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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다음세대

모든 거목(巨木)은 묘목(苗木)일 때가 있었다

 

  사랑하는 다음 세대들이 가정과 교회에서 잘 준비되어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귀하게 쓰임 받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마음은 부모 세대 누구나 동일할 것이다. 


  하지만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말끝마다 “왜요?” “싫은데요?”를 반복하는 어린이들과, 무슨 말을 해도 대답을 안 하고 고개 조차 들지 않는 청소년들을 계속 대하다 보면, 부모 세대의 인내는 한계를 만나게 된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앞으로 커서 뭐가 될지 막막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마음이 필요 이상으로 조급해질 때가 많다. 하루라도 빨리 뭔가 변화된 좋은 결과를 보고싶은데 쉽게 변하는 않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빨리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 아이들만 멈춰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이런 조급함은 아이들 개개인뿐 아니라 교회 내 교육부서를 바라볼 때도 동일하게 나타날 수 있다. 각 부서의 출석 수가 빨리 늘어나고 성장했으면 좋겠고, 아이들의 신앙 수준도 빨리 자라서 예배 분위기도 좋아지고 봉사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이들은 우리의 기대만큼 빨리 자라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아이들을 나무에 비유하자면 그 상태와 수준은 여전히 묘목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이 조급해지고 아쉬움과 섭섭함이 찾아올 때 꼭 기억하자. 모든 거목은 묘목일 때가 있었고 묘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거목으로 태어나는 나무는 없다. 좋은 땅에 심어주고, 꾸준하게 물을 주고 햇빛을 느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며, 쳐다볼 때마다 잘 자라기를 응원하며 기다려 줄 때 그 작디 작은 나무는 조금씩 자라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많은 새들이 와서 깃들고 많은 사람들이 와서 쉬어갈 수 있는 거목의 모습을 갖추어간다.


  그렇기에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부모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기다림’이라는 이름의 사랑이다. 우리가 당신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주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도 그들이 자라기를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줘야 한다.


  필자는 지난 25년동안 다음세대, 특히 청소년 사역을 하면서 수많은 제자들을 만나왔다. 처음 만났을 때는 신앙도 없고, 꿈도 없는 그들 대부분의 모습이었지만, 사과 속에 있는 씨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좋은 믿음의 선배들과 선생님들이 멘토가 되어주니깐 신앙이 자라고, 인격이 변하고, 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같은 울산 땅에서 나와 같은 목사로 사역하고 있고, 훗날 육군 장성이 되어서 계급만 별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별과 같은 삶을 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장교로서 군 생활을 하고 있다. 수학 선생님이 되어서 수학 공식과 더불어서 하나님 만나는 공식을 가르치겠다던 아이는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 수학 공식과 하나님 만나는 공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상처로 가득하던 자신의 청소년 시절을 사명으로 삼고 자기처럼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돕겠다며 사회복지사가 되어 이웃들의 친구 역할을 하고 있다. 다들 묘목과 같은 삶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과 믿음의 동역자들의 사랑이 그들에게 자양분이 되어서 지금은 누군가에게 쉼의 공간과 시원한 그늘을 내어주는 나무와 같은 삶으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모든 거목은 한 그루의 작은 묘목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 나라의 거목처럼 귀하게 쓰임 받은 사람들 중 그 어떤 사람도 작은 묘목일 때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오늘도 곁에 있는 다음 세대들을 바라보며 다시 꿈을 꾸자. 그리고 한번 더 기다려주자. 그것이 오늘 부모 세대인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가장 큰 역할이자 부르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