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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생활 속 신앙이야기

어르신들의 지난 삶을 존중합니다

인간의 존엄성 위에 일상을 더욱 아름답게,
그리고 이 모든 것들에 즐거움이

  11월 늦가을 오후였다. 도로 중앙으로 흘러든 낙엽들이 얌전했다. 이 또한 가을의 풍경. 소멸을 준비하는 가을의 또 다른 자세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런 풍경 앞에 스치는 이 기분은 뭘까. 그녀를 만나러 가는 이 느낌은 왜 이리도 먹먹할까? 유난히 차분해지는 가을의 마음으로 이영주 그녀가 운영하는 엘림 복지센터를 찾아갔다.


  이야기의 시작은 아버지의 출생년도부터였다. 엘림복지센터 원장인 이영주 집사 그녀의 아버지는 1911년생이셨다. 77년생 그녀는 아버지 연세 예순 중반에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이 곧 노인(?)으로부터 받는 사랑과 함께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재산을 남기셨고, 어머니에겐 봉사와 헌신의 남다른 마음이 있어 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게 된다. 


  재일교포이셨던 아버지의 고향으로 그녀는 유학을 떠나 오랜 시간 머문다. 공교롭게도 노인복지를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그녀가 일본 유학 중일 때 간간히 어머니의 요청이 있어 한국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도와드리곤 한다. 그때부터 부분적으로 복지원 관리를 해오다가 2018년에 엘림에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    


  “목적이(비전이)확실하지 않으면 굉장히 지치기 쉽지요. 보통은 복지원 일이 감정노동이라고 하는데 기운이 소진되기 쉬운 업이죠. 대상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일률적이지가 않잖아요. 사회복지를 전공해도, 학문을 적용해도 도움 되는 부분이 있지만, 학문만으로 지식만으로는 제대로 이 복지 일을 구현해내기가 어려운 점이 참 많습니다. 더군다나 여기 계신 어르신들은 7,80년 넘게 한 인격체로 살아오시면서 지금은 자기 결정체로 머문 단계에 이르렀지요. 게다가 치매까지 있는 상태라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지요.”

 

북울산교회 옥재부 목사(왼쪽)와 원장 이영주(가운데), 국장 임문택(오른쪽) 집사.


  이 짧은 고백 속에 벌써 그녀의 허다한 경험이 스며나고 있다. 그녀의 마음이 심상치 않다. 이즈음에 와보니 생각들이 정리되어지고 확립되어 간다고 말한다. 이미 그녀에겐 복지의 전문가 중에 전문가 냄새가 배어있다.


  다른 요양원들과 차별화된 방식이 있다면 엘림에서는 ‘끈’ 사용을 아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르신들에게 의식주를 제공하면서 치매 어르신들 돌보기란 무지 힘들고 어렵다. 그들의 수면장애, 배변장애 등등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일을 해내려면 그들을 묶어놓을 수밖에 없어 ‘끈’을 사용하지만 엘림에서는 일체 끈 사용이 없다는 것이 다른 곳과 차별된다.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마다 유학했던 곳 일본에 있는 선배들이나 스승들께 자문을 받아가면서 또 선진사례들을 통해서 해결에 접근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엘림의 슬로건 ‘어르신들의 지난 삶을 존중합니다’에 이어 핵심가치 세 가지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첫째, 존엄이다. 어르신들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생명 자체만으로 존엄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인격 존엄성 그 자체를 늘 염두에 두고 대하는 것이 첫 번째 자세이다. 
  둘째, 일상을 더욱 일상답게이다. 요양원 자체가 폐쇄공간인지라 자칫하면 어르신들에게 지옥 같은 공간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이곳에서도 어른들이 평소 해오던 삶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또 하나의 핵심이다. 자기 구역을 자기가 정리정돈할 수 있게 하는 것, 젓가락 사용이 어렵다고 해서 떠먹여 드리는 것이 아니라 보조용구(손가락을 끼워 사용하는 젓가락)를 사용해서 본인이 직접 수저질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 등을 말한다. 
  셋째, 이 모든 것들이 즐거워야 한다. 많은 프로그램이 있지만 모두 즐거움의 요소를 갖춰드리도록 힘쓰는 것이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을 꼽아보니 치매진행 중 정신질환에 드신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을 더 이상 모시지 못하게 되었을 때였다. 계속 모시고 싶지만 그분이 하는 폭행이나 다른 이유로 인해 모시지 못하게 됐을 때 가장 힘이 들었다. 그녀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자문을 받아도 도움이 안 되고, 선생님들이 함께 노력해도 안 될 때, 어르신의 자식들이 “그럼 우리 아버지 같은 경우는 어디로 가야하나요?”라고 물어올 때 무척 가슴이 아팠다. 결국 그분들은 정신병원으로, 폐쇄병동으로 보내져서 손발이 묶인 채 계실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오는 것이었다.


  그녀는 말한다. “부모가 자식한테는 엄청난 사랑으로 대하는데, 이분들은 고생하고 연로해져서 늙었다고, 나이 들었다고, 혼자서는 안 된다는 것만으로 왜 인권이 많이 보호되지 못하는가요? 이분들의 인격, 이분들의 모든 것을 우리가 지켜주지 않으면 여기도 폐쇄공간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가 지켜주지 않으면 아차하면 여기도 지옥이 될 수 있지요.”


  그녀는 어르신들에게 일상을 일상답게 만들어드리고 싶다는 꿈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독일 어느 마을은 마을 자체가 요양원이라고 한다. 미용실을 가면 어르신들은 예전에 드나들었던 실제 일반 미용실에 온 줄로 아는 것이다. 요양원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미용실을 제공하는 것이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직접 슈퍼에서 장을 보게 한다. 살아오면서 했던 삶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동네의 출입구는 이들이 실종되지 않도록을 위해 하나뿐이다. 당연 요양원인 마을 저 끝자락들에는 울타리도 쳐져있다. 


  그녀는 여기 엘림도 요양원의 느낌을 탈피하려고 한다. 요양원 가기 싫다는 말이 안 나오게 하고 싶다. 어르신들이 안심하고 즐겁게 갈 수 있는 공간, 들어오고 싶은 공간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다. 

 

이영주 원장과 임문택 국장은 기도로 엘림 복지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남편 임문택 국장님은 음악에 조예가 깊다. 매일 각층에서 오전 10시에 예배를 드리는데 항상 기타로 찬양인도를 한다. 주기도문, 찬양, 기도로 올려지는 예배에 여호와 라파 하나님의 간섭하시고 복주시고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체험한다. 


  그녀는 누누이 되새김한다. 운영의 목적이 뚜렷해야 되는 것이라고. 그녀도 마음이 편하고 싶고 자신만의 일상을 갖고 싶고 공인으로 살아가는 일도 힘들지만 그래서 어르신들의 보호자가 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사회복지는 실천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우리 기독교가 실천하는 종교이기에 일부러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사랑의 실천을 하지 않아도 이 공간에서 실천적 삶을 살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한다. 어르신들도 그렇지만  돌보시는 선생님들도 사랑이 없으면 이 일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녀는 늘 사랑의 실천을 멈출 수가 없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디서 그 사랑의 에너지를 가져오는가. 그것은 바로 성령 충만이다. 사람의 힘으로도 물질로도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엘림’이라는 이름은 북울산교회 옥재부 담임목사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을 때 지은 이름으로써 출애굽 15장에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다 목이 너무 마른데 마라의 쓴물을 만난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쓴물을 단물로 바꿔주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말씀하신다. 그런 후 곧바로 백성들이 이른 곳이 엘림이다. 엘림은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 곳이다. 


  엘림 복지센터의 임문택 국장과 이영주 원장 부부는 복지센터를 운영하면서 힘이 들 때마다 하나님께 계속 기도한다. 이곳 복지센터에 계시는 모든 이들이 마라의 쓴물이 아닌 변화된 단물을 마시고 또 엘림에 이르게 되기를. 인생이란 결국 내가 누군지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확립해가는 것이라고 고백하는 이 부부에게서 인격적이신 우리 하나님, 사랑과 자비와 치유의 하나님을 본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 옛날 아빠의 성경책을 찾고 싶어요. 할아버지였던 우리 아빠가 성경에 밑줄 쳐놓은 빨간 줄을 읽어보고 싶어요. 이제 저도 하나님의 말씀에 줄을 하나하나 쳐가며 살려구요.”


  그녀 부부가 무엇을 더 바라고 원하고 기도해야 할까. 그들은 지금 하나님의 나라에서 아버지의 일을 하고 있는 중인데, 실천적 사랑의 삶을 누리고 있는데, 이만하면 됐지 싶은데…. 이 부부의 보호 아래 있는 어르신들의 행복이 늦가을 울긋불긋한 인생의 소멸이 아닌, 새하얀 영생으로의 길로 이어지리라.



설성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