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의 창세기는 한 개인의 족보를 넘어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계획을 보여준다. 그 중심에는 ‘아브라함’이라는 거장이 있지만, 그의 출발점에는 아버지 ‘데라’가 있었다. 우상의 도시 갈대아 우르에서 시작된 이 가문의 행보는 오늘날 우리에게 ‘떠남’과 ‘사명’의 의미를 묻는다.
성경에서 데라는 셈의 후손으로 아브라함, 나홀, 하란 세 아들을 두었다(창 11:27). 여호수아 24장 2절은 데라가 과거 “강 저편에서 우상을 섬기던 사람”이었다고 분명히 기록한다. 당시 그들이 살던 갈대아 우르는 달의 신 ‘난나(Nanna)’를 숭배하는 메소포타미아 종교의 중심지였다. 데라는 아들 하란이 먼저 죽는 아픔을 겪은 후, 아들 아브라함과 며느리 사래, 그리고 손자 롯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가고자 우르를 떠났다(창 11:31).
그러나 그는 최종 목적지인 가나안에 닿지 못한 채, 유프라테스강의 교통 요지인 하란에 머물고 만다. 하란은 우르에서 약 1천키로 떨어진 도시(오늘날 튀르키예 남동부 인근)로, 하란도 달의 신을 섬기던 도시로, 데라가 지리적으로는 이동했으나 과거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결국 그는 205세의 나이로 하란에서 생을 마감하며, 가나안을 향한 여정은 아들 아브라함에게 이어지게 된다.
이후, 아브라함은 75세의 나이에 하나님의 강력한 소명을 받는다(창 12:1). 여기서 연대기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의 애굽 거주 기간에 관한 기록(출 12:41-42)과 갈라디아서 3장 17절에은 중요한 해석의 단서를 제공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정하신 언약을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이 430년의 기산점과 범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연대 계산에는 차이가 발생한다. 전통적으로는 이 기간을 애굽 체류 기간 전체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헬라어 번역본인 70인역 성경(BC 3~2세기경,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은 출 12:40 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서 거주한 기간이 430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출애굽 연대를 BC 1446년으로 보는 전통적 견해를 기준으로 애굽 체류만을 430년으로 본다면 아브라함의 출생은 약 BC 2166년으로 계산된다. 반면 70인 역의 관점을 적용하여 가나안 체류 기간까지 포함할 경우, 아브라함의 출생은 약 BC 1951년경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존재한다. 본 글은 70인역적 해석을 따라 아브라함의 출생을 BC 1951년경으로 전개한다. 이는 확정된 연대라기보다는 가능한 해석 가운데 하나임을 전제한다.
전통적 견해인 애굽 체류만을 430년으로 본다면 야곱의 입애굽은 BC 1876년으로, 이 시기는 애굽의 중왕기 시대로, 요셉이 총리로 등극하기에는 역사적 개연성이 다소 부족한 편이다. 반면 70인역의 기준을 적용하면 아브라함의 출생은 BC 1951년이 되는데, 이삭의 출생은 100년 뒤인 BC 1851년, 야곱의 출생은 60년 뒤인 BC 1791년, 야곱의 입애굽(야곱 130세)은 BC 1661년이며, 당시 요셉이 30세에 총리가 되어 9년이 경과한 때이므로 요셉의 나이는 39세로 볼 때, 요셉의 출생은 입애굽(BC 1661)의 39년 전인 1700년경이 된다. 이 경우 요셉은 이방 민족인 힉소스 왕조가 애굽을 장악해 가던 시기에 활동하게 된다. 이는 요셉이 이민족 신분으로 총리가 될 수 있었던 배경과, 이후 힉소스를 몰아낸 애굽 제18왕조가 들어서며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등장했다는 성경 기록의 연결이 자연스러운 편이다.
다시 아브라함의 행적으로 돌아와, 하나님이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고 명령하시자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의 발걸음을 뗐다. 세겜에 도착한 그는 첫 제단을 쌓으며 예배의 삶을 시작했다. 비록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내려가 아내를 누이라 속이는 인간적인 연약함을 보이기도 했으나, 하나님의 보호 아래 거부가 되어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왔다. 한편, 조카 롯과 가축이 많아져 갈등이 생기자 아브라함은 비옥한 요단 평지를 롯에게 양보했다.
또한 아브라함은 엘람 왕 그돌라오멜 중심의 북방 4개국 연합군이 소돔을 침공하여 롯을 포로로 잡아갔을 때, 아브라함은 즉각 행동에 나섰다. 당시 엘람은 훗날 페르시아의 전신이 되는 메소포타미아의 강대국이었으며, 아브라함의 군사력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상대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강대국의 기세에 굴하지 않고 318명의 사병을 데리고 단(Dan)까지 추격하여 기습 작전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승리 이후 롯은 소돔 지역에서 아브라함의 후광을 입어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으며, 아브라함은 돌아오는 길에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10분의 1을 드리며 십일조의 신앙 고백을 드렸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밤하늘의 무수한 별을 보여 주며 자손의 번성을 약속하셨고,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는 ‘횃불 언약’을 통해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실 것을 확증하셨다(창 15장). 그의 믿음은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시험 앞에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나며 절정에 이른다. 이후 아들의 배필을 믿음의 본가인 하란에서 데려옴으로써 가문의 영적 정체성을 끝까지 지켜냈다.
데라는 가나안을 목표로 출발했으나 하란에 머물렀고, 아브라함은 끝내 약속의 땅을 온전히 밟았다. 데라의 미완성을 아브라함이 순종으로 완성함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울림을 준다. 우리의 인생이 하란에 있는가? 가나안을 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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