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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2030의 분노! 과정의 결핍”

  지난 6월 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우리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행정적 참사를 목격했다. 국회 제출 자료에 따르면 전국 91개 투표소에서 무려 4,726장의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일시 중단되거나 유권자들이 긴 줄을 서서 대기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특히 전체 부족분의 82.7%인 3,912장이 서울 지역에 집중되었고, 강남구 청담동과 송파구 잠실동 등 투표 열기가 뜨거웠던 격전지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선진국을 자부하는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이고 신성한 절차인 ‘투표지 공급’이라는 과정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선관위원장이 사퇴하는 파국을 맞이한 것이다.

  이 사태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선은 “행정적 착오일 뿐, 결과적으로 투표는 재개되지 않았느냐”는 안일함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그림_임홍택 작가_90년생이 온다 책표지)

  그러나 임홍택의 《90년생이 온다》가 명확히 짚어냈듯, 지금의 2030 세대에게 ‘과정의 정당성’은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 가치이다. 그들은 결과의 풍요보다 과정의 투명함에 분노하고 환호한다. 게임의 규칙이 반칙으로 얼룩졌다면, 그 결과가 아무리 달콤할지언정 침을 뱉고 돌아서는 것이 지금의 청년들이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2030세대가 분노하며 일어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여겨진다.

  고전(古典) 속에서도 ‘과정의 정의’를 상실한 권력의 종말은 냉혹하게 묘사되고 있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론(Politeia)》에서 국가가 무너지는 가장 첫 번째 징후로 ‘절차적 공정함의 상실’을 꼽았다. 통치자가 절차와 규칙을 경시하고 결과와 권력의 유지에만 집착할 때, 청년들은 국가라는 공동체에 대한 신뢰를 가장 먼저 철회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1960년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 역시 ‘당선’이라는 결과만을 위해 투표함을 바꿔치기하고 절차를 오염시켰던 ‘과정의 범죄’였다. 이에 가장 먼저 목숨을 걸고 일어선 이들 역시 당대의 청년들이었다.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현대문학 걸작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주인공 이반의 입을 통해 위정자들의 결과 만능주의를 무섭게 비판한다.

  “온 인류에게 영원한 행복을 준다는 결과가 있을지라도, 그것이 단 한 명의 무고한 아이의 눈물과 부당한 희생이라는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면, 나는 그 행복으로 가는 입장권을 정중히 반납하겠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선관위의 무능과 부실한 선거 관리에 던지는 메시지가 바로 이와 같다. 과정이 어설프고 불투명하다면 그 선거의 결과 역시 온전히 승복할 수 없다는 청년들의 외침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무너진 절차적 정의를 향한 엄중한 경고이다.

  하나님도 화려한 제물과 종교적 형식이라는 ‘결과물’을 가져오기 전에, 삶의 과정 속에서 정의와 공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고 명령하신다. 절차가 오염된 결과는 기독교적 가치관에서 결코 축복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성전 마당만 더럽힐 뿐이다.(사1:12)

  선거 관리 당국과 정치권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90년생이 요구하는 공정은 대단한 유토피아가 아니다. 내가 참여하는 게임의 규칙이 정직한지, 내가 던지는 한 표의 절차가 온전히 보장받는지라는 ‘과정의 정의’이다. 이 신뢰가 무너지면 공동체의 근간이 흔들린다. 위정자들은 이제 결과 만능주의의 오만에서 벗어나, 공의의 하나님 앞에서 과정의 정직함을 회복해야 마땅할 것이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1:13)

편집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