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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발행인칼럼

선으로 악을 이기라

후쿠오카 근방에서 20년 간 선교를 하신 선교사님의 사역승계를 위해서 얼마 전에 일본을 다녀왔습니다. 나이와 건강, 가정 상황 등으로 4월에 사임하게 됩니다. 일본 선교사로 첫 발을 내딛는 1999년부터 후원해 온 울산교회로서는 박 선교사님의 은퇴와 관련한 일들을 살펴보고, 뒷정리를 현장에서 할 필요가 있어서 잠깐 다녀왔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일본 현지 목회자들을 만날 기회도 있었고, 지역을 옮겨 사역을 승계할 일본복음 선교회(Japan Evangelical Mission) 소속 선교사님과 그 지역 책임자와  선교회 대표를 만나서 교제하는 가운데, 현지 목사님들로부터 일본 교회들의 상황도 듣고, 일본에서 선교하는 한국 선교사님들의 어려움도 듣게 되었습니다. 특히 가정이 있는 세 분 선교사님 모두 하나같이 자녀들이 겪은 어려움이 매우 컸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때까지 한국 아이라는 것 때문에 이지매, 왕따를 당해서, 하는 수 없이 한국의 외가로 와서 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는 자녀들 그리고 정신적 발달장애로 인해 힘드는 자녀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을 앓게 되어 치료를 위해 한국으로 올 수 밖에 없었던 자녀들 참 마음 아픈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특히 독도 문제가 일본 언론을 타게 되면, 어제까지의 좋은 친구였지만 갑자기 집단구타를 당하는 대상으로 선교사님 자녀들은 전락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역사의 교훈은 역사를 통해서는 아무도 배우질 않는다고 한다지만,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마치 민족성을 심어준다는 허울의 교육은 그야말로 편견을 심어주는 작업 같아 보입니다. 일본만의 일은 아닙니다. 얼마 전의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에 있는 법원에 출두했을 때도 근방 초등학교 학생들이 “살인마”라고 소리를 쳤다니, 역사의식이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되었다고 평가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일찍부터 역사 편향적 교육이 성공했다고 보아야 할 것인지 생각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보면 우린 ‘증오의 공화국’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각자가 가진 편견에 사로잡힌 나머지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취향에 맞는 소리만 들으니 가짜뉴스도 횡행하고, 순식간 진짜뉴스도 가짜로 둔갑하는 일이 매우 흔한 현실입니다. 마치 우리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끔찍한 <증오주간>을 보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될 만큼, 상대방을 미워하는 것이 마치 삶의 목표인 것처럼 살고 있으니 걱정스럽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한 해에 한 주간 <증오주간>을 극복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고난주간>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을 청산해야할 대상으로 규정하는 한, 더 나은 세상은 도래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완벽하지 못한 죄인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누구든지 자기 이마에 박힌 눈에서부터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생래적 편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린 결코 자신을 만물의 척도로 삼아서는 상대방을 타도하려 들면 또 한 번의 증오의 물결만 출렁일 뿐입니다. 출렁이는 증오는 현해탄 파고를 넘어, 선교사로 헌신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자녀들까지 내려놓는, 가슴을 찢는 사랑의 헌신을 할 때 이 세상은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놓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본받아,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할 때, 비로소 이웃나라 일본뿐 아니라 비록 생각이 달라도 같은 나라 사람들까지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선교지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주님의 고난을 나의 것으로 수용할 때 비로소 증오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근두 목사(울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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