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대 학장이었던 나클라비 코비는 당시 30세였다. 개강 집회 시간에 산상수훈에 나오는 팔복을 본문 삼아 설교하였다. 그의 설교가 당시 부패했던 로마 카톨릭교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교황을 이단이라 했으니, 난리가 난 것이다. 나클라비 코비를 조사하던 중에 그의 설교 원고를 종교개혁자 칼빈이 작성해 준 것이 드러났다.
교황은 당시 왕이었던 프랑수아 I세에게 압력을 가하였다. 왕은 할 수 없이 칼빈을 잡기 위해 군인들을 출동시켰다. 이 사실은 안 칼빈은 속히 피신하였다. 도망하던 중에 한 여인을 만나는데 그녀가 프랑스 왕족이며 돈과 관용이 많은 마르게니트였다. 그가 칼빈을 열심을 다해 도와주었다. 칼빈은 훗날 그녀와의 만남을 “하나님의 예기치 않은 은혜”였다고 고백한다. 이것을 라틴어로 “수비타-예기치 않은”라고 부른다.
물리학의 영역에서 열역학 제2 법칙에 해당하는 소위 “엔트로피”이라는 것이 있다. 엔트로피는 무질서라고 이해하면 된다. 모든 물질은 가만히 두면 점점 더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인간은 방치하면 무가치한 인생이 되며, 어떤 물질을 가만히 두면 쓰레기가 된다는 의미이다.
이를 바탕으로 오래전 대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제레미 리프킨이 <엔트로피>라는 책을 썼다. 엔트로피의 관점에서 보면 진화론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알 수 있다. 단세포가 저절로 고등동물이 된다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엔트로피와 반대로 가기 위해서는 “힘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잘 정돈된 도로와 집 그리고 거리는 반드시 “어떤 힘과 에너지”가 작동한 것이다. 불타버린 산이 다시 정돈되고 기름이 유출된 해변가에 다시 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역시 누군가에 의해서 어떤 힘이 가해진 것이다. 가만히 두면 폐허가 될 것들인데 새롭게 된 것은 어떤 힘 덕분이다.
나클라비 코비에게 칼빈의 설교 원고는 엔트로피를 깨는 어떤 힘이었을게다. 칼빈에게 마르게니트는 엔트로피의 방향을 바꾸는 어떤 에너지다.
두려움과 좌절 속에서 문을 걸고 숨어있던 제자들이 담대함으로 생명도 불사하고 복음을 위한 사도로 전향된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 불의 혀처럼............수비타의 은혜가 마가 다락방에 임하는 순간이다. 엔트로피가 결박당하고 깨어지는 순간이다. 모든 두려움이 물러가고 좌절이 도망가는 역전의 시간이다.
종교개혁은 인간이 만들어낸 디자인이 아니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은 만물보다 부패하기 때문에 늘 헛발질하기 바쁘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하여 기준을 정하시고 그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신 결과물이다. 도도히 흘러가던 ‘로마 카톨릭의 진화론적 역사관과 성경해석, 전통, 하나님의 위치를 빼앗아 간 교황의 권위’에 맞서도록 성령께서 각 사람의 마음속에 임하셔서 당시 무질서로 가던 엔트로피를 깨뜨렸다.
옥스퍼드 대학 교수였던 위클리프, 위클리프의 강의를 듣고 있었던 체코의 청년 얀 후스, 쯔윙글리, 마틴 루터, 존 칼빈 ,윌리엄 틴들, 존 녹스…. 세상이 감당치 못할 이름들이 성령으로 인해 지금까지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성령이 임재하시면 방향이 전환되는 일이 발생한다. 무한히 증가되는 영적 엔트로피가 깨어진다. 우리 인생의 주인이 교황에서 그리스도로 다시 돌아오는 시간이다. 기준이 바뀐 것이다.
10월은 종교개혁의 달이다. 종교개혁은 완성품이 아니다. 계속되는 진행형이다. 개혁의 바람이 멈추지 않고 일어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무질서(엔트로피)를 깨는 어떤 힘이 가해져야 한다. 그 힘의 능력은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성령이다.
오순절 날 성령이 각 사람 위에 임하신 것처럼 지금도 성령을 구하는 자에게 그러하시다. 약속의 성령은 목사, 장로, 집사, 평신도에게 임하신다. 남성과 여성에게 임하시고, 어린아이와 청년들에게 임하신다. 더 나아가 화가, 수필가, 조각가, 음악가위에 임하신다. 요리사, 스포츠인, 프로그램 개발자 위에 임하신다. 그 어떤 재능도 수비타처럼 이해할 수도 없는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입지 않으면 재능은 살아 있으나 그 어떤 것도 영광을 보지 못한다.
성령은 지금도 모든 영역의 사람들에게 개혁의 바람이 지속되어 엔트로피를 깨도록 일하기를 원하신다. 성령을 구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에 머물라! 할렐루야 아멘!

'특집 > 특별기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6년, 가치있는 삶을 위하여" (1) | 2026.01.01 |
|---|---|
| “새해, 하나님의 선물” (1) | 2026.01.01 |
| 『지계(地界)를 옮기지 말라』 (1) | 2025.05.27 |
| “6.25 75주년, 끝나지 않은 전쟁”-_노골화되는 북한의 무력적화 통일전략 (3) | 2025.05.27 |
| 『전쟁이란 것』 (1) | 2025.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