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기에 중요한 것은
본질에 대한 이해!
COVID-19는 세상에 급변을 불러왔다. 사회적으로는 비대면 수업과 회의가 익숙해졌고, 기업들의 패러다임 전환에 가속도가 붙었다. 경제적 변화는 금융의 변화로 CBDC(중앙은행 디지털 통화)로의 전환과 암호화폐의 확산으로 금융계의 일대 혁신이 눈부시게 이루어지고 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기존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CJ대한통운과 한진택배에 익숙했던 우리는 어느새 쿠팡과 배달의 민족에 더 친숙해졌다. 국민은행과 농협에 익숙했던 금융권이 카카오와 토스로 변모하나 싶더니 이제는 디파이(Defi, 탈중앙화 거래소) 지갑에 익숙해져 가야 할 차례다. 코로나 팬데믹은 20년의 세상을 2년으로 폴더 접듯 압축‧진전시켜버렸다.
빠른 변화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정반대의 결과도 만든다. 인터넷몰의 등장과 확대로 골목상권은 물론이고 대형마트들까지 모두 휘청거린다. 기존의 프로그램과 시스템에 의존했던 교회들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더불어 변화는 끝나지 않았고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청년들이 취업준비를 위해 분주히 준비했던 스펙들과 자격증들이 휴지조가리가 되고 안전하리라 장담했던 모든 지반들에 균열이 가고 위협받는 상황으로 치달아가고 있다. AI와 경쟁해야 하는 영역에서는 이미 답이 없는 상황이다. 엔데믹을 거론하는 시점에서 돌아보면, 포스트 코로나는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 되어버렸다.
팬데믹 이후, 교회는 어떻게 변했는가? 2년의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코로나 이전의 만남을 그리워하는 성인들과 달리 아이들의 적응속도는 무척 신속하다. 이미 익숙해져버린 영상예배와 비대면 성경공부를 어떻게 다시금 이전의 일상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돌아갈 수는 있는 것일까? 변화의 시기에 중요한 것은 본질에 대한 이해이다. 교회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아는 것이 긴요한 때이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따끈따끈한 책, 『교회를 아는 지식』은 사실 낯선 책은 아니다. 전혀 새로운 책도 아니다. 하지만 교회의 본질을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다.
삼위일체적 교회론과
그리스도의 세 직분 설명하며
장로, 집사, 권사 직분에 대한 이해를 담아
총 5부로 구성된 책은 1장에서 ‘삼위일체적 교회론’을 이야기한다. 성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령하나님의 전이라는 삼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놓인 교회를 잘 풀어내고 있다. 2장에서는 교회의 직분을 다루기 전에 그리스도의 세 직분에 대해 설명하고, 이를 이어받은 직분자들의 역할을 잘 설명하고 있다. 3장에서는 장로직에 대한 성경적 이해와 교회사에서의 기록들, 자격과 사역에 대해서 친절하게 이야기한다. 4장은 집사에 대해 5장은 권사라는 직분에 대한 역사적 설명과 교회법에서의 자격과 위치를 논하고 있다. 결말 부분에서 저자는 교회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가족으로 정의하고 있다. 부록에 달린 <질의응답>은 교회와 직분에 대한 여러 질문에 대한 답변인데, 강의 중에 들었던 질문들에 답한 것을 메모하여 정리한 듯한데, 유익하다.
국가도 변해왔고, 사회도 변해왔다. 시대의 전환과 교류 속에 문화도 변화되어 왔다. 그런데 교회는 변했는가? 문화가 빚어낸 건축양식은 바뀌고, 우리가 입은 옷과 도구들을 변했지만, 하나님도, 성경도 교회도 변하지 않았다. 변화의 폭풍속에서도 교회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교회는 본질에만 충실하면 된다. 변화에 따라가려 하면 되려 교회는 교회 되지 못한다. 교회를 아는 지식은 사활적이다. 교회를 바르게 알고 본질에 충실하면 교회는 변함없이 든든하게 설 것이기 때문이다. 이단이 성행할 때에 이단에 대한 공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복음의 교리를 굳게 아는 것이듯, 변화의 파도가 높을수록 견고한 주춧돌을 놓는 일이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2022년 엔데믹의 즈음해서 다시금 묻는다. 당신은 교회를 아는가?
이종인 목사
울산언약교회 담임
울산대학교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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