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난히 찌는 듯한 더위와 함께 매미 소리가 자지러지게 들려오면, 저는 늘 마음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지곤 합니다. 눈을 감으면 시간을 거슬러 초록색 마당과 빨간 벽돌 교회 건물이 선명하게 떠오르거든요.
참 신기하지요. 어른이 되어서 기억하는 여름은 그저 지치고 땀나는 계절일 뿐인데, 어릴 적 기억 속의 여름은 왜 그리도 설레고 가슴 뛰는 축제 같았을까요? 맞습니다. 우리에게는 매년 여름마다 찾아오던 기적 같은 시간, 바로 ‘여름성경학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성경학교 첫날 아침의 공기를 기억하시나요? 새로 선물 받은 단체 티셔츠를 목이 늘어날라 조심조심 꿰어 입고 교회 문을 열 때면, 성경학교를 위해 꾸민 예배실의 향기와 고소한 옥수수 찌는 냄새가 온 예배당에 가득했습니다.
집에서는 그렇게 눈이 안 떠지던 아침이었는데, 그날만큼은 온 동네 아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새벽같이 교회로 모여들었지요. 단상 위 율동 선생님들을 따라서 신나게 찬양을 부르다 보면, 이마엔 어느새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누구 하나 지칠 줄 몰랐습니다.
사실 그 시절 우리들은 참 철이 없었습니다. 공과 공부 시간에 선생님이 나눠주시던 달콤한 간식이 세상에서 제일 좋았고, 열심히 모은 포도송이 스티커로 달란트 시장에서 뭘 살까 고민하는 게 인생 최대의 숙제였으니까요. 그런데 참 놀랍게도, 그저 떡볶이 얻어먹으러 가고 친구들과 물총 싸움 하러 가던 그 철없던 유년의 자리에, 하나님은 아주 세밀하게 ‘선한 인격의 씨앗’을 심어두고 계셨습니다.
좁은 돗자리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내 몫의 수박을 슬그머니 옆 친구에게 떼어주던 작은 양보, 팀 게임에서 이기려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넘어진 동생이 있으면 얼른 일으켜 세워주던 그 따뜻한 마음들. 혼자가 아니라 너와 내가 어우러지는 법을 배우던 그 시간들은, 이번 여름성경학교의 주제인 “함께 세워가요”라는 고백과 참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성경학교라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 나 혼자 잘 자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고 결합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함께 세워져 가는’ 사랑을 몸으로 부딪치며 자연스럽게 배워갔던 것입니다. 세상의 학교에서는 일등이 되는 법을 가르쳤지만, 여름성경학교는 우리에게 이웃과 함께 걷는 법을 가르쳐 준 인생 첫 번째 인격 훈련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평생의 가장 큰 영적 선물은 역시 성경학교 마지막 날 밤의 ‘기도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낮에는 그렇게 장난치던 장난꾸러기들이, 밤이 되어 예배당 불이 꺼지고 전도사님이 가만히 반주에 맞추어 부르짖으며 기도하자고 하실 땐 왜 그리 눈물이 쏟아지던지요. 고사리 같은 두 손을 꼭 쥐고 꺼실꺼실한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서로의 어깨를 붙잡고 엉엉 울어댔습니다. 그때 제 머리 위에 얹어지던 선생님의 거칠고 따뜻한 손길, 그리고 “하나님, 이 어린 영혼들을 지켜주시고 주님의 몸 된 교회로 함께 자라나게 해주세요” 하시며 떨리던 그 기도의 음성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제 영혼의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는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때 심긴 영적 정체성과 공동체성이 없었다면, 사춘기의 그 험난한 파도와 어른이 되어 마주한 차가운 세상의 풍파를 우리가 어떻게 버텨낼 수 있었을까요?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결국 유년의 성경학교 마당에서 뜨겁게 만나 서로를 보듬었던 그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다음 세대들이 마주한 현실은 우리가 자라던 때보다 훨씬 더 척박합니다. 학업의 압박과 디지털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아이들의 영혼은 고립되어 가고, 교회학교마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 시대에 한국 교회가 다음 세대를 위해 걸어가야 할 길은 명확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단순히 미래의 자원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교회의 가장 소중한 중심 기둥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세상의 가치관에 흔들리지 않도록 성경적 세계관을 심어주는 일에 온 교회가 힘써야 하며, 교회라는 울타리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거창한 프로그램의 화려함보다는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소통하고 그들의 아픔을 경청하는 ‘선생님의 따뜻한 눈빛과 사랑’으로 안아주어야 할 때입니다.
지금 교회 마당을 바라보니,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다음 세대 아이들이 교회학교 교사들의 손을 잡고 조잘거리며 걸어가고 있네요. 예배당에 크게 걸린 “함께 세워가요”라는 플랜카드 아래로 걸어 들어가는 저 예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 한구석이 다시금 뜨거워집니다.
바라기는, 이번 여름성경학교가 단발성 행사로 끝나지 않고 한국 교회 다음 세대가 다시 일어나는 거룩한 부흥의 도화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성령 안에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 평생을 살아갈 영적 자양분을 얻고, 주 안에서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함께 세워져 가는’ 선한 인격의 주춧돌을 단단히 놓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선배들에게 받았던 그 과분한 사랑의 빚을 기도의 무릎으로 돌려줄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저 아이들을 통해 이 땅의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고 신앙의 명가를 이어가실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찬란한 내일이 될 우리 아이들을 향해 마음 다해 축복의 인사를 건넵니다.

박은미 권사(울산남부노회 교회학교 회장, 언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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