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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출애굽 경로 이야기"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수1:2~3)

  고센 땅의 중심지 라암셋을 빠져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대력 1월 15일에 출발하여, 본래 가나안으로 향하는 빠른 경로인 ‘에담’에서 곧장 동쪽 광야로 진입하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발걸음을 남쪽으로 돌리게 하셨고, 백성들은 애굽의 국경 망루(믹돌)와 우상 신전(바알스본) 사이에 끼어 있는 비하히롯으로 이동했다. 

  라암셋에서 출발해 숙곳과 에담을 거쳐 비하히롯 평야까지는 약 75km 내외의 거리였다. 남녀노소와 노약자, 그리고 수많은 가축 떼가 행군할 때 낼 수 있는 하루 이동 속도는 평균 12~13km가 한계다. 이들이 약 75km의 거리를 주파하여 비하히롯 바닷가에 진을 치기까지는 6일가량의 시간이 걸리게 된다. 

  출애굽 6일째 저녁,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하히롯 평야에 도착했을 때 뒤편으로 애굽이 추격해 왔다. 이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구름 기둥이 애굽군대와 이스라엘진영 사이를 가로막아 대치 상태가 이어졌고, 그 밤새도록 강력한 동풍이 불어와 홍해 본류의 바닷물을 밀어내며 마른 땅을 만들어냈다. 

  마침내 출애굽 7일째 새벽녘, 백성들은 갈라진 바다 사이로 도하를 감행했다. 당시 이들이 건넌 홍해 북단의 폭은 약 10~12km 내외로, 평소 이스라엘의 하루 행군 거리와 비슷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밤새 빠른 이동으로 홍해를 건널 수 있었다. 

  홍해를 건넌 후 출애굽 8일 차 아침이 밝아오자 이스라엘은 메마른 수르 광야로 진입했다. 수르 광야에서부터 사막의 첫 번째 오아시스인 마라까지의 거리는 약 35~40km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8일 차에 광야 행군을 시작해 9일 차에 물이 고갈되는 고통을 겪었고, 사흘째 되던 10일 차에 갈증이 극에 달한 상태로 마라에 도달했다. 마라의물은 ‘쓴물’이었기에 백성들은 원망했으며, 모세가 나뭇가지를 던져 물이 달게 변한 기적으로 갈증을 해결했다. 마라를 떠난 백성들은 엘림의 오아시스를 거쳐, 출애굽 한 달이 지난 2월 15일(출16:1)에 신광야에 이르게 된다. 

  사실 성경의 출애굽기와 민수기는 경로를 기술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출애굽기가 ‘마라’나 ‘신광야’처럼 역동적인 사건과 기적이 일어난 주요 거점 위주로 축약했다면, 민수기 33장은 군대의 행군 일지처럼 돕가, 알루스 같은 세부적인 중간 주둔지까지 빼놓지 않고 촘촘히 나열한다. 이렇듯 텍스트가 증언하는 노정의 구체성은 광야 생활의 역사적 실증성을 뒷받침한다. 

  신광야에 도달했을 때가 되자 애굽에서 가져온 한 달 분량의 식량이 바닥을 드러냈고, 백성들은 다시 원망을 쏟아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신광야에서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아침에는 만나를 내려주셨다. 인간이 준비한 식량이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하늘의 초자연적인 공급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르비딤에서 반석 생수의 기적을 경험한 이스라엘은 출애굽 3월에 시내산에 도달한다. 

  백성들은 다음 해 2월 20일에 떠나기 전까지 약 11개월 동안 시내산에 거주(민 10:11)하게 된다.   이 시기 동안 이스라엘은 십계명과 레위기 율법을 제정받았고, 지시대로 성막을 완공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공동체가 된다. 

  시내산을 떠난 이스라엘은 바란 광야를 지나가나안 남방 국경인 가데스 바네아에 도달했다. 모세가 파송한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의 악평에 선동된 백성들은 밤새 통곡하며 반역을 꾀했다. 이에 진노하신 하나님은 40일 정탐을 38년 유랑 징벌로 환산하셨다. 

  이때 일부 백성이 독단적으로 북진했으나 아말렉·가나안인에게 밀려 둘째 해 6월경 호르마전투에서패배했다(민14장). 이 패배로 이스라엘은 즉시 남방 진입을 포기하고 본격적인 광야 유랑에 진입했다. 유랑 세월 동안 불순종한 1세대는 광야에서 모두 소멸되었다. 

  민수기 33장에 기록된 대로 이스라엘은 가데스(릿마)를 떠나 림몬베레스, 립나 등 십여 곳을 방황하다가 38년 만에 다시 가데스로 돌아왔다. 출애굽 40년 5월경, 가나안 남방 아랏 왕이 가데스의 이스라엘을 기습하자 백성들은 하나님께 서원하며 군대를 보내 그 성읍들을 격파하고 진멸했다. 이를 기념해 과거 패배의 현장이자 새로운 승리의 땅 ‘아랏’을 ‘호르마’로명명했다(민 21장). 이 승리로 남방 위협을 제거한 이스라엘은 가데스를 출발해 호르산으로 이동한 후, 사해 동편의 에돔과 모압을 우회하여 요단 동편 땅을 점령해 나갔다. 

  끝으로 모세와 백성들은 가나안이 내려다보이는 느보산(아바림 산)에 당도했다. 모세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숨을 거두었으나, 그가 이끈 이스라엘 신세대는 가나안 정복을 앞둔 강력한 ‘하나님의 군대’로 재탄생해 있었다.

서동호장로(울산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