈 본향에 집도 사고 땅도 사며 보화를 쌓습니다. 우리가 천국시민이면서 100년 남짓한 임시 거주지인 지상에만 애착을 둔다면 정말 깊이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이 정말 천국시민권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해봐야 할 일입니다.
어느 선교사가 평생을 선교지에서 보내고 은퇴하여 본국으로 귀국하는데 마침 해외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대통령과 한 배를 탔습니다. 대통령이 내리자 군악대의 팡파르가 울려퍼지고 빨간 카펫이 깔리고 수많은 군중이 환호하며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평생을 몸 바쳐 선교사역을 하고 돌아오는 늙은 선교사에게는 꽃다발 하나는 커녕 아무도 마중 나온 사람이 없었습니다. 외롭게 집으로 돌아와 불평하듯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아직 집에 돌아온 것이 아니지 않느냐.”라는 음성이 말입니다.
둘째, 나는 누군가? ‘최종 완성을 꿈꾸는 사람이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내가 천국시민으로서 너무 부족하고 고민되는 것이 많지만, 그러나 종국에는 최종 완성되도록 주님이 도우실 것을 꿈꾸면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천국시민권자인 것은 알겠는데 그 삶을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습니다. 천국시민의 영광도 알겠고 권세도 알겠고 복도 알겠고 또한 의무와 책임도 알겠는데 나를 돌아보면 너무 부족한 것입니다.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것에 대한 답을 줍니다. 20절 하반절에 보면,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지금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부끄러운 면이 너무 많지만, 그러나 ‘나는 최종완성을 꿈꾸는 자다’, ‘우리를 기어이 최종완성으로 이끌어 주실 나의 소망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 때문이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얼마나 놀랍고 위로가 되며 소망이 되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우리는 절대로 낙망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는 존재들이다’는 사실입니다. 왜냐면 ‘거기로부터 나를 건져주실 우리 주님 때문에 나는 최종완성을 꿈꾸는 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거대한 세상의 폭포가 우리를 덮쳐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차라리 타협하고 말까, 적당히 살까, 모른척하고 넘어갈까, 아니면 포기해 버릴까.’라며 낙망할 존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거기로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신분은 감히 영광스럽게도, ‘어떤 자리에서도 꿈꾸는 자’입니다. 힘들고 지친 삶이 우리들에게 부딪쳐 왔다 할지라도, 실패했다 할지라도, 믿음에 절망이 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함께하십니다. 도우십니다. 지키십니다. 결국에는 우리가 꿈꾼대로 최종완성을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광스런 신분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나는 누군가? ‘낮은 몸이 변하여 예수님처럼 최종 완성될 사람이다’는 사실입니다.
앞에서 두 번째 우리의 신분이 ‘천국시민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너무 미숙하지만 주님의 도우심을 힘입어서 완성을 꿈꿀 수 있는 신분’인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세 번째는 ‘결국에는 낮은 몸이 변해서 최종 완성될 신분’, ‘승리자가 되고 완성자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21절에 ‘첫째,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역사를 쥐신 우리 주님께서, 둘째, 우리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같이 변케하시리라’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나를 만들어 가시는 주님의 손길이 어떤 손길인가와 주님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시는 막강한 능력을 갖고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5장에서처럼 약한 것이 강한 것이 되고, 욕된 것이 영광이 되고, 죄인이 의인되고, 사망이 생명되고, 땅에 속한 사람이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고, ‘나의 낮은 몸이 변하여 예수님처럼 최종 완성될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최종완성을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결국 나의 모든 낮은 몸이 변하여 예수님처럼 최종 완성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도들은 오직 하늘의 시민권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오직 하늘의 시민권을 가꾸고 다듬는 데에 마음을 다합니다. 오직 하늘의 시민권을 통하여 나의 낮은 몸이 변하여 예수님처럼 변화될 것을 확신하고 간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에게 횃불처럼 임하시고, 우리가 주님 손에 들린 왕관 같으며, 주야로 성벽에 하나님의 파수꾼이 세워져서 우리를 지키시고, 성문이 열리고 대로가 수축되며 돌들이 제하여져서 만민 위에 높이 들리는 기치의 영광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피니언 > 논설위원(이 달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를 살펴 죽기를 면하라(출애굽기 30:17-21) (1) | 2023.09.05 |
---|---|
기억하고 멈추고 선을 넘지말라(신명기 6:1~3) (0) | 2023.08.09 |
기독교인은 어린이를? (마태복음18:1-10) (0) | 2023.05.09 |
성도의 권위(울산교회 이호상 목사) (0) | 2023.03.02 |
좋은 만남을 위해 스마트폰을 잠시 꺼두면 어떨까? (1) | 2023.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