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저는 고향에 돌아가 음악을 가르치고, 악기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진로 선언이 아니었다. 절망 속에서 피어난 소망의 싹이며, 무명의 땅에서 울려 퍼진 은혜의 선율이었다. 그날, 그 고백을 들은 백 선교사는 눈시울을 적셨고, 하나님이 이 땅에 베푸시는 놀라운 이야기 한 줄이 이 아이들의 입술에서 흘러나오고 있음을 느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조용하지만 뚜렷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두 사람이 있다. 백형균·송경순 선교사 부부. 우리는 고등학교 시절 같은 교정에서 시간을 보냈고, 4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 하나님 나라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뜻하지 않게 소식을 듣고 극적으로 만났다. 삶의 자리와 모습은 달라도, 그 중심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동일한 음성이 있었다.
복음, 신들의 섬을 울리다
인도네시아 발리는 ‘신들의 섬’이라 불린다. 전 세계 여행객들이 찾는 이 아름다운 섬의 이면에는 영적으로 척박한 현실이 있다. 인구의 84%가 힌두교도이고, 기독교인은 2% 남짓. 꿈조차 사치로 여겨지는 땅, 특별히 소외된 아이들에게 복음은 낯설고 멀게만 느껴진다. 그곳에서 백 선교사 부부는 악기와 음악, 그리고 예배의 삶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심어가고 있다.
백 선교사는 고향 경남 거창에서 신앙의 뿌리를 내리고 자라났다. ‘총 공회’ 출신으로, 트럼펫을 처음 배운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도평교회의 전도사님이 악기를 손에 쥐어주며 복음의 첫 선율을 심어주었다. 고등학교 고적대, 군악대, 교회 브라스밴드와 찬양대 지휘까지 이어진 음악의 길은 훗날 선교의 통로가 되었다. 하나님은 그를 자카르타로 이끄셨고, 그곳에서 23년간 사회 교사로, 송 선교사는 영어 교사로 섬기며 ‘교육과 예배가 일치하는 삶’을 실천했다.
이 부부는 발리에서 자비량 선교사로 사역하던 중에 2024년 9월, 고신총회 소속 부산 제2영도교회로부터 문화 전문인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 받았다. 이들의 선교의 전략은 단순했다. 11가지 악기를 다룰 수 있는 백 선교사의 은사와 송 선교사의 교육 경험,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두 사람의 순전한 마음을 모아 이들은 무대 대신 마을 아이들의 삶으로 들어갔다. 낯선 땅에서 악기는 아이들과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었고, 작은 악기들은 복음을 담은 ‘은혜의 그릇’이 되었다.
브라스밴드, 복음의 향기를 울리다.
발리에는 고신 교단 강원준·허경애 선교사 부부가 운영하는 ‘소망의 꽃 보육원’이 있다. 이곳은 아이들에게 보호와 교육을 넘어, 복음의 새 생명을 심는 공동체다. 하나님의 때가 차서, 백 선교사는 이곳에서 여자 청소년 18명으로 구성된 ‘소망의 꽃 브라스밴드’를 지도하게 된다.
금관 악기는 티뷰크사회복지재단 이선옥 이사장이 전폭적으로 후원했다. 그리고 음악 교육과 악기는 백 선교사가 헌신했다. 그는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라 정체성과 희망의 회복이었고, 또 이 아이들은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연주하고 고백한다. 사실 음악은 그들에게 미래를 향한 빛이 되었고, 악기는 하나님이 주신 꿈의 매개체가 되었다. 역시 이선옥 이사장이 전폭적으로 후원을 받아 2024년 6월, 한국에서 이들의 첫 내한 공연이 열렸다. 15명이 초청을 받아 ‘우리에게 꿈이 있어요’라는 주제로 서울, 부산, 공주 등지에서 진행된 공연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관객들의 마음을 적셨다. 무대에 오른 아이들은 울먹이며 고백했다. “이제 저는 음악 선교사가 되고 싶어요.”“저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이 기쁨을 전하고 싶어요.”이 고백들 속에는 단지 감정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가 담겨 있었다.
악기로 복음을, 삶으로 선교를
이 부부의 삶은 철저히 ‘예배의 삶’, ‘선교의 삶’으로 이어져 왔다. 송경순 선교사는 브라스밴드에서 호른을 연주하며 아이들과 호흡하고 있으며, 지금은 더욱더 영어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고자 기도 중이다. “악기를 잘 다루는 것보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해요.” 이 말은 그들이 가르치는 방식이며, 선교의 본질이다.
나는 이 부부를 보며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는 어디에 쓰이고 있는가?” 선교는 특정한 부르심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삶에서 실천해야 할 소명이라는 진리가 이 부부의 삶에 녹아 있다.
복음은 지금도 울리고 있다.
오늘도 백 선교사는 임마누엘 초등학교, 남자보육원, 비전하우스 등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소망의 꽃 브라스밴드의 연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 선율은 누군가의 마음에 ‘예수님’이라는 이름을 심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세워진다. 거창한 말이나 구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충실한 삶을 통해서. 그들이 심은 음악은 복음의 울림이 되어서 또 다른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고 있고, 그들의 삶은 복음 그 자체가 되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길이 되고 있다.
이 시대는 말보다 행동, 지식보다 진심, 프로그램보다 사람을 필요로 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충실한 삶을 통해 세워진다. 바로 하나님은 지금 백 선교사 부부를 통해 발리 땅에 악기로 ‘하나님의 큰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편지들이다. 음악으로, 악기로, 문필로, 교육으로, 선교로, 눈물과 기도로 복음을 써 내려가는 존재들이다. 이러한 편지들이 서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지어지고 있음을 기억하자.
오늘도 기도한다. 발리의 작은 교실에서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선율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또 언젠가 그 아이들이 또 다른 땅, 또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연주하게 되기를. 그리고 나 역시 내가 선 자리를 지키며, 복음의 삶을 살아가기를.
“작은 악기, 커다란 꿈. 그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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