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교실 창가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는 친구들아.
오늘은 아베 아키코의 소설 『카프네』라는 작은 문(門)을 통해 너희들의 마음을 노크해 보려고 해. 이 소설은 단순히 ‘힘내라’는 말랑말랑한 위로를 건네지 않아. 대신 우리 삶의 가장 어두운 구석, 그곳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에 주목하지.
‘카프네(Kapnos)’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연기’라는 뜻이란다. 참 묘한 단어지? 연기는 눈에 보이지만 손에 잡히지 않아. 실체는 있는데 형체는 없지. 우리 삶의 고통과 슬픔이 꼭 그 연기를 닮지 않았니? 부모님의 부재, 성적에 대한 압박, 친구와의 불화.. 이 모든 것은 분명 우리 가슴을 매캐하게 태우는 불씨에서 시작된 연기들이지.
소설 속 주인공 ‘나기’는 그 연기를 억지로 잡으려 하지 않아. 그저 카페라는 굴뚝을 통해 하늘로 흘려보낼 뿐이지. 나기의 부모님은 사고로 모두 돌아가셨단다. 부모의 부재로 인한 눌린 슬픔이 나기의 마음속을 매일 같이 짓누르곤 하였단다.
그때 나기의 할아버지는 슬픔 속에 있는 나기를 향해 “굴뚝이 없으면 집 안은 온통 매연으로 가득 차게 된단다.” 연기를 밖으로 날려보내야 된단다. 슬픔도 마찬가지야“.
얼마나 공감되는 말이니,
우리도 청소년 시절을 지내왔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복합적인 사회구조로 인해 이전에 우리가 겪지 못했던 수만 가지의 슬픔과 두려움이 너희들 마음속에 연기처럼 차 있을 거라 생각해. 실체를 잡아보려고 해도 잡히지 않지만 커다란 짐 되어 우리를 떠나지 않는..
나기의 할아버지처럼 나도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단다.
“울지 않으려고, 아프지 않은 척하려고 마음의 창을 닫아걸면, 그 연기가 너희의 영혼을 질식시키고 만단다. 슬픔의 연기가 빠져나갈 굴뚝이 없다면 캐캐묵은 연기 냄새가 우리 인생 전체를 휘감고 말거야.”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들고 카페 카프네를 찾아와. 그들은 차 한 잔을 마시며 비로소 자신의 슬픔을 ‘응시’하기 시작하지. 그리고 흘리는 ‘눈물 한 방울’은 그토록 그들을 힘들게 했던 연기가 굴뚝을 통해 빠져나가는 순간이야.
우리가 아픔을 가지고 주님 앞에서 하염없이 울 때, 하나님은 너희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분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너희가 충분히 울 수 있도록 곁을 지키시는 분이야. 그 눈물이 바로 마음의 연기를 씻어내고 맑은 시야를 되찾아주는 영혼의 세수이기 때문이지.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카프네 카페”이시란다. 그래서 시편 기자가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고 노래했을 거야. 연기는 결코 머물지 않는단다. 바람이 불면 흩어지는 것이 연기의 속성이지. 지금 네 마음속에 머물고 있는 아픔도 반드시 그렇게 흩어질 거야.
하나님은 연기 너머의 맑은 하늘을 이미 보고 계신단다. 너희의 마음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모든 연기가 네 삶에 아름다운 보석이 될 거야.
네 삶을 응원하며.....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56:8)
편집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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