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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다음세대

시골교회와 홈스쿨링 “멘토가 된다는 것”

  나는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고 우리 가정을 소개하지만 홈스쿨링이라는 단어는 사실 아주 한정적이다. 우리는 흔히 홈스쿨링이라고 하면 학교를 집으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홈스쿨링은 단순히 집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만약 누군가 부모에게 “당신은 좋은 교사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주 자신 있게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은 하는 것 같습니다.”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의 성적이 좋다면 더욱 그렇다. 겉으로는 겸손하게 손사래를 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뿌듯함이 생긴다.

  우리 집 첫째도 올해 중학교 1학년이 되었는데 최근 중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검정고시야 어려운 시험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몇 점을 받았는지 슬쩍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보면 부모 마음은 다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질문이 바뀌어 “당신은 좋은 멘토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떨까? 그 순간 자신감이 사라질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어깨에 가득 찼던 자신감이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쉬~ 소리를 내며 빠져버리는 상상을 하게 된다.

  물론 홈스쿨링을 하면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자연히 대화도 많이 나눈다. 함께 밥을 먹고, 공부하고, 운동하고, 여행도 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멘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교사는 가르치기만 잘하면 되는 사람이다. 그러나 부모는 교사 이상이 되어야 한다.

  돌이켜 보면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는 먹여 주고 재워 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조금 더 크니 까꿍 놀이를 하고 비행기를 태워 주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내 함께 놀아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졌다. 그래서 운동과는 상관없이 살아온 내가 스포츠 사역자들과 교류하며 아이들과 운동하고 놀이하는 법을 배웠다. 덕분에 함께 뛰고 땀 흘리며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어느 순간 한계를 만났다. 아이들의 몸이 자라는 만큼 생각도 자라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질문은 깊어지고 고민은 복잡해진다. 자기 자신에 대한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생각이 생기고 믿음에 대한 씨름도 시작된다. 그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더 깊은 동행인데 그것이 참 어렵게 느껴졌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5)

  멘토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것을 넘어서는 일이다. 아무리 좋은 가르침도 삶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오래 남지 않는다. 멘토와 멘티는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먼저 걸어 본 사람이 한 걸음 앞에서 기다려 주고, 때로는 옆에서 함께 걷고, 때로는 뒤에서 밀어주는 것이다.

    누군가는 멘토와 멘티를 두고 “한 영혼을 나누어 가진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 표현이 참 좋다. 그래서 나는 종종 부족함을 느낀다. 좋은 멘토를 만나 보지 못한 사람은 좋은 멘토가  

   되기 어렵다고 한다. 문득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나에게 멘토가 있었는가? 생각해 보면 선뜻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물론 존경하는 분들은 있다. 부모님을 존경하고, 감사한 선생님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멘토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멘토는 단순히 존경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보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가며 기다려 주는 사람,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가능성을 믿어 주는 사람이다. 나보다 한 걸음 앞에서 걸으며 기다려 준 사람이 있었는가?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 준 사람이 있었는가? 내 가능성을 끝까지 믿어 준 사람이 있었는가? 정답을 알려 주기보다 함께 고민해 준 사람이 있었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쉽게 떠오르는 얼굴이 없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자꾸 가르치려 하는지도 모른다. 설명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내 경험을 전하려 한다. 상대의 곁에서 함께 걷기보다 내 방식과 내 속도로 이끌고 가려 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리저리 손을 휘저으며 방향을 가리키는 것은 잘 하지만 정작 가까이 들여다봐야 할 영혼을 멀찍이 바라보고 있는 내 모습을 알아차릴수록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진다.

  그래서 40대 중반이 된 지금, 어쩌면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멘토를 찾으려고 시도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좋은 멘토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멘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멘토가 되어 주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더 절실해진다. 그래서 더 배우려 애쓰고 있다.

  목회도 마찬가지다.

  목사는 주일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한다. 더 좋은 설교를 위해 공부하고, 더 좋은 교육을 위해 프로그램을 고민한다. 그것들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문득 이런 질문이 든다.

  주일 예배를 마친 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나는 얼마나 성도들의 삶을 알고 있는가. 그들의 기쁨과 두려움에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가. 열정적으로 설교한 후에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요즘 특히 청년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말씀은 열정적으로 전하지만 삶은 충분히 함께하지 못하고, 설교와 삶 사이에 있는 빈 공간을 함께 걸어 주지는 못하고, 믿음을 강조하지만 정작 그 믿음을 직장과 학교와 가정 속에서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 가까이에서 들어 주고 함께 고민하는 일에는 부족함이 많아 참 미안하다.

  어쩌면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좋은 강의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자기 삶을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어른 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홈스쿨링의 핵심도, 목회의 핵심도 교육이 아니라 멘토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전히 가르치는 데 익숙하다. 설명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답을 알려 주는 일에 익숙하다. 그러나 좋은 부모와 좋은 목사는 가르치는 사람이라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곁에 머무는 것, 기다려 주는 것, 함께 걸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배우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참 어렵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덧붙임.

  여러분에게는 ‘영혼을 나누었다’고 말할 수 있는 멘토가 있으신가요? 만약 그런 분이 있으셨다면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멘토가 되어가는 배움의 과정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류주형 목사(행복한전원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