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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서양철학의 발상지 밀레토스에서, 사도 요한의 로고스까지”

  그리스 본토가 아닌 소아시아(오늘날 튀르키예 서부)의 에베소와 밀레토스(밀레도)에 헬라 문화가 전해진 배경은 이오니아인의 이주에서 시작된다. 기원전 11세기 무렵부터 8세기 사이에, 그리스 북부에서 내려온 도리아인의 압력으로 이오니아계 그리스인들이 에게해를 건너 소아시아 해안에 정착했다. 그중 밀레토스는 기원전 8~6세기에 해상 교역으로 급속히 번영하여 지중해 무역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비교적 개방적이고 자치적인 도시 분위기는 자유로운 사유를 가능하게 했고, 이 토양에서 세계를 신화가 아닌 이성으로 설명하려는 철학 전통이 태동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연현상을 신들의 행위로 이해했다. 하늘의 번개는 제우스(Zeus)의 노여움이고, 거친 파도와 지진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이 삼지창을 휘두른 탓이라 여겼다. 그러나 밀레토스(에베소 남쪽 약 50km)에 살던 탈레스(BC 624~546)는 달랐다. 그는 항해·측량·천문 관측 등 실용 지식과 더불어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수학·천문 전통을 접하면서, 신화적 설명 대신 자연 자체에서 질서를 찾으려는 사고의 전환을 이루었다. 바닷물이 수증기와 구름이 되어 다시 비로 내리는 순환을 관찰하고, 생명과 토지의 비옥함이 습기와 물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주목한 그는, 변화하는 다양한 현상 뒤에 하나의 공통 원리를 세우려 했다. 그 결과 “만물의 근원(아르케)은 물”이라고 선언했다. 그의 뒤를 이은 아낙시만드로스(BC 619~546)는 ‘무한자(아페이론)’를, 아낙시메네스(BC 586~528)는 ‘공기’를 근원으로 제시했다. 이들은 모두 자연을 신화가 아닌 보편적 원리로 설명하려 했고, 후대는 이 흐름을 ‘밀레토스 학파’라 불렀다. 여기서 처음으로 신들의 감정이 아니라 자연의 원리를 탐구하는 철학적 사고의 혁명이 일어났다.

  밀레토스에서 불과 한나절 거리에 있는 에베소에서도 철학의 거장이 나왔다. 헤라클레이토스(BC 535~475)는 만물의 근본 성격을 ‘끊임없는 변화’로 보고 이를 상징하는 원소로 ‘불’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변화만 강조하지 않았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도 세계를 관통하는 질서와 이성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름을 바로 ‘로고스(Logos)’라 했다. 로고스는 세계를 지배하는 보편 법칙이자 질서의 원리였으며, 이는 후대 철학과 신학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기원전 499~493년, 밀레토스와 에베소를 중심으로 이오니아 도시들은 페르시아 제국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반란은 진압되었고, 패배 이후 밀레토스는 정치적 압박과 경제적 쇠퇴 속에 많은 철학자들은 시칠리아와 로마 남부의 그리스 식민도시들로 옮겨갔고, 그곳에서 철학은 새로운 발전을 이루었다. 

  피타고라스(BC 570~495)는 수와 조화를 철학의 중심에 두었고,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기원전 494?~434?)는 물·불·공기·흙의 ‘네 원소’ 이론을 제시했다. 데모크리토스(Democritus, 기원전 460?–370?)는 더욱 나아가 원자론을 주창하며, 만물을 불가분의 미립자로 설명했다. 이렇게 헬라 철학은 소아시아(밀레토스, 에베소)에서 이탈리아로 흘러 들어갔고, 다시 그리스 본토로 역류하며 사상의 큰 강을 이루었다.

  한편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연합군 중 아테네는 기원전 478년 델로스 동맹을 결성해 에게해의 패권을 장악했다. 풍부한 자금과 은광 수입을 바탕으로, 페리클레스(BC 495~429)의 시대에 아테네는 도시 재건과 문화의 황금기를 맞이했다. 이때 철학의 관심은 자연에서 인간으로 옮겨갔다. 프로타고라스(BC 490~420)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 선언했고, 소크라테스(BC 470~399)는 “너 자신을 알라”는 물음을 던지며 윤리적 토대를 세우려 했다. 이러한 논의는 플라톤(BC 427–347)과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로 이어져 서양 형이상학과 논리학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이 과정에서 로고스는 또 다른 철학적 발전을 거쳤다. 키티온의 제논(BC 334~262)을 창시자로 하는 스토아 학파는, 우주를 관통하는 신적 이성(로고스)의 질서 속에서 덕을 최고의 선으로 보았다. 인간은 로고스의 질서와 합치해 살 때 행복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스토아 철학은 세네카(BC 4~AD 65)로 이어지며 로마 전역과 소아시아 대도시들 _에베소를 포함_에 널리 퍼졌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바로 이 에베소에서, 초대교회 전승에 따르면, 사도 요한이 말년에 목회를 했다(이레네우스 증언).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힌 후, 에베소 교회의 요청으로 요한이 에베소 지역을 돌보게 되었던 것이다. 요한은 에베소의 헬라·로마 문화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로고스’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왜 요한은 로고스라는 용어를 사용했을까? 

  ‘로고스’는 그들이 이미 철학과 스토아 사상을 통해 익숙한 용어이었으며, 요한은 이 ‘로고스’의 ‘참 로고스’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땅의 로고스를 헬라의 로고스라고 보면, 땅과 하늘을 아우르는 진정한 로고스는 예수 그리스도 즉 하나님의 로고스임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요한이 전한 로고스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 1:1)”로 시작한다. 

  정리하면, 사유의 흐름을 추적하는 일은 오늘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사상은 언제나 역사와 문화의 강을 따라 이동하고 변주되며, 그 흐름이 어디로 향하는지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오늘날 포스트모던 상황은 진리를 해체하려는 듯 보이지만, 결국 인간 내면의 공허를 채우는 것은 오직 진리 자체다. 그리스도인에게 그 진리는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을 바르게 읽고 이해하여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행로와 숨결을 분별하고, 그 원리로 삶과 세상을 질서 있게 다스리는 것, 그것이 지금 이 시대의 지적·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길이다.

 

서동호 장로(울산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