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체와 고체가 서로 맞물려 있는 지점이 “빙점(Freezing Point)”이다. 빙점은 사랑하는 마음과 증오하는 가슴이 동시에 머문 우물과도 같다. 어느 곳에서 에너지를 가하는가에 따라서 성질이 결정된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사이에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갈등하며 살아간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빙점’은 익숙한 단어이다. 1964년 ‘미우라 아야꼬’가 아사히 신문에 발표하면서 일약 주부 스타가 된 작품이 “빙점”이다.
의사인 게이조는 아내 나쓰에가 외도하는 사이 어린 딸 루리코가 유괴되어 살해당하자, 아내를 향한 복수심에 불타 살인범의 딸인 ‘요코’를 입양한다. 아내에게는 그 사실을 숨긴 채 말이다. 나쓰에는 죽은 딸을 대신하여 요코를 지극정성으로 키우지만, 나중에 요코가 제 자식을 죽인 원수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모진 학대를 시작한다. 마음에 얼음(빙점)이 시작되었다. 착한 요코는 자신이 ‘살인자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사실앞에 절망하며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극적으로 구조된 뒤, 자신이 실제로는 살인범의 딸이 아니었다는 반전이 드러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은 누구나 마음속에 얼어붙은 지점(빙점)과 같은 원죄를 품고 있다”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라. 왼쪽과 오른쪽, 부자와 가난한 자, 너와 나... 온통 ‘벽’뿐인 세상이다. 마치 거대한 빙하가 갈라지듯 사람들의 마음은 양극단으로 찢겨 서로를 증오하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미우라 아야코가 말한 그 ‘빙점’은 단순히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내 안에 있는 미움, 타인을 원수의 자식이라 낙인찍는 그 차가운 시선이 바로 우리 시대를 얼어붙게 만드는 빙점이다.
세상은 너 아니면 나라는 0과 1의 디지털적 이분법으로 나뉘어 있지만, 생명의 세계는 아날로그이다. ‘너 아니면 나’라는 이분법은 개별성을 강조하지만, 아날로그적 생태계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나뭇잎 하나가 흔들리는 것이 숲 전체의 기류에 영향을 주듯, 생명은 타자와 분리된 독립된 섬이 아니다. 아날로그 신호가 파동(Wave) 형태로 전달되듯, 생명의 에너지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순환한다. ‘너’의 존재가 곧 ‘나’의 배경이 되는 유기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일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자기 육체를 십자가에 내어 놓으셨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2:14)
디지털은 명확하다. ‘예’ 아니면 ‘아니오’로 답해야 한다. 하지만 생명의 감정과 관계는 단순한 수치로 치환되지 않는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기쁘면서도 슬픈 복합적인 감정은 디지털적 이분법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생명은 기계처럼 딱딱한 규칙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상황과 환경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키는 유연한 ‘여백’을 가지고 있다. 이 모호함이 오히려 생명을 더 풍요롭고 입체적으로 만든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를 ‘틀린 것’으로 규정하는 순간, 우리의 마음에도 빙점이 시작된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 풍요로운 하나이다.
얼음이 녹으면 무엇이 되느냐고 물었을 때, 과학자는 물이 된다고 하겠지만, 시인은 ‘봄이 온다’고 말한다.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 모두를 시인이 되게 한다.
할렐루야 아멘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3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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