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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탈교회 시대의 문화 변증적 설교”

  과거 평균적으로 교육 수준이 낮았던 시대, 사람들은 지식을 추구했다. 대학생들은 칸트는 몰라도 그의 『순수이성비판』을 옆구리에 끼고 다방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며 영어는 몰라도 이글스(Eagles)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들었다. 그게 멋이었다. 사람들은 지식층을 우러러 보았고 정치인들의 연설장은 마치 록 콘서트를 방불할 만큼 많은 사람이 모였다.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에 청중에게 목사는 존경의 대상이자 지식의 보고였다. 목사를 신뢰하는 청중은 그의 설교를 경청했다. 높은 단상이 상징하듯 위에서 내리꽂히는 설교는 청중의 마음에 그대로 새겨졌다. 당시 설교란 동의의 대상이 아니라 수용의 대상이었다. 청중은 이해하지 못해도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했다. 우렁찬 “아멘”은 설교를 들은 청중의 영성과 살아있음의 표였다. 심지어 교회에 새로 온 사람이라도 그렇게 설교를 들었다.

  그러나 시대는 달라졌다. 현대인들은 지식인이든 정치인이든, 그들을 존경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자신과 다르게 보지도 않는다. 예전처럼 지식인이나 정치인의 말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의 말에 설득되거나 동의할 때 그들의 말에 공감한다. 목사의 설교도 마찬가지다. 높아진 교육 수준, 권위를 무조건 따르지 않는 사상이 퍼진 시대를 사는 청중은 고개가 끄덕여질 때 설교를 긍정하고 동의한다.

  이것은 한 가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청중이 달라졌으니 설교의 형식도 달라져야 한다. 쉽게 말하면 대화의 방식이 달라졌다. 목사도 달라진 대화 방식으로 설교해야 한다. 위에서 내리꽂아서 동의와 수용을 ‘강요’하던 방법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지식수준과 사고방식을 인정하고 다가가 설교를 수용하게 하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너는 전략(지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잠언24:6) 그림_ Noblesse

  어떻게 하면 청중의 마음을 열고 설교라는 선물을 그 안에 넣어줄 수 있을까? (우리의 논의는 성령의 역사를 배제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으로서 어떤 방법을 쓸 것인지에 집중한다) 핵심은 마음을 여는 방법이다. 필자는 문화 변증적 설교가 한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제안한다. 

  교회를 떠나는 이유 중 하나는 청중이 설교를 전혀 동감하지 못하고, 목사의 설교가 자기 삶과 동떨어졌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동력이 있고 그냥 읽어도 성령께서 역사하시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인간의 인간성(人間性)을 외면하지 않으신다. 인간이 말씀을 알아듣고 받아들이게 도우신다. 이것이 오히려 성령의 역사가 아닐까! 

  예를 들면, 바울은 아테나(Athena)에서 아테나 사람들에게 그들이 자신들의 철학으로 고민하는 것을 언급하며 창조주 하나님을 전했고, 히브리서 저자는 유대교 전통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구약과 유대 전통의 지식과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변증했다. 성경 자체가 삼위 하나님을 변증적으로 전했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목사는 현대 문화를 알고 느끼고 체험하며 살아야 한다. 현대 문화는 청중의 삶의 터전이다. 그것은 추천할만한 문화일 수도 있고 성경적으로 옳지 않은 문화일 수도 있다. 어떤 성격의 문화이든 문화는 청중이 생각하는 바탕이자 그 생각 자체이기도 하다. 

  아이를 낳지 않는 문화, AI 사용으로 인간적 체험을 잃은 문화, 인간 소외가 깊어진 문화, 죽음을 잊어버리고 생명에만 집착하게 하는 문화 등 목사가 건들이고 성경으로 답할 수 있는 문화의 측면은 다양하다. 사실, 청중도 자신이 속하고 또한 만들어 가는 문화를 좋아하면서도 의문을 가지는데 목사가 그곳으로 설교로서 먼저 다가간다면 청중은 마음을 열 수밖에 없다. “저것은 지금 내가 겪는 문제다!”라고 말하며 설교를 경청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목사도 교회라는 문화 속에 있어서 그 외 문화에는 문외한이다. “성경만 읽으면 된다”라는 말은 모세에게도 맞지 않고 바울조차 해당하지 않는다. 그들은 당시 문화를 꿰뚫고 있었다. 매체뿐만 아니라 일반 서적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획득하지 않으면 문화 변증적 설교는 불가능하다. 

  또한, 비판적 시선을 고수하면서도 다른 문화에 있는 청중을 한 인간으로서 공감하는 능력도 있어야 그 청중에게 다가갈 수 있다. 그러므로 목양적인 마음으로 세속 문화를 연구하고 접할 때 목사는 이 시대를 사는 청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한 손에는 성경을 한 손에는 신문을”, 어느 신학자의 말이다. 그의 신학에 동의하든 아니든 이 말은 현대 청중에게 목사가 설교로써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설교는 단순한 전달이 아니다. 청중의 마음과 삶을 파고드는 강력한 침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청중의 마음의 틈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그들의 문화를 건들일 때 가능하다. 그때 말씀이 그들에게 살아서 역사할 줄로 믿는다.

임모세 목사(남울산장로교회, 고려신학대학원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