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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이종인 목사와 이 달의 책

그 사람, 츠빙글리!

 

 

  2015년 4월, 가족이 함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교회사역 14년차에 허락된 한 달간의 휴식을 알차게 빚어내기 위해 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의 역사적 현장을 찾아 나섰다. 도착한 첫 날 비텐베르크를 시작으로 루터의 역사를, 스위스 취리히를 시작으로 츠빙글리의 역사를 답사했다, 그의 생가를 찾아 나섰고, 47세의 젊은 나이에 카펠 전투에서 목숨을 잃어 생을 마감했던 무덤까지 찾아갔다. 1519년 1월 첫 주, 그로스뮌스터 교회에서 마태복음 강해를 시작으로 스위스 종교개혁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바써교회 앞에 성경을 안은 채, 장검을 쥐고 우뚝 선 그의 동상에서 철저하게 말씀으로 시대와 씨름했던 그의 삶을 생각했었다.


  신학석사과정(Th.M)과정에서 칼뱅의 성찬에 대한 논문을 써내려가며, 츠빙글리의 성찬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했던 기억이 있다. 논지를 세우기 위해 츠빙글리의 성례에 대한 건조한 이해에 대해 직격했다. 돌이켜보면 츠빙글리에 대한 문헌과 자료의 부족에 그 원인이 있었다하겠다. 성찬에 대한 츠빙글리의 글들에 서로 상충되고 오해할만한 구석이 있어 다시 깊이 살펴볼 여지가 있겠으나 그가 진술하는 성찬에 대한 풍성한 글들을 보면서 여러 오해들이 불식되는 면이 크다하겠다. 사실, 날카롭게 비판했던 츠빙글리 대선배에 대한 미안함이 그의 흔적을 고집스레 찾아 나섰던 이유였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의 볼멘소리도 무시한 채 종교개혁자의 흔적에 전전했으니 지금 와 생각하니 아이들에게 고맙고, 또 미안하다. 


  종교개혁 1세대 루터와 2세대 칼뱅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종교개혁의 1세대이면서 개혁신학의 뿌리에 해당하는 츠빙글리에 대한 무관심은 여러모로 개혁신학에 대한 풍성함을 반감시킨 면이 없지 않다. 저자는 원전과 1차 자료에 근거한 충분한 소개가 너무 늦었다고 아쉬워한다. 한국교회의 원로이자 신학선배로서 무거운 책임감에서 나오는 용서와 양해를 구하는 음성으로 들렸다. 은퇴 이후로도 이어지는 그의 땀과 수고로 소중한 결실을 후배들에게 선물하니 감사가 크다. 츠빙글리를 비롯하여 위그노의 역사와 문헌들까지 최근 오랫동안 묻혔던 믿음의 선배들의 소중한 유산들이 속속 소개되어 기쁘다.


  주제와 사랑에 빠진다고 하였던가? 츠빙글리의 신학에 깊은 관심을 두었던 저자의 삶은 목회와 공공선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츠빙글리처럼 목회와 공공신학, 정치와 통일문제에도 실천적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19년에 『처음 시작하는 루터와 츠빙글리』(서울: 세움북스, 2019)에서 종교개혁 1세대의 두 인물, 루터와 더불어 츠빙글리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어 본서에서는 1차 자료를 따라 츠빙글리의 저작들을 세밀하게 소개하고 있다. 가독성 있는 쉬운 문체로 목회현장을 늘 생각하는 저자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책이다. 본서는 연대를 따라 츠빙글리의 14권의 저작을 소개하고 해설해 나가고 있다. 


  1520년, 엄혹하게 불어 닥친 치 떨리는 흑사병이라는 무서운 전염병의 상황에서 소명의 노래로 부른 『페스트의 찬송』을 시작으로 1522년에는 『음식으로부터의 자유』를 통해 미신적인 음식법으로 인해 고통 받던 이들을 해방하고, 같은 해 『하나님 말씀의 명료성과 신실성』에서 보여주듯, 그의 개혁신앙은 철저하게 말씀에 천착하는 방식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었다. 1523년, 『하나님의 정의와 사람의 정의』에서 인간의 의의 속성을 정의하면서 근거 없는 교황권을 직격했고, 특별히 세금과 사회정의에 대한 강조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같은 해, 『어떻게 아이들을 교육할 것인가』에서 그의 교육론을 살펴볼 수 있는데, 전문지식보다 인격함양에 무게를 두어 성경에 뿌리를 둔 국가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함을 강조한다. 

 

  1524년, 『목자』에서는 목사의 자격과 목양법을 성경에 따라 친절하게 설명하고, 거짓목자를 분별하는 방법을 12가지로 제시한다. 같은 해, 『스위스 연방에 대한 간곡한 경고』에서 부조리한 용병제도를 비판했다. 용병이 되어 생계를 꾸려가는 모습을 가슴아파했으며, 이를 가장 불행한 삶이라고 제도를 개선하고 계몽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혼란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에서 거짓 그리스도인과 주교들과 사제들, 수도원의 폐해를 언급한다. 십일조를 오용하고 사회를 어둡게 만드는 교황제도는 폐지되어야 함을 힘주어 말한다. 1526년, 『루터를 향한 우정 어린 비판』과 1528년의 『베른 설교』, 1530년의 『신앙해명』에서 성찬에서의 합의실패와 이로 인한 해명들이 주를 다루어지고 있다. 더불어 재세례파에 대한 강단 있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1530년, 백작 필립에게 보낸 『하나님의 섭리』와 1531년, 프랑수아1세에게 보낸 『기독교신앙선언』에서 모든 일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섭리와 교회와 국가정치와의 관계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나가고 있다. 본인에게 가장 소중하게 다가왔던 부분은 1523년에 발표된 『67개조 논제』에 대한 해설이다. 이는 개혁신학의 원형으로 교회가 말씀에 의지하여 어떻게 개혁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핵심으로 다가왔다. 1-16조는 개혁의 근본토대인 성경에 대해, 17조는 교황에 관해, 19-21조는 성자의 중보기도, 22조는 선행에 대해, 23조는 성직자의 재산, 24조는 금식, 25조는 순례와 공휴일, 26조는 수도복장과 휘장, 27조는 수도회와 교파, 28-29조는 성직자의 결혼, 30조는 순결서약, 31-32조는 파문, 33조는 불의한 재산, 34-43조는 정부에 관해, 44-46조는 기도, 47-49조는 부끄러운 일, 50-56조는 죄 용서, 57-60조는 연옥, 61-63조는 성직, 64-67조는 폐습의 종결에 대해서 다루면서 성경대로 개혁해야 할 부분들을 망라하고 있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 츠빙글리의 저작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종교개혁 전선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16세기의 생생한 투쟁과 치열했던 씨름 속으로 이끈다. 교회를 말씀에 따라 바로 개혁해 나가는 일은 종결된 일이 아니며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로 인해 마음을 다잡게 한다. 카펠의 푸른 잔디와 햇살에 반짝이는 나무 아래 평화롭게 자리한 그의 무덤은 죽기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그의 소명이 끝났음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식지 않은 믿음이 전장 속에 머무는 우리에게 전해진 바통을 의식하게 한다. 츠빙글리의 충직한 저술들은 한국교회가 직면한 제 문제들에 대한 대응과 적용에 풍성한 통찰력들을 제공할 것이다. 은퇴 후에 더욱 활발해진 저자의 더 많은 저술과 기여를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