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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발행인칼럼

힐링의 시간

  

일밖에 모르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눈만 뜨면 일에 파묻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알지 못하고 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기에 현대인에게는 쉼이나 휴식, 힐링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나 역시도 일만 하다가 몸이 아파서 수술을 받았다. 이제 5년이 지나 완치 판결을 받았는데 아직도 나에게는 휴식과 힐링이 필요하다.

 

  심리치료에서는 각각의 이론이 목표하는 바에 따라 힐링이 의미하는 바가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내담자 중심치료에서는 ‘자아실현’, 정신분석에서는 ‘무의식의 통찰’ 등을 말한다.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힐링’이란 ‘건강하도록 치료하거나 회복하는 행위 또는 과정’, ’건강을 얻는 과정’을 말한다. 

 

  현대사회에서 피로나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참으로 심각하다. 이 같은 스트레스를 적절히 발산시키지 못하여 정신적 질환에 시달리는 사람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런 마음의 병을 고치기 위한 심리학으로 최근 주목받는 것이 상담이나 힐링이다. 상담은 내담자의 고민을 듣거나 조언을 해 주는 방법이고, 힐링은 주로 육체에 기분 좋은 자극을 주어 정신을 안정시키거나 마음 깊은 곳에 억압된 감정을 발산시키는 것이다.

 


전자의 예로서 유명한 것은 최근 화제가 되는 향기 치료(aromatherapy: 허브 등 식물의 방향이나 정유를 이용하여 기분을 상쾌하게 바꾸는 요법)다. 욕탕에 유자 향의 입욕제를 넣는 것도 방향 요법의 하나다. 후자의 경우는 로저스(Rogers)의 이른바 치료적 상담이나 심리치료에서 쓰는 방법과 같은 것이다. 즉, 예술치료(art therapy)에서 볼 수 있듯이 환자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다든지 노래를 부르게 하여 억압된 감정을 밖으로 내보내는 시도나 여러 가지 상한 감정을 치유하기 위해 감정을 발산 · 정화하는 다양한 기법이 해당된다. 

 

  당초 힐링이나 힐러(healer)라는 말은 신앙요법을 특징으로 하는 크리스천 사이언스(christian science)에 의한 치유 방법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1988년에는 미국 서해안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힐링센터라고 불리는 도장(道場)이 증가하였고 태극권(太極拳) 등의 보디워크, 명상, 등의 정신통일, 자연식 등 심신의 통합, 발전을 노리는 영성(spirituality)을 중시하는 활동이 성행하였다. 지금 우리나라 목회 상담에서는 심리치료에 내적 치유(inner healing) 등을 포함해서 기독교적 신앙요법을 추가한 개념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살아보니 아무리 시간을 내어 쉬고 힐링을 해도 일에 지치거나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는 여전히 사람을 힘들게 한다. 이런 피곤을 이기는 좋은 방법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포항 중앙교회를 은퇴하고 지금은 전국의 미자립 교회를 돕고 말씀 사역을 하시는 목사님과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가끔 전화도 하고  며칠 전에는 만나 식사도 같이하고 돌아왔다. 

 

  역으로 사모님과 같이 나와서 우리 부부를 꼭 껴안아 주시고는 “수고하제!” 하시는 말씀 한마디는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직접 운전하시는 차를 타고 식당으로 가면서 “오늘은 고기를 먹든지, 초밥을 먹든지,  점심식사는 너를 위한 식사니까 무엇이든지 말하라.”고 한다. 나는 무엇이라도 좋다고 했더니, 그러지 말고 먹고 싶은 것 말하라고 하여, 집사람을 핑계 대고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청주에서 제일 잘하는 곳이 있는데, 이 음식은 내가 세계 어디를 다녀도 여기만큼 맛이 있는 곳이 없다.”고 하시고는 우리를 안내해서 밥을 사 주시는 것이다. 과연 고기가 입에 들어가자마자 살살 녹는 것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찻집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중에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오늘 청주에 모 목사님이 같이 점심을 먹자고 연락이 왔었는데 “나는 안 된다.”고 거절을 했다고 하셨다. 그분 목사님에게 “오늘 울산에서 오시는 목사님은 내 평생에 이런 목사님을 만날 수 없는 귀한 분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만나자고 해도 거절하고 이분을 만나서 식사를 해야 한다.”라고 말을 했더니, 그분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그런 말씀을 하시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너도 한번 만나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고 답하셨다 한다. 참으로 부족한 나를 이처럼 아껴주는 분은 서임중 목사님과 사모님이시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행복했다. 행복과 힐링은 다른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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