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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생활 속 신앙이야기

고난은 하나님을 만나는 행복이다 언양도예 김춘헌 도예가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때 이야기가 궁금하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서 교회 앞쪽에서 만물상을 운영하셔서 자연스럽게 교회 종소리를 듣고, 예배를 드리러 가기도 했다. 하지만 교회에 가면 내 이름 위에 붙여진 스티커 판을 채우는 것에 괜한 부담감이 생겨 예배를 빠지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그렇게 신앙에 소홀해져 갔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미션스쿨에 진학하게 되었고 고등학교 3년 동안 열심히 예배를 드리며 학교에 다녔지만 여러 문제로 방황을 하고, 졸업하자마자 군대에 갔다. 군대는 힘든일의 연속이었기에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의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상병이 되고 몸과 마음이 편해지니 다시 교회를 멀리하는 나를 발견했다. 제대 후 울산에 와서 나름대로 사업을 펼쳤는데, 운영하던 사업이 망하게 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통해 다시 하나님을 붙잡고,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앞서 우연이라고 말했지만, 미션스쿨, 군대, 사업까지 지금 돌아보면 모두 하나님께서 나를 계속해서 놓지않고 부르신 것이라 믿는다.”

 


사업으로 어려운 시절, 하나님을 다시 만났다고 했는데.
  “IMF로 인해 부도가 났고, 큰 빚이 생겼다. ‘어떻게든 해결이 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다 땅과 돈,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이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고, 나에겐 힘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서야 하나님께 “날 살려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고, 주님을 의지하며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 하나님은 나의 사업을 망하게 해 돈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셨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시 일어서 천천히, 느리게 사는 삶을 살게 하셨다. 이 모든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 생각한다."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인가?
  “가장 힘들었던 때, 가장 행복했지 않을까. 그때는 늘 하나님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어떤 겨울에는 집 기둥에 매달려 “하나님, 지붕이 날아가지 않게 해 주세요.”라는 간절한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남은 모든것을 팔아서 마련한 집이었으니까 말이다. 거기에 자식들의 학업문제, 가족들의 생계문제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간절한 기도생활, 예배생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집근처 계곡에 내가 무릎꿇고 기도하는 바위가 있다. 지금은 잘 가지 못하지만, 그곳에서 간절하게 기도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시련이 없는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고난이 있더라도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을 때가 행복한 것이다.” 

 

도자기(언양요)에 대해 설명해 달라.  
  “도자기는 하나의 ‘미술’이고, ‘공예’에 속하기 때문에, ‘내 그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며 만든다. 내가 만드는 ‘언양요’는 그릇에 기교를 넣지 않고, 흙과 불이 만났을 때 변하는 그 본연의 질감, 즉 ‘덜 정제된 느낌’, ‘원시성’에 중점을 둔다. 그렇다 보니 하얀 백자 등 다른 그릇에 비해, 한 번에 눈길을 사로잡진 않지만, 은은한 아름다움이 있다. 오래 두고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아 흔히 말하는 ‘매니아 층’이 있는 그릇이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마지막 한 말씀 해 달라.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고객의 ‘미적인 부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든 사람들 또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누리는 서비스를 돈으로 ‘구매한다’기 보단, ‘후원’을 해 주는 개념으로 바라보고, 작게나마 그들의 가치를 높여주는 ’수고비‘를 보태주었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미용사에게 빵 한 조각이라도 나눠드리거나, 택시를 탈 때 잔돈을 받지 않는 행위 등 사소하지만 잘 하지 못하게 되는 ’감사‘를 표현해 주었으면 좋겠다. 예술의 가치는 사용하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다.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높여주는 독자들이 되길 바란다.”

김상희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