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참된 행복은 무엇인가?”
“돈 문제 걱정 이전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아야”
지금 대한민국은 LH 투기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4,7 재보선과 내년 대선에까지 부동산이 핫이슈가 될 전망이다. 코로나로 인한 저금리 기조와 미래에 불안함을 느낀 2030세대의 영끌과 빚투는 우리 시대의 일확천금, 불로소득을 꿈꾸는 물질 만능주의의 모습을 단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합리적이고 정당한 투자를 넘어 탐욕의 광기에 사로잡혀 불나방처럼 인생의 한방을 위해 뛰어들고 있다. 최근 목회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2030세대의 72%가 “내 인생의 목표는 물질적으로 풍족”이라고 응답했다. 이러한 시대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돈에 대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부하고자 하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성경은 부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있는가? 신구약 성경은 물질적 풍요가 복의 일종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물질은 분명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며 따라서 선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억할 것은 물질적 풍요는 분명 복이지만 동시에 한계와 위험을 가진 복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곳곳에서 부에 대한 탐심과 욕심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다. “부자되기에 애쓰지 말고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복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잠언 23:4-5),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9-10). 정당한 방법과 투자로 부를 얻는 것이 누가 잘못이라고 하겠는가? 문제는 영끌과 빚투라는 단어가 암시하듯이 자기 분수와 분량을 넘어서 부하고자 하는 욕심으로 과도한 투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하고자는 욕심 이면에는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가난과 빈곤에 시달리다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숨어 있다. 이러한 욕심과 두려움 가운데 사로잡혀 합리적인 이성과 정상적인 분별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로인해 평생동안 일해도 빚을 갚지 못하는 돈의 노예로 살게 되거나 극단적인 선택으로 자신과 가족들과 이웃에게 큰 상처와 아픔을 주게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우리의 일상에서 보고 듣는 사건들을 볼 때 예수님이 하나님과 경쟁하거나 비교되는 대상으로 재물을 언급하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마6:24;눅16:13).
다음으로 염려로부터 자유해야 한다. 부에 대한 욕심과 가난에 대한 두려움의 기저에는 삶에 대한 염려가 있다. 남보다 부를 많이 가진 사람들은 미래의 안전를 위해 더 많은 부를 쌓아두려고 한다. 그리고 모아둔 재산이 별로 없는 이들도 내일 당장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걱정으로 부를 축적하려고 한다. 이처럼 돈을 사랑하고 부를 추구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염려가 잠재해 있는 것이다. 물질에 대해서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31-32). 성경은 하나님 아버지를 자신의 자녀들의 필요를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자비하신 분으로 묘사한다. 들의 풀꽃이나 하늘의 참새 같은 미물들의 필요까지 채워주시는 분이 자신의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주시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만물의 주권자이시기에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어떠한 복도 누릴 수 없다. 인생에는 얼마나 변수가 많은가? 하나님이 간단한 변수 한가지만이라도 동원하시면 인간의 삶은 완전히 망가질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하나를 보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이 온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있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염려에서 자유해야 한다고해서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건전한 재테크를 불신이나 염려의 죄로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수입의 일정부분을 노후대비, 자녀교육, 주택마련, 결혼자금 등의 인생의 기본적인 필요를 위해 준비하는 것은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는”지혜이다(잠6:6-8). 문제는 미래에 대한 과도한 염려로 하나님께 당연히 드려야 할 헌금과 이웃을 위한 섬김을 망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물질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자족(contentment)’이다. 성경은 물질에 대해서 ‘자족’의 도를 가르친다.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 알라”(히13:5).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지니라”(딤전6:8). ‘자족’은 삶의 기본적인 필요를 채울 수 있는 정도로 만족하겠다는 마음가짐을 말한다. 자족을 넘어 그 이상을 원하면 탐욕과 탐심의 죄에 빠질 수 있다. 자족하는 삶을 살겠다고 결단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최소한의 물질만을 주신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의 생각과 이해를 뛰어넘는 훨씬 더 많은 물질을 주시기도 하신다. 문제는 하나님이 주권적인 섭리를 따라 우리에게 많은 부를 주시든지 아니면 가난한 형편에 처하게 하시든지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2). 사도 바울은 풍부에 처할 때에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 과욕을 부리지 않고 궁핍에 처해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낙심하지 않는 안분지족의 도를 통달한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3:13)고 고백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떠한가? 풍부할 때는 주신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섬기기보다 더 큰 부를 쌓기 위해 통 큰 투자를 하고 궁핍할 때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낙심과 절망에 빠져 두려움과 불안으로 세월을 보내지 않는가?
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인생의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인생의 참된 행복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부를 추구하는 목적이 결국은 행복이 아니겠는가? 부가 과연 인생의 최고의 복인가? 부를 비롯한 물질적인 복들은 참된 복이 아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복의 조건들은 세상이 일반적으로 복이라고 여기는 것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영적이고 찬상적인 차원의 복이다. 영혼의 상태에 관한 것들이다. 돈 문제로 걱정하기 이전에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아야 한다. 세상적으로 가난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풍성하면 그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반대로 세상적으로 가진 것이 많아도 하루종일 부동산과 주식 투자에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산다면 불쌍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부와 재물에 대한 관심에 지나쳐서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복이 아니라 복 자체이신 하나님을 추구하는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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