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우리가족 홈스쿨링을 ‘설송겸결 은혜학교’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만, 처음 시작은 2019년 ‘우리집 유치원’이었다. 그때는 단촐하게 첫 입학식도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집에서 함께 놀고 자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라가며 뭔가 이름도 있고, 방향도 있는 모습이 필요해졌다.
그때 세운 교육 목적은 단순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믿음의 자녀들을 세상 적인 가치관이 아닌 오직 말씀으로 믿음으로 양육하자.”
교육 목표는 더 단순했다.
“사랑”
그리고 학교의 표어처럼 정한 말이 있었다.
“모두가 선생님이자 학생”

처음 이 말을 정했을 때는 거창한 교육 철학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른들도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아이들은 늘 가르침만 받는 존재가 아니다. 어른들이 잊어버린 기쁨을 가르쳐 주기도 하고, 사랑하는 법을 다시 배우게 하기도 하며, 때로는 믿음과 감사도 일깨워 준다. 그래서 우리도 아이들을 통해 배우는 학생이라는 의미였다.
물론 방문하는 모든 분들도 선생님이었다. 함께 밥을 먹는 손님도, 잠시 들렀다 가는 성도님도, 운동을 함께하는 형과 누나도 모두가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랐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 함께 자라 가는 학교를 꿈꾸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막연한 마음가짐이었던 이 말이 점점 현실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들이 정말 선생님이 되었다.
먼저 공부한 은설이는 동생 은송이에게 수학을 가르쳐 준다. 은송이는 은겸이에게 피아노를 알려준다. 은겸이는 막내 은결이의 체육 선생님이 되었다. 은결이는 모두에게 천진난만함을 가르쳐 준다. 가르치는 것도 배우는 것도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놀이가 되었다. 그렇게 놀면서 아이들은 빠르게 성장해 간다.
생각해 보면 가르친다는 것은 참 중요하다. 학습은 말로만 들을 때보다 직접 보고 따라 할 때 더 효과가 좋다고 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오래 남는 방법이 있다. 직접 가르쳐 보는 것이다.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이해해야 하고, 정리해야 하며, 상대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배우는 사람보다 오히려 가르치는 사람이 더 많이 배우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가르치는 역할은 아이들에게 아주 중요한 선물을 준다. “나는 이 집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라는 마음이다. 역할은 책임감을 만들고, 책임감은 자기효능감을 만든다. 그리고 서로를 존중하게 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누군가를 가르쳐 보면서 자신들을 가르쳐 주는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마음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감사가 생겼다. 반대로 아이들을 언제까지나 배우기만 하는 존재로 생각한다면, 아이들은 그 기대에 맞춰 성장한다. 늘 도움받아야 하는 사람,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으로 남게 된다. 자라지 않는 아이는 언제까지나 부모들의 부담으로 남는다. 하지만 “너도 할 수 있어”, “너도 가르칠 수 있어”라고 말하며 역할을 맡기면 놀라울 만큼 빨리 자란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 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어린이주일이 되면 아이들에게 예배 순서를 맡기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소개할 때 일부러 “○○어린이”라고 하지 않고 “○○성도”라고 부르기로 다짐했다. 작은 표현 같지만 내게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교회와 예배 안에서 아이들을 어엿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다음세대 교육의 중요성을 많이 말한다. 그런데 때로는 이 말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미래의 일꾼을 교육한다”는 의미로 이해되는 것 같아 아쉽다. 이런 생각이라면 지금의 다음세대는 언제까지나 다음세대일 뿐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공동체를 함께 세워 가는 동역자가 아니라, 늘 돌보고 가르치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 대상으로만 남기 쉽다. 사랑해야 할 존재이지만 동시에 부담과 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진정한 다음세대 교육은 다음에 역할 할 사람을 준비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 공동체 안으로 부르고 지금 역할 하도록 맡기는 것이다. 다음이 아니라 지금이다. 그리고 빠를수록 좋다.
행복한전원교회는 가능하면 아이들에게 역할을 맡기려 한다. 어른들이 할 수도 있지만, 교회가 바라는 모습에 대해 토론한 뒤 아이들에게 발표를 맡기기도 한다. 어버이날 꽃 만들기 시간에는 가장 큰 언니가 동생들뿐 아니라 어른들까지 가르쳤다. 정말 잘했다.
예배 시간에는 어른들의 빈자리를 대신해 아기들을 돌보기도 하고, 여름성경학교에서는 중학생이 되자마자 보조교사로 지원하기도 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이미 공동체 안에서 자기 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교회도 가정도 학교도 결국 같은 곳인지 모른다. 모두가 배우고, 모두가 가르치는 곳이다. 어른이 아이를 가르치지만, 아이도 어른을 가르친다. 부모는 자녀를 키우지만, 자녀도 부모를 자라게 한다.
그래서 우리 집 학교의 이름 아래에는 지금도 같은 마음이 남아 있다.
“가족 모두가 선생님이자 학생”
아마 이것은 홈스쿨링의 목표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모습이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서로를 미완성으로 바라보는 공동체가 아니라, 지금도 서로를 세워 가는 선생님으로 바라보는 공동체 말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자란다. 어쩌면 우리가 그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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