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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푸른 숲의 옷을 입듯,은혜의 옷을 입고”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계16:15) 바탕그림_아이굿뉴스

매해 돌아오는 여름이지만, 요즘의 여름은 무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지구가 조금씩 달구어지고 있다는 뉴스가 들려오더니, 이제는 유월만 되어도 볕이 정수리를 따갑게 찌릅니다. 에어컨 바람 아래 잠시 땀을 식히다가도, 문득 창밖에서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아스팔트를 바라보면 지구라는 우리의 공동 터전이 앓고 있는 열병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가오곤 합니다.

  이토록 대지가 뜨거워지는 계절이 오면, 목회자와 성도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소박하지만 다소 무거운 고민 하나가 둥지를 틉니다. 바로 ‘여름철 주일 예배 복장’에 관한 문제입니다.

  돌아보면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가장 정결하고 단정한 옷을 고르고 골라 입었습니다. 토요일 저녁이면 다림질 풀을 먹여 하얗게 날을 세운 셔츠를 준비하던 어머니의 뒷모습은, 그 자체로 온전한 예배의 시작이었습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중심을 의복이라는 눈에 보이는 형식에 담아 드렸던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시29:2) 하신 말씀처럼, 거룩한 옷이란 하나님을 향한 최고의 예의이자 경외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상 유례없는 폭염이 일상이 된 오늘날, 이 ‘거룩한 옷’의 모양새에 대해 우리는 조금 더 깊고 부드러운 성찰을 해보게 됩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 속에서 온몸을 단단히 조여 매는 정장과 넥타이가, 때로는 영과 진리로 드려야 할 예배의 집중을 방해하는 작은 걸림돌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지나친 격식이 도리어 몸을 지치게 하여 마음의 무릎을 꿇는 데 방해가 된다면, 그것 또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은 겉모양의 화려함이나 엄격함보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늘 이야기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딤전2:9)”라며 예배자의 태도를 권면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단정함(Modesty)’과 ‘소박함’의 본질은 타인에게 과시하거나 흐트러지지 않는 절제된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이 뜨거워지는 지구 위에서, 보수의 아름다운 가치인 ‘경건’과 현실의 ‘유연함’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무조건적인 엄격함도, 혹은 휴양지 같은 방종함도 아닌 ‘단정한 시원함’에 있을 것입니다. 넥타이를 매지 않는 깔끔한 셔츠, 몸을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통풍이 잘되는 단정한 일상복은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몸을 배려하면서도 예배의 엄숙함을 잃지 않는 지혜로운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겉옷을 길게 늘어뜨린 바리새인들의 형식주의보다, 상한 심령으로 주님 발 앞에 엎드린 이들의 중심을 기뻐하셨습니다. 여름철의 가벼워진 옷차림이 혹여나 우리의 마음까지 가볍게 만들까 경계하는 보수적인 성도님들의 깊은 충정을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렇기에 더욱, 우리의 복장이 조금 가벼워지고 시원해질 때,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영적 긴장감은 오히려 더 단단해져야 할 것입니다. 옷의 두께는 얇아지더라도, 보혈의 은혜를 덧입은 우리 영혼의 예복은 더욱 선명해져야 마땅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라디아서 3:27).

  지구는 뜨거워지고 계절은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하지만, 우리가 입어야 할 단 하나의 본질적인 옷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의 옷’입니다. 이번 여름에는 겉에 입은 옷의 형식을 두고 서로를 판단하기보다, 저 성도가 얼마나 그리스도의 정결한 옷을 입고 예배의 자리에 나왔는지를 축복하는 넉넉함이 교회마다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단정하되 시원하게, 그리고 마음의 중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주님을 예배하는 남은 여름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황종석 장로(울산의빛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