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를 신화처럼 취급하는 등
수용 어려운 해석이 있으나
대표적인 고전이기에 이해 필요
「길가메쉬 서사시」는 가장 오래된 신화이자 최초의 신화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 지금처럼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 고대에는 구전이야기나 신화에 역사를 담아 후손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리스와 페르시아가 전쟁을 벌인 때로부터 2,300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야 최초의 문명이라 부르는 수메르문명을 만나게 된다. 소위 말하는 인류의 규범, 신화, 종교, 역사, 언어, 문자, 철학, 윤리, 법률, 정치, 행정, 경제, 국방, 의학, 과학, 천문, 수학, 농업, 공업, 상업, 교육, 출판, 문학, 예술, 음악, 건축과 스포츠를 망라한 위대한 문명의 번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폭발적인 문명은 어디에서 왔을까?
사실 구속역사를 기록한『성경』이 없는 세속역사는 노아 이후의 역사만을 제대로 기술 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이전의 이야기는 겨우 신화로만 담아낼 뿐이다. 신앙을 버리고 혼합신앙으로 타락했던 사람들과 가인계열의 사람들은 모두 홍수심판으로 멸절되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오직 노아의 후손들로 이어질 수 있었고, 노아와 그의 아들들, 셈‧함‧야벳이 경험했던 홍수심판의 이야기는 구전으로 후대에 전달되어 여러 형태로 변형되었을 것이다. 홍수 이전의 문명은 노아와 자녀들을 통해서 계승되었으며, 시날 평지(메소포타미아, 바벨론)로 내려가 급속도의 문명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노아 홍수 후에 시날 평지에서 바벨탑을 쌓아올린 인간들, 언어 혼잡으로 흩어지면서 전 세계로 문명이 흩어졌을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문명들은 오랜 세월로 빚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진 기술과 문화를 가졌던 무리들이 언어로 여러 지역으로 분리되었기에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수메르문명 시기에 형성된 도시국가들이 메소포타미아 여러 지역에 형성되었는데, 창세기10:10절에 등장하는 ‘에렉’은 길가메쉬 서사시에 등장하는 우루크이고, 함께 기술된 우르라는 도시는 아브람이 태어나 성장했던 곳이기도 하다.
고대문헌을 살필수록 드러나는
성경의 정교함과 세밀함!
이 책을 소개해야 할지 꽤나 고심했다. 저자가 성도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성경과 일치된 해석을 말하지 않고 있는 학술서이기 때문이고, 신화이야기인 만큼 받아들이기 힘든 해석들이 다수 보이기 때문이다. 「창세기」를 신화처럼 취급하는 부분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소위 고전으로 불리는 도서의 거의 첫머리로 꼽히는「길가메쉬 서사시」는 주변의 이웃들과 소통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이해가 필요한 부분일 수밖에 없다. 새삼 오래된 신화와 고전들을 읽어갈수록 성경의 탁월함은 더욱 도드라진다.
본서는 크게 서론, 본론, 결론, 3부로 구성되어있다. 첫머리에서 길가메쉬서사시에 대한 배경과 수메르문명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더불어 성경에 기록된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와 관계를 논하면서, 신화가 우리 곁에 오게 된 학자들의 간략한 연구사를 담고 있다. 본론에서는 길가메쉬 서사시의 줄거리를 본격적으로 볼 수 있다. 결론부분에서는 신화에 나타난 내용을 통한 여러 쟁점들로 토론을 유도한다. 첫날밤의 모든 권리를 틀어쥐는 ‘초야권’이나 ‘여성’에 대한 이해,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주제인 ‘죽음’의 문제를 다룬다. 부록으로 기술된 ‘황금시대의 전설’은 수메르신들의 창조신화로부터 셈족 아카드왕조의 시작인 사르곤1세까지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 마치 오비디우스의『변신이야기』에서 신들의 세계로부터 로마의 건국자 로물루스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홍수에서 살아남은 자 ‘우트나피쉬팀’
창세기 6~9장과 유사한 전개
세계적 고전으로 새로운 판본들이 제작되어 읽혀지고 있는 그리스‧로마신화보다 훨씬 앞선 신화가 길가메쉬 서사시다. 길가메쉬 서사시가 유명해진 이유는 최초의 신화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대홍수의 내용을 담고 있어서 자주 노아홍수와 연관되어 거론되는 까닭이다.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노아는 홍수에서 살아남은 자 ‘우트나피쉬팀’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홍수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창세기 6-9장을 읽어 내려가는 느낌이 들만큼 유사함이 녹아 있다. 하지만 홍수이야기는 신화의 내용 중 일부에 불과하다.
길가메쉬 서사시의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해보자. 길가메쉬는 가장 용맹하고 지혜로운 2/3는 신이고, 1/3은 인간인 반신반인의 우르크의 영웅으로 소개된다. 이집트의 파라오나 로마의 카이사르도 자신을 신의 아들로 간주했다는 점에서 낯선 소개라고 하기는 힘들다. 그는 최고의 권력자로 막강한 힘을 행사했다. 혼인하는 모든 여인들의 첫날밤을 가지는 ‘초야권’을 길가메쉬는 누렸다. 힘 있는 장군이나 여타의 권력자들도 아내와 딸을 속수무책으로 내어주어야 할 만큼 그의 힘을 컸고, 당해낼 자가 없었다. 그의 횡포가 밤 낯을 가리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우루크의 신인 ‘아누’에게 기도했고, 엔키두라는 걸출한 동지를 보내게 된다.
짐승 같은 엔키두가 샴하트라는 매력에 빠져 문명을 배우게 되면서, 길가메쉬에 맞설 수 있게 되었고 용호상박의 씨름 이후에 두 사람은 끔찍하리 만큼 서로를 아끼는 우정을 맺게 된다. 함께 삼목산(레바논의 백향목)을 지키는 훔바바를 제거하는 원정으로 둘 모두 영웅이 되었다. 길가메쉬의 빼어난 매력에 흠뻑 빠진 여신 이쉬타르(아스다롯)이 길가메쉬에게 청혼했으나 거절당하자 모욕감에 빠져 하늘 황소를 보내 복수하려했다. 하지만 엔키두가 하늘황소를 죽이자 신들이 노했고, 엔키두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토록 아끼던 친구 엔키두의 죽음 앞에서 영웅 길가메쉬는 큰 충격에 빠진다. 대부분의 신화에 등장하는 저승여행에서 엔키두와 만나게 되고, 길가메쉬는 엔키두로 인해 비통함을 삼키며 죽음을 피할 길을 찾게 된다.
죽음을 피할 길을 찾는 중에 그는 우트나피쉬팀이 홍수에서 살아남아 영생한 한 사람이라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 나선다. 길가메쉬는 모험여행 끝에 우트나피쉬팀과 조우하게 되고 그로부터 홍수이야기를 듣게 된다. 최고의 신 엔린(Enlil)은 다른 신 에아(Ea)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홍수로 세상을 멸할 것을 결정하고 슈릎파크에 살고 있던 우트나피쉬팀에게 계획을 일어주어 방주를 짓도록 명령한 이야기로부터 홍수의 진행과정, 생존하게 된 내용들을 상세하게 길가메쉬에서 전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왕은 우루크로 귀환하여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독보적인 존재였던 영웅도 죽음 앞에서는 짐승과 매일반이라는 진실을 전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고 있다.
그리스도가 없어 죽음을 무서워하며
종노릇하는 인간의 한계 나타나
고대문헌들을 살필수록 성경의 정교함과 세밀함에 더욱 놀란다. 토판 몇 조각으로 복원된 신화와 수천 년을 걸쳐 필사되면서도 사본간의 놀라운 일치를 가진 성경을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길가메쉬 서사시를 읽고나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언약백성의 역사를 담아 가르쳤던 「창세기」의 이야기가 새삼 놀랍게 다가온다. 이전에는 쉽게 흘렸던 홍수 전후의 기록들을 다시금 꼼꼼하게 살피게 된다. 길가메쉬 서사시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없어 죽음을 무서워하며 종노릇하는 인생의 슬픔과 한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성경은 구속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생명의 책이지만, 길가메쉬 서사시는 죽음의 벽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슬픔의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장마철에 홍수이야기를 권해 조금은 송구한 마음이다.
이종인 목사
울산언약교회 담임
울산대학교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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