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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이종인 목사와 이 달의 책

『기독교강요』와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


 

다가온 대선, 정치적 입장차이 때문에 성도들이 갈라져서는 안된다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모이는 사람들마다 정치와 정당, 대통령 후보자들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선거철이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네거티브와 격론, 다툼 또한 여전하다. 가장 가슴 아프고 답답한 일은 보수나 진보의 입장 차이 때문에 성도들이 갈라서는 일이다. 서로에 대한 비난과 분리는 성도에게 합당치 않은 일이며, 부끄러운 일이다. 선거시즌마다 격화되는 다툼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이해부재에서 비롯되지 않나 생각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우선 국가에 대한 성경적이고 바른 이해를 가져야 한다. 교회와 국가의 역할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오해와 왜곡은 성도들로 하여금 혼란하게 만든다. 세상여론과 정치선동에 편승하여 한편으로 치우치는 일들이 발생하는데,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통치와 돌보심을 누리며 세상질서에도 동참하고 있는 성도!

  성도는 영적 질서를 지닌 교회 속하여 하나님의 통치와 돌보심을 누린다. 특별한 은혜와 구속의 복음을 가진 교회를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이 땅에서 맛보고 영적 풍요를 누린다. 동시에 우리 모두는 하늘에 살지 않고 지상에 속하여 살아가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자 울산시민으로 산다. 성도든 영적질서에 참여할 뿐 아니라 세상질서에도 동참하고 있다. 달리 말해, 두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교회의 일원으로 공동의회에서 선출과 투표로 직분의 질서에 참여하는 것처럼, 시장선거, 입법기구인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까지 참여한다.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다가온 마당에 칼빈의『기독교강요』를 통해서 국가에 대한 이해와 성도로서 정치참여를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칼빈은 『기독교강요』를 통해서 왜곡된 국가관을 가졌던 로마교회와 재세례파의 견해들을 적시하고, 성경적인 입장으로 바로잡고자 했다. 국가와 정부를 노회와 총회처럼 바꾸려했던 로마교회의 몰상식을 비판하고, 모든 권세를 붙잡으시며 국가 역시 하나님의 통치 속에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여 전복적이거나 일상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했던 재세례파의 극단적인 오류들을 바로잡고자 했다. 칼빈 당시의 재세폐파의 극단적 이해로 인한 혼란을 의식했고, 이에 대한 성경적 입장을 제공하고자 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성도를 돌보시는 영적 권세와 통치를 인정할 뿐 아니라 땅의 권세, 곧 정부를 통해서도 질서와 안전을 통해 평화롭게 예배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땅의 권세를 통해서도 평화롭게 예배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해야”

  국가의 통치에 대한 부분은『기독교강요』 4권20장 이후로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칼빈은 국가의 권력을 하나님의 권세와 대등하게 여겨서 아첨하는 이들을 비판했고, 더불어 국가의 권력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여겨 전복하려는 이들을 책망하고 있다. 칼빈은 두 왕국론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와 왕국과 세속의 지배권을 구분하여 다루고 있다. 먼저는 세상의 왕국은 ‘육체와 현재의 덧없는 삶’과 연관시키고 있다. 세속국가의 관심사는 ‘시민적 정의’, ‘공동의 평화와 평온’, ‘인간 사회’에 있다. 세속국가는 질서와 정의, 평화의 보존을 위해서 부지런히 일한다. 하나님의 창조질서 속에 살아가는 인생에 있어 중요한 요소하고 있다. 칼뱅은 이것을 일시적이고 덧없는 것을 설명한다. 사람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완성될 수 없으며, 평화로운 국가 역시 영구적으로 지속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하나님께서 선한 목적으로 만드신 기관이다

  칼빈은 국가란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선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기관으로(4.20.2), 국가의 통치 목적은 외적 예배를 존중하고 보호하며, 건전한 교리와 교회의 지위를 수호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데 있다. 성도된 우리가 이 땅에서 ‘나그네 걸음’할  동안에 국가는 우리에게 긴요하고 필요한 배경과 삶의 환경을 제공한다. 재세례파가 국가를 악으로 규정하는 것에 반해, 칼빈은 국가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람들에게 주신 일반은혜이자 은사이다. 치안을 유지하고, 시민의 재산을 보호하며,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하도록 주신 울타리이다(4.20.3). 그러므로 은혜의 왕국에 속한 성도들은 세상의 집권자들과 국가의 권세에 대해 두 가지 의무를 지니게 된다.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권세는 없다.”

  첫째, 성도들은 국가와 정부의 권세를 부인하거나 배척해서는 안 된다(4.20.5). 모든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권세가 없기 때문이다(롬13:1-2). 바울은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명령했다(딤전2:1-2). 왜냐하면 성도들이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4.20.5)”이다. 둘째, 국가 집권자들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그 직무에 충실해야 한다. 칼빈은 로마교회처럼 일종의 신정정치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권력자들은 건전한 종교를 보살펴주고, 주의를 기울여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4.20.6)고 강조한다. 만일 그들이 자신의 의무를 태만히 여겨 무질서하게 만든다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4.20.6). 
  칼빈은 정부의 형태에 있어 왕정과 귀족정, 민주정의 형태를 제시하면서 가장 나은 형태를 귀족정과 민주정을 결합한 제도를 선호했다. 그가 보기에 왕정으로 하자면, 공정하고 훌륭한 왕이 드불기 때문에 민중의 난동과 반란으로 고통을 몰고 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고, 민주정 만을 채택하면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칼빈은 귀족과 민주정이 결합된 민주정치에 가까운 귀족정치, 오늘날로 말하자면 대의민주정치 형태를 좋게 보았다(4.20.8). 칼빈은 교회와 국가의 차이를 분명하게 이야기 한다. 진리를 소유한 것은 교회이지 국가가 아니다. 복음을 소유하고 하나님나라를 현시하는 것은 교회이지 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구분하여 설명한다. 그럼에도 국가는 하나님의 일반은혜이며, 선물로 자기 역할을 가진다고 이야기 한다. 


창조세계의 핵심에는 “교회”가 있다

  하나님의 우선적 관심은 교회와 당신의 백성에게 있다. 진리와 생명은 교회가 소유하고 있다. 우리는 특별한 은혜를 입은 성도들로 진리를 알고, 생명의 길을 안다. 하지만 세상과 국가는 진리도 생명도 알지 못한다. 그러하기에 교회는 국가에게 진리를 요구하거나, 영원한 생명과 관련된 것을 요청해서는 안 된다. 교회와 국가의 모습은 19세기에 유행했던 페니파딩 자전거, 오늘날에는 빈폴 자전거라 부르는 것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관심은 교회에 있고, 앞바퀴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작은 보조 뒷바퀴가 없으면 안정되고 평화로운 일상적 배경이 확보되지 못한다. 자연법, 이성, 정치질서와 같은 일반은혜 역시 하나님의 선물이다. 교회는 지구밖에 머물지 않고 국가적 권세가 영향을 미치는 지역에 소재하여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선물이다.

 

 


국가와 세속권력의 한계를 이해하라

  칼빈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세 부분으로 된 동심원으로 설명한다. 이 동심원은 세 개의 큰 파장을 지니는데, 가장 중간 핵심 부분에 교회가 위치한다. 그 다음 중간 동심원은 인류를 위한 공동선으로 국가와 정치질서가 자리한다. 그리고 맨 바깥은 큰 동심원은 창조세계와 피조세계가 자리 잡고 있다. 진리와 생명은 가장 중심원에 위치한 교회에게 주어져 있다. 그러하기에 교회는 국가에게 생명과 진리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국가에게 배속된 사회질서와 법집행, 평화와 보존을 위한 역할 수행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국가에게 진리와 생명을 요구하는 행태가 된다면, 국가를 지나치게 높이는 우상숭배가 될 것이다. 국가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특별히 성도의 입장에서는 국가와 세속권력의 한계를 잘 이해해야 한다. 
  선거철이 다가올 때마다 서로를 향한 욕설과 비난, 네거티브들로 넘친다.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서 마치 자신의 주장대로 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핏대를 세운다.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 보수는 매우 중요한 가치다. 더불어 법과 원칙보다 사람을 우선하고 인류애를 내세우는 진보의 가치역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가치라 할 수 있다. 가진 것이 많고 지키고자 하는 원리와 원칙을 강조하는 이들은 보수에 투표하면 된다. 법이 중요하지만 보다 진일보한 사회와 구조를 원한다면 진보에 투표하면 된다. 입장과 처지에 따라 지지하는 정당과 인물이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것은 한 국민으로서의 권리이기도 하다. 이를 무시하고 자신의 입장과 노선만을 강요한다면 이웃의 자유를 부정하는 일로 악한 일이다.


하늘과 지상에 동시에 속한 성도

  성도들은 하나님나라에 속할 뿐 아니라 대한민국에 속한 국민이기도 하다. 하늘에 속했지만, 동시에 지상에도 속해 있다. 하나님나라와 지상나라가 통일되는 일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어질 것이다. 지금은 이중국적을 지닌 자로 살아가야 한다. 성도의 우선적 관심은 진리에 있고, 생명에 있다. 지상적 삶이 차선이라고 해서 가벼운 일이 결코 아니다. 안전과 평화는 우리 삶에 너무도 중요한 일이다. 불의와 악을 제어하고 질서 있고 인간다운 삶을 살아감에 있어 국가의 역할은 크고 중하기 때문에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시민으로 시장을 뽑고, 국민으로서 대통령을 선출하고 입법역할을 대리할 국회의원을 뽑는 일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필수적인 역할이다. 국민의 권리이자 온당한 정치권력을 뽑기 위한 투표는 성도에게 중요할 수밖에 없다. 
  선거캠프들이 꾸려지고 자신을 내세우고, 상대를 비방하는 일들은 해묵은 일이다. 국가에 요구되는 질서와 안정, 평화와 인간다운 삶에 대한 시선을 가지고 후보자들의 공약을 꼼꼼히 살펴볼 생각이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3월20일 수요일, 나 또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내게 주어진 시민적 직무를 다할 것이다. 지나친 기대나 지나친 좌절도 하지 않을 것이다. 선출되는 권세자와 국가 또한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를 드러내시는 통치수단이기에.

 

이종인 목사

울산언약교회 담임목사

울산대학교 철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