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 이후 교회와 선교와
다음세대의 변화
COVID와 함께 희망의 길을,
하나님 나라를 열어가다
지난 7월 첫째 주 태화교회(양성태 목사 시무)에서 ‘코비드 이후의 변화’에 대한 말씀으로 하루종일 주일예배가 드려졌다. 1부 인터서브 대표 조 샘 선교사의 ‘거시적 관점으로 본 세계적 선교’, 2부 나우미션 대표 송동호 목사의 ‘미시적 관점으로 본 사회와 교회’, 이어 3부에서는 ‘다음세대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조 선교사와 송 목사의 설교 및 성도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열렸다.
재난은 시대를 막론하고 있어왔다. 그러나 코비드 팬데믹은 세계 모든 사람들이 아주 짧은 기간에 동시에 함께 경험하는 전례 없는 재난이다. 전 세계 221개국에서 확진자 1억 9천 명이 넘었으며 사망자가 4백만 명이 넘는다. 코로나19는 알파, 베타, 감마, 델타 등의 변이를 일으키며 일상 전반에 깊숙이 들어온 상태다.
코비드를 바라보는 우리는 불안하며 평강을 잃었다. 인류는 죽음에 관한 두려움 때문에 생존을 위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게 되었다. 경제적 문제가 중요하게 고려되며 안전문제가 심각하게 인식되었다. 또 환경문제가 심도 있게 재고되고 가족문제가 우선으로 여겨지며 감시통제가 자연스레 수용되는 현상을 불러오는 등 모든 인류의 삶과 문화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미 코비드와 함께 뉴 노멀(NEW NORMAL)시대가 열렸다. 초스피드로 질주하는 이 초유의 사건으로 인해 세상은 앞으로 낯설고 새로운 양상들이 계속 떠오를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며 대응하며 적응해갈 것인가. 역사를 주관하시며 세계의 통치자 우주의 통치자 되신 하나님은 과연 개인과 국가와 세계정세를 어떻게 하시려는가? 선교가 결코 우리 삶과 멀지 않음을 더욱 자각하게 된다.
코비드로 사회정황과 국제정세와 자연환경이 변화되고 있는데 특히 교회와 선교와 다음세대에 코비드를 앞지른 통찰과 전략과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어쩌면 가장 많은 변화를 맞은 데가 교회와 선교 아닐까. 2020년 2월 신천지발 팬데믹이 퍼지면서 교회에 대한 비난이 시작되었다. 2020년 3월엔 국무총리의 종교시설 2주간 운영중지 권고안이 발표되었고 2020년 7월엔 교회 정규 예배 외 모든 행사를 금지한다는 안이 나왔다. 주일성수를 목숨처럼 여기는 교회들이 큰 당황스러움과 혼란에 빠졌다.
교회 오프라인 모임이 제한되는 바람에 예배당 출입이 가장 힘들어졌다. 하지만 이로써 “찐(진짜)”이 드러났고 믿음의 실상과 실력이 드러났다. 온라인 예배는 더욱 가속화됨으로 예배를 위한 새로운 보완재를 어떻게 더 탁월하게 활용할까를 고민했다.
그럼에도 코비드 상황에서 달라진 것 없이 계속되는 것은 주일과 예배, 가정과 일상, 일터와 일상이다. 방법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 것들이기에 이런 본질적인 것들을 되찾는 기회가 되었다. 건물 중심의 성전이 사람과 삶과 일터로 변하고 성직자 중심의 사역이 만인 사역자로 변화하며 의식(예배)중심에서 일상의 코람데오로 본질을 찾아간다. 주님을 더 견고히 붙드는 일이 된다. 온라인을 통한 다양한 온라인 공동체, 작은 대안 공동체들, 온라인 채플린, 메타버스 교회, 클럽하우스, 기도앱 등에서 영적교제는 가속화되고 선교의 새로운 돌파가 일어난다. 코비드로 인해 잃은 게 아니라 얻은 게 많아졌다. 이럴 때 우리는 더 열정적으로 예배해야 하며 예수님과 더 깊은 만남을 가질 수 있다.
요20장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하셨다. 코로나 상황에서 흩어지고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바뀌고 있는 그곳으로 파송 받아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보냄 받았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선택하여 기꺼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코비드 이후 새로운 세계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피조세계에서 청지기로서의 역할을 기꺼이 감당하고 거창한 목표보다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 이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다.
이전에 교회를 중심으로 한 교회성장이 기쁨이었다면 지금은 세상에서 크리스천들의 역할이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삶을 들여다봐야 한다. 예수님은 유대인이 싫어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역사와 상황을 다 아셨다. 내 중심적 사고, 예루살렘적 사고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친구 되고 시간 보내며 그들을 돕기 위한 새로운 틀을 만들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가 진정성이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사랑하고,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을 무리하게 권하지 말고 그냥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끝까지 하는 것이다. 먼저 우리자신이 살아남아야한다. 그런 후 그들에게 권능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일어날 힘을 주는 것, 스스로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또 공동체적 삶을 살아야 한다. 혼자가 아닌 함께 기도하면서 공부하면서 천천히 할 수 있는 만큼 제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사사시대는 왕을 요구했던 시대였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왕이 있음에도 왕을 요구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이었다. 이스라엘이 무너진 것처럼 보였지만 룻은 보아스를 만나 다음세대를 열어가게 된다. 다음세대의 나라가 올 것인가에 대한 답을 룻기가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코비드로 인한 세상의 변화와 불안과 혼란 속에서도 다윗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준비하시고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시는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이 믿음으로 코비드는 또 다른 희망이며 소망이며 새로운 시작으로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한다.
코비드 이후 전 세계는 이동에 상당한 제약을 받으며 모든 나라는 불필요한 외국인의 허입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각국 정부는 종교에 대한 간섭과 통제가 심화할 것이며 신냉전체제와 보호무역과 자국중심주의는 더 강화될 것이다. 또 탈세계화와 해외진출은 위축될 것이며 언택트 상황 속 교회의 재정약화로 선교비도 감소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수용되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뉴노멀 시대의 선교도 변화가 필요하다. 전통적 선교를 축소하고 고비용 구조의 선교모델의 탈피가 필요하며 새로운 선교모델의 모색이 필요하다. 선교는 정보전달이 아닌 증거이다. 로칼과 글로벌이 연결되고 현실과 가상이 연결되는 이 상황에서 이제는 자신이 선 자리인 일터와 삶속에서 선교를 열어가야 하는 시대이다. 이전과 같이 단기선교가 열리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국내 이주민을 섬기는 단기선교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는 보내는 선교가 아니라 들어온 이주민이 선교의 기회이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선교하는 나라 중국은 시진핑이 주석이 되면서부터 기독교 탄압이 본격화되고 독재화가 급격히 진행됐다. 2018년부터는 선교사 추방정책이 이루어졌다. 우리나라 인구 5.7%가 외국인으로 통계되어 있는 이때 추방되어 들어온 선교사들의 선교방향이 달라지고 있다. 내가 선 일터에서 선교할 뿐만 아니라 850만 해외 디아스포라 교회와 성도들을 대상으로 선교적 삶이 이루어져야 한다.
요20장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에서 숨을 내쉬는 예수님은 교회에 성령을 불어넣으신다는 상징이다. 교회는 뉴노멀 시대에 성령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개인경건과 영성훈련을 강화해야하고 하나님을 붙드는 견고한 소망과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손과 발로 이웃과 함께 살아나가야 한다. 세상 속에서 선교적인 삶, 복음의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코비드 이후 국내외, 세계 전반으로 일어나는 급속한 변화 속으로 들어가 있다. 이런 거시적인 문제를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는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지금 어떻게 움직여가고 계시는가를 늘 기도와 말씀과 성령으로 깨어 볼 줄 알아야 한다. 세계가 패권다툼으로 날마다 불안과 긴장의 연속선에 있지만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재난에 대한 마24:1~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는 어두운 말씀이 아니다. 재난으로 인해 두려움을 주는 말씀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나라는 마침내 승리한다는 말씀이다.
세상은 재난을 통해 두려움을 안겨준다. 유대인에게만 복음이 한정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또 유대인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됐음을 모르고 있다. 아직 메시아가 오지 않았다며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방인인 우리도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믿고 있다. 또한 거짓선지자들이 일어나 힘들고 어려운 일만 말하며 자신들에게 집중하기를 원한다. 이런 두렵고 어려움만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선하신 통치자이시다. 재난만 있고 재난으로 인해 세상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선지자, 바른 예언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기독교인들이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한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이 땅에 이미 하나님의 선한 통치는 시작되었다. 성도는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지금 코비드 그 상황 속에만 빠지지 않는다. 하나님께 더욱 집중함으로 시대를 향한 통찰력이 생긴다. CS루이스는 “고통은 우리를 깨우는 정이다”고 했다. 고통의 정으로 우리 안에 돌 같고 쇠 같은 마음이 깨어지고 교정되고 단련되는 것이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열어가길 소망한다.
설성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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