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역사를 배워야 한다고 하지만, 실은 역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종교개혁이 일어난지 5세기가 훨씬 지났는데, 그 유구한 세월동안 지난날 일어났던 이 놀라운 사건의 배경과 출발, 과정과 결말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듣고 배웠던가? 이제 그 종교개혁을 통해 ‘그때 그곳’의 스토리가 아니라,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다가올 교훈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아니요’ 라고 하는(homo negans) 삶의 태도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추구하고 지향해 왔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의 진리와 반대되게 흘러가고 있다. 심지어 우리가 몸담고 섬기고 있는 신앙의 공동체도 하나님의 진리에서 동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런 세상과 변질된 공동체의 문제들에 대해서 ‘아니요’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아니요’라고 하면서 반대하면 현상을 고수하고 체제를 유지하려는 기존 다수세력으로부터 큰 저항과 비판에 직면하기 십상이다. 루터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었던 초기인 1518~20년 어간에 그는 천주교 교권 및 정치세력으로부터 극심한 위협을 받고 자기 목숨을 부지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출두한 보름스(Worms)회의부터 종교개혁이 진행되는 모든 과정에서 어떠한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아니요’라고 하는 단호한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이러한 부정과 비판의 태도는 루터의 경우처럼 자기 희생이 따르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거룩한 부정, 거룩한 반대로서 바로 나를 통해 내시는 하나님의 분노이기에 그는 결코 중단하거나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시대처럼 이 시대에도 우리 하나님은 이런 거룩한 분노를 낼 수 있는 자신의 대리자들을 찾고 계시는 것이다.
둘째, 복음의 본질 외의 주변적, 변질적인 것에 대한 배격이다. 중세 천주교는 너무 종교화되어 예수님이 가르치신 복음 외에 다른 것들을 많이 갖다 부쳤다. 그들에게는 면죄부 판매나 마리이아 숭배 등 여러 가지 비성경적인 교리수립, 다양한 성례와 절기의 제정, 위계적인 성직자 세계 구축, 엄숙하고 형식적인 미사집행, 웅대하고 화려한 성당 건립 등 경건의 겉치레, 모양만 있었지, 참된 경건은 없었다. 나아가 그들의 세계 안에 교권주의, 배금주의, 물질주의, 향락주의가 팽배하고 전반적으로 심각한 세속화 현상이 일어났다. 이에 종교개혁자들은 개혁의 과정에서 이런 것들을 청소하고 수정하기 시작했다. 루터와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중심으로 성경적 교리를 확립하고, 성경에 나오는 세례와 성찬 외에 복잡한 성례들을 줄였으며, 다양한 허례허식이나 성직교권주의, 교회 내의 세속적 얼룩들을 지우게 되었다. 무엇보다 천주교의 가장 큰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묻은 복음을 왜곡시킨 것이었기에 루터와 칼빈은 1천년동안 파묻혀있던 복음을 구출하여 그것의 본질을 회복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어느새 종교개혁자들이 폐기했던 중세교회의 잔재들이 부스스 되살아나기 시작했음을 본다. 예전 및 절기중심주의, 십자가 행진과 성지순례, 교회의 화려한 치장 및 성경탑 건립, 심지어 루터나 칼빈을 기념하는 거리나 동상 만들기, 교권주의의 득세와 전반적인 세속화 등 그야말로 본질이 아닌 껍데기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형식주의나 세속주의의 껍데기를 탈각하고 복음의 본질을 고수하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복음중심의 사역과 삶으로 가야한다.
셋째로, 철저한 하나님중심 사상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루터나 칼빈은 오로지 ‘Solus Deus’(오직 하나님)의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특히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한 칼빈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매우 경계하면서 철저히 하나님을 드러내는 데 진력을 다했다. 그의 사상은 하나님 중심이고, 그의 가르침도 하나님이 중심이며, 그의 삶도 하나님 중심이다. 그의 머리는 온통 하나님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고, 그의 입에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떠나지 아니했고, 그의 손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항상 쥐여 있었다. 그야말로 그는 ‘하나님으로 충만한 사람’, ‘하나님에 취한 사람’이었다.
오늘날 우리들의 자화상은 어쩌면 이런 종교개혁 후예들 답지 않게 은근슬쩍 자기이름, 자기인기, 자기영예, 자기영광을 수립할려고 하고 있는지 모르는데, 이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칼빈은 그리스도인이 사는 것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이 노출하는 것’(vita nostra repraesentet)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영광이 자기와 가정, 교회와 제네바시에 가득한 것만 아니라 온 세상에 그 영광이 가득차기를 꿈꾸어 왔다. 칼빈신학의 지향점은 soli Deo Gloria였다.
종교개혁의 후예들인 우리들은 이런 개혁자들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면서 모든 부질없는 것들을 다 던져버리고, 이들처럼 순전하게 전적으로 복음과 하나님 중심으로 행하면 얼마나 좋을까?
전광식 교수
고신대 총장을 역임하고, 현재 고신대 신학과 교수, 차세대지도자훈련원 이사장, 독수리학교 이사장으로 사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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