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교회는 비빔밥과 같은 공동체다. 모든 재료 고유의 맛, 색, 향, 촉감, 영양분까지 그대로 살아 있는 샐러드와 같고 비빔밥과 같다. 그런데 비빔밥이 맛있기 위해서는 고추장과 같은 소스가 중요하다. 고추장과 어우러져 다양한 재료들이 조화로운 맛을 내기 때문이다. 비빔밥과 같은 다문화 교회에서 고추장에 해당하는 것은 ‘복음’이다. 복음이 모든 가르침과 사역에 중심이 될 때, 다양한 인종, 국적, 언어, 문화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한 가족,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을 이룰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다문화 교회를 목회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 무엇이었는지를. 지난 7년간 다문화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재정이나 봉사자가 부족한 것도, 공간이 협소한 것도 아니었다. 계속해서 다문화 교회의 교회됨을 방해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자기의와 교만이었다. 율법주의로부터 파생된 죄가 공동체 안에서 도덕적, 문화적, 인종적 우월감/열등감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서로를 향해 판단, 정죄, 비난, 혐오, 배제, 편견, 대상화, 비인간화, 갈등, 분열과 같은 죄의 열매를 낳기도 한다.
그런 죄의 열매는 율법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 자기 의와 자기 열심히 강한 사람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누구보다 봉사와 헌신을 많이 하는 사람,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 성경공부나 제자훈련과 같은 교육을 많이 받아서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래서 싱클레어 퍼거슨은 <온전한 그리스도>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후반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두려운 메시지는, 형과 같은 율법주의적인 정신이 돼지우리에서보다 아버지의 집 근처에서 더 발견되기 쉽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교회 안에, 믿는 자들 속에 율법주의가 더 판을 친다. 그리고 때로는(과연 때로일까?) 설교단, 곧 목회자의 마음속에서도 율법주의가 발견된다.”
다문화 교회를 목회하면서 깨달은 점은 다문화 교회의 가장 큰 장애물이 외부나 환경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배당 밖이 아니라 안에 있고, 공동체 안에서 가장 자기 열심과 자기 의가 강한 사람, 특히 목회자에게서 가장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다문화 교회의 가장 큰 걸림돌과 장애물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대답한다. 바로 담임목사인 나 자신이라고. 또 자기 의와 자기 열심이 가득한 한국인 봉사자들이나 교회의 리더들이라고. 복음을 내면화하지 않은 사람, 겸손과 존중, 이타심과 배려를 갖추지 못한 사람이 사역자나 리더가 되었을 때, 이는 공동체 전체에 지울 수 없는 큰 아픔과 상처를 남긴다.
이는 비단 다문화 교회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한국인들로만 구성된 개척교회들이나 심지어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교회들 안에도 동일하게 이런 문제는 존재한다. 사실 모든 한국인 교회들도 교육 수준, 사회경제적 상황, 성장 과정, 세대, 정치 성향, 사역 경험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다문화 교회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이나 교리에 대한 지식이 많은 사람, 교육과 훈련을 많이 받은 사람, 다양한 사역의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어 서로를 틀렸다, 자격이 없다고 비난하고 정죄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우리 교회가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교회, 건강한 공동체가 되려면 복음이 필수적이다. 목회자 자신이 먼저 복음을 내면화해야 하고, 그 내면화된 복음을 성도들에게 선포해야 한다. 설교자가 전하는 메시지와 사역이나 성도들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달라서는 안 된다. 교회의 리더들인 중직자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이 문제라는 생각보다 내 안에 있는 숨어 있는 우상의 실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복음의 빛을 통해 내가 하나님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명예와 체면, 안전, 인정, 통제와 같은 우상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이고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복음을 통해 ‘나는 감당 못 할 죄를 지은 죄인인 동시에, 감당 못 할 은혜를 받은 의인’이라는 이런 복음적 정체성을 붙들 때, 우리는 겸손한 동시에 당당할 수 있다. 죄인이기에 우리는 우월감과 교만에 빠지지 않으며, 의인이기에 열등감과 자기연민에도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다. 복음 안에서 우리가 이주민과 다를 바가 없으며, 우월하지도 열등하지도 않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신분과 정체성은 동등하다는 인식을 가질 때, 우리는 이주민을 차별하지 않고 그들을 동등한 하나님 나라의 권속이나 가족으로 대할 수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그리스도인, 천국 시민권자, 영적 이주민이라는 정체성을 붙들 때 우리는 ‘이주민으로서의 선교’ (mission as the migrants)만 아니라 이주민과 함께하는 선교(mission with the migrants)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팀 켈러는 말한다. “교회를 통해 인종의 벽을 뛰어넘는 파트너십과 우정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복음 임재와 권능의 증표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사이에 두고 맺은 연합은, 같은 인종이나 민족 구성원들 간의 관계보다 강력하고도 견고하다.”
우리 교회들이 복음 안에서 차이를 뛰어넘는 다문화 공동체를 이룰 때, 그 다문화 공동체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복음의 임재와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 증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다문화)교회의 핵심은 복음이다! 비빔밥에 고추장이 빠질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복음이 강력하게 선포되고, 그 복음 메시지에 어울리는 복음적인 공동체들이 우리 도시 안에 많아지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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