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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특별기고

[성령강림주일]성령강림절의 유래와 의의

 

부활주일부터 성령강림주일까지 50일간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을
지속적으로 기념하고 축하하는 절기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성령의 바람을 
기다리며 성령강림절을 맞이하길”


  기독교 공동체는 부활절 이후 50일째가 되는 날의 주일을 ‘성령강림절’로 지켜왔다. 그 사이에 ‘일곱 주일’이 포함되는데, 유대교에서는 매 7일마다 맞이하는 안식일 축제를 다시금 일곱 번 반복하는 이 날을 소위 ‘오순절’(50일째 되는 날)이라고 했다. 유대인들은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의 잔치인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인 오순절에 새 곡식을 거두어 잔치를 벌였다. 초대교회는 이러한 유대교의 신앙 전통을 그대로 전승 발전시켜서 부활절 축제 후 50일째 되는 날에 ‘오순절’ 잔치를 벌였다. 따라서 ‘성령강림절’은 성령이 임했다는 의미에서의 ‘강림절’과 부활주일 이후의 50일째 되는 날이라는 의미에서 유대인들의 전통인 오순절에서 성령의 오심을 기념하게 되어 ‘오순절’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축제일로서는 ‘성령강림절’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력과 관련하여 3세기 이전까지의 초대교회는 오순절 성령강림절을 부활절기에 포함시켜서 기쁨의 50일의 절기 가운데 일부로 지켰다. 그러나 4세기 말부터 부활절로부터 40일이 되는 날을 승천일로, 그리고 50일이 되는 날을 성령강림일로 분류하여 지키게 되었다.


  한편, 초대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을 축하하는 축제를 부활주일 하루만이 아니라 성령강림주일까지 50일간이나 지속적으로 기념하고 축하하는 절기로 지켰다. 그러니까 부활절기는 부활주일 하루만의 축제가 아니라 그 이후 약 7주간이나 계속되는 가장 큰 기쁨의 잔치 기간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의 한국교회는 부활절을 부활주일 하루만의 행사로 끝나버리고 마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런데 교회사를 살펴보면 부활절 절기의 연장이라는 의미에서 강림절보다는 부활절의 오순절이라는 의미가 더 강하게 부각이 되었다. 그리하여 부활절기를 마지막 마치는 날이라는 의미로 오순절을 지켰던 것이다. 특별히 이 기간 동안에 초대교회에서는 부활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서 금식이 금지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거나 예배를 드리는 것이 금지 되고, 아예 서서 예배나 기도를 드리는 것이 행해지기도 했었다. 그리고 50일째 되는 날에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즉 유대인들에게는 계약갱신의 축제로서 율법을 받은 날로 지켜져 오던 것이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의 날을 준비하기 위한 성령의 은사를 받은 날로 지켜지게 되었던 것이다. 유대교인들에게 모세와 율법을 기념하던 축제가 초대 교회의 공동체에서는 성령의 은사를 기념하는 축제가 된 것이다.


  성령강림절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신학적, 내지는 신앙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첫째,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속사역의 은혜가 모든 사람들에게 임할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성령강림절을 통해 시작된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땅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탄생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라는 것이다. 셋째, 땅 끝까지 주님의 복음이 증거되는 일과 관련하여 성령이 주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오순절 성령강림은 교회의 선교적 사명이 시작되었음의 선언이라는 점이다. 넷째, 성령이 임하자 그 동안의 모든 민족에 따른 언어의 단절이 극복되고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하나의 공동체가 형성되는 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오순절은 화해와 통일이 실현되는 그 시작의 선언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령강림 이후 사도들은 회개의 세례를 강조하였으며, 초대교회는 오순절을 부활절과 함께 새신자들이 세례를 받는 가장 중요한 절기로 지켰다는 점이다. 이렇게 볼 때 오순절 성령강림절은 개인적으로도 새로운 삶과 신앙의 성숙을 촉구하는 계기로써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부활절 주일을 기점으로 성령강림 주일에 이르는 기간을 거치면서 죽음에서 주의 은혜로 거듭난 성도들의 삶이 새롭게 시작되며 성장하게 된다. 이런 성장의 기간이 성령의 강림으로 충만함을 받아서 신앙생활이 어른처럼 믿음의 반석 위에 든든하게 서서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는 날이 바로 성령강림주일이다. 그리고 성도들은 성령의 임하심으로 거룩한 성화를 위한 성숙한 신앙생활 통해 예수께서 오신 대림절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지난 2천년동안 기독교의 교회는 공동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성령의 체험을 반복하면서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런데 성령 체험이 양식이나 표현 방식이 달라서 서로 오해를 하기도 하고, 격한 논쟁을 불러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바람이 임의대로 불듯이 성령의 바람도 불고 싶은 대로 분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지 이 부는 바람을 가로막거나 우리의 의지대로 방향을 전환시킬 수 없다. 단지 이 바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체적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기를 기도할 뿐이다. 바로 이것이 성령강림절을 맞는 우리 모두의 신앙자세이고, 그 바람결을 따라 순례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 순례의 바른 자세일 것이다. 무엇보다 성령의 바람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기적을 가져온다. 따라서 코로나19로 생기를 잃어버린 이 땅에 하나님의 생기의 바람이 불어와 만물이 다시 소생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해 마지 않는다. “창조주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오셔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물을 이제 새롭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