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특집
“감사함이 메마른 삶의 자리는 더욱 차갑고 고뇌스러우며 행복함이 없다”
건강이나 가난과 같은 외부적 환경을 뛰어넘어 한 번 더 생각하는 마음으로
오직 주님 때문에 감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진정한 감사함을 노래하라!
가을이 온 듯하더니 겨울을 느낀다. 하루를 보내고 다시 하루를 맞이하는 가운데 우리들의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숱한 일들을 되돌아보면서 후회스러운 일들을 뉘우치기도 하고 감사한 일들을 되새기기도 하면서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때로는 만나고 싶은 사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 아프게 한 사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며, 때로는 너무 기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때로는 너무 괴로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우리는 어김없이 또 하루를 시작한다. 코로나19의 상황이 일상이 된 가운데 이래저래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진다.
20세기 최대의 시인 중의 한 사람인 엘리오트는 그의 작품 「황무지」에서 인간을 텅 빈 사람인 동시에 가득 찬 사람이라고 언급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에게는 있어야 할 것들, 즉 서로를 신뢰하는 믿음이 없고, 이웃을 향한 따뜻한 사랑이 메말랐고, 내일에 대한 비전이 없으며, 오늘을 현존하는 삶 가운데 감사함이 없는 텅 빈 사람들 인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없어야 할 것들, 즉 쉽게 타인을 정죄하고, 나에게 아무런 불편함도 없으면서 타인의 기뻐함을 시기하고,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탐욕으로 가득 채워지며, 성결함을 더럽히는 음란과 쾌락의 율동으로 가득 찬 사람으로 살아가는 날들이 더 많은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는 감사함이 더욱 메말라 간다. 감사함이 메마른 삶의 자리는 더욱 차갑고 고뇌스러우며 물론 행복함이 없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감사할 조건이야 찾아보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렇게 감사함을 찾으면서 감사의 생활에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불평이나 불만이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이 고마울 뿐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위대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하나같이 큰 장애물에 부딪치고 거듭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잃지 않고 한 번 더 생각하는 넉넉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함을 잃지 않았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흑인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다. 베토벤은 그의 임종을 앞두고 오랜 세월을 고통과 고난의 일생을 지나는 동안 하나님이 함께 하였음을 감사하였다. 바울은 옥중에서도 감사하였다. 토마스 에디슨은 미국 역사상, 아니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가이지만 미시간 주 포트 휴론 초등학교에서는 저능아 취급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집에서 에디슨을 가르쳤는데 불과 열 살에 첫 번째 화학 실험을 비롯해 1,300여 가지의 발명품을 만들었고 “천재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존 밀턴은 44세에 실명을 했지만 그로부터 16년 그 유명한 <실낙원>이라는 위대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밀턴은 자기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을 결코 미워하지 않았다. 베토벤은 청력이 점점 상실되면서 46세에 완전히 귀머거리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 후반기에 다섯 개의 교향곡을 포함해 위대한 작곡을 하여 악성(樂聖)이 되었다. 루즈벨트는 39세에 소아마비에 걸려 좌절감에 빠졌지만 거기서 주저앉지 않고 일어나서 노력한 끝에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 지도자가 되었고 미국 역사상 네 차례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에이브라함 링컨은 남북 전쟁 때 장교로 복무했지만 전쟁이 끝날 무렵 사병으로 강등을 당했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링컨은 자기를 강등시킨 사람들을 넉넉하게 용납했다. 이순신은 수없는 억울함을 당했지만 오직 나라와 민족을 위해 억울함을 참고 충성스럽게 주어진 직임을 감당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역사의 주춧돌의 하나가 되었다. 그는 결코 원균을 미워하지 않았다. 주기철 목사는 민족의 영혼을 위해 울며 사역하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그럴 때 동역자들의 권모술수는 뼈를 아프게 했지만 유다의 배반의 입맞춤을 받으면서도 그를 용서하고 말없이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님을 생각하고 옥중에서 순교를 하였다. 그로 인해 한국의 기독교는 반석 위에 세워졌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는 쓴 물이 많다. 실패의 쓴 물이 있다. 질병의 쓴 물, 가난의 쓴 물, 미움의 쓴 물, 죄악의 쓴 물, 근심의 쓴 물, 절망의 쓴 물이 있다. 목이 말라 타지만 쓴 물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갈증에 죽을 지경이지만 눈앞에 있는 물이 쓴 물이니 어떻게 살 수 있나? 답은 한 가지뿐이다. 쓴 물을 달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불평하는 백성들이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도 한 번 더 생각하면서 불평 원망하지 않고 기도하는 모세를 통해서 쓴 물을 달게 마시게 하셨다. 그것이 출애굽기 15장의 교훈이다.
걸핏하면 원망하고 입만 열면 불평하는 생활에서 무슨 감사함이 있겠는가? 종지 같은 좁은 마음으로 좁쌀만한 세상 것 하나 손에 잡았다고 하여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교만한 마음에서는 감사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그 길은 웃시야의 길이며 그 길은 사울의 길, 아합의 길일뿐이다.
지금 비록 건강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비록 가난할지라도, 지금 비록 자랑스러운 것 하나 없을지라도 하박국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마음은 한 번 더 생각하는 마음이며 거기서 진정한 감사함이 노래될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을 감사하는가? 남달리 복받은 것, 다른 사람과 다른 것, 그래서 그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감사를 하는가? 그것은 바리새인의 감사다. 인간의 행동에는 항상 “무엇 때문에”라는 이유가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 이유는 오직 하나, 주님 때문이어야 한다. 그것이 세리의 감사다. 그것이 하박국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다. 내 뜻대로 안 되었을 때도 원망 불평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감사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이래저래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을지라도 한 번 더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감사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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