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빛이 짙어가고 바람도 힘을 빼는 4월. 푸슬푸슬해진 들판엔 녹비로 바쳐질 자운영들이 환하다. 바이러스가 준 암울함의 껍질일랑 벗고 연둣빛 속살로 어깨동무하는 산을 보며 자연 깊숙이 쏘다니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울주군 대곡리로 향한다. 반구대 암각화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우선 추진 대상에 선정이 되었다. 2025년에 등재를 목표로 현재 학술과 연구가 활발히 추진 중이라니,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야 꿈에서 깨어날 것만 같은 반구대. 거북 모양으로 엎드린 그 바위산의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반구대 암각화는 신석기 혹은 청동기 때의 문화유산으로써 1971년도에 발견되어 95년도에 국보 285호로 지정되었다. 태화강 상류의 대곡천에 있는 절벽에 그려진 307점 정도의 작품으로 인류 최초의 고래잡이 상황을 비롯해 바다동물들과 육지동물들, 또 그 시대의 수렵을 통한 생활모습이 담겨 있다. 현존하는 동아시아 문화유산 중 가장 오래 된 것이기도 하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99년도 여름에 처음 가보았다. 그해 유난히 짧은 장마에다 더위가 심했다. 허리까지 잠기는 대곡천을 건너 암각화 바로 코밑까지 다가갔다. 눈앞에 펼쳐진 고래, 사슴, 호랑이, 멧돼지, 여우, 거북, 배, 등을 보며 판타지세계 같았다. 거대한 바위가 고무판인가 의심스럽도록 그림이 세세했다. 선사시대사람들이 바위 속으로 들어가 버렸나, 보이는 그림들이 바위 속에서 살고 있는 그들의 그림자인가 싶기도 했다.
반구대가 어쩌면 그 시대의 특별도시 혹은 신성지역 아니면 그들만의 유토피아가 아니었을까. 거대한 그림책이라고 하기에는, 그들만의 멈춰버린 기록물이라고만 하기에는 수천 년을 지나온 암각화에 대한 첫인사 치고 너무나 황송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문화재 보존 차 조망할 수만 있게 바리게이트가 쳐져 있다. 설치된 망원경을 거쳐야 그 실물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더욱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탁본이 있고 해설사의 설명도 있고 여기저기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조명도 많다.
문제는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사연호수 아래쪽으로 사연댐이 있어 댐 수위가 올라가면 암각화가 수몰되어 훼손된다는 것이다. 안타깝다. 공업용수로 필요한 사연댐의 입장도 위기에 처한 듯해 안타깝다. 이 문제를 어떻게 시정해 나갈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 울산은 선 자리에서 세계를 향해 또 지경이 넓혀질 것이다. 4월, 꽃향기 따라 가던 발걸음 살짝 틀어 거기 바위 속 원시적 삶의 향기에 취해보는 것, 좋겠다! 유네스코 등재를 하나님께 올려드림도 어떨까 싶다.
설성제 수필가
울산의 빛 편집위원
태화교회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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